스포츠 팬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어떤 경기는 더 중요하고 다른 경기는 덜 중요합니다. 꼭 이겨야 하는 경기가 있는 반면 져도 괜찮은 경기가 있습니다. 프로 팀 감독이 시즌 초중반 져도 괜찮은 경기를 이기겠다고 발버둥치다가 후반 '진짜 승부' 때 전력을 풀가동하지 못했다가는 '생각이 짧아'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는 이렇게 한 경기 승패가 시즌 전체 성적에 끼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숫자로 정리한 걸 '드라마 인덱스(The Drama Index)'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해당 경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했는지 알려주는 척도죠. 시작은 야구였지만 모든 프로 리그에서 이 숫자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게 있습니다. 똑같은 경기가 한 팀에는 중요하지만 다른 팀에는 덜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2일 경기가 그랬습니다. 안방 팀 삼성화재는 준플레이오프 없이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려면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반면 이미 1위를 확정한 현대캐피탈로서는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었습니다. 물론 17연승이 걸린 경기였지만 올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특정 경기 때 두 팀 숫자를 평균 내면 해당 경기 드라마 인덱스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래 표는 프로배구 2015~2016 NH농협 V리그 현재까지 남자부 드라마 인덱스 상위 10경기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순위 | 날짜 | 라운드 | 승리 팀 | 패배 팀 | 스코어 | 드라마 인덱스 |
1 | 2/25 | 6 | 현대캐피탈 | OK저축은행 | 3-0 | 4.57 |
2 | 2/29 | 6 | 대한항공 | OK저축은행 | 3-0 | 4.38 |
3 | 2/16 | 6 | 삼성화재 | OK저축은행 | 3-2 | 3.14 |
4 | 3/02 | 6 | 현대캐피탈 | 삼성화재 | 3-0 | 2.59 |
5 | 1/19 | 5 | 현대캐피탈 | 삼성화재 | 3-2 | 2.05 |
6 | 1/25 | 5 | 현대캐피탈 | 대한항공 | 3-1 | 2.02 |
2/28 | 6 | 삼성화재 | 우리카드 | 3-1 | ||
8 | 2/15 | 6 | 현대캐피탈 | 대한항공 | 3-0 | 1.98 |
9 | 3/05 | 6 | 대한항공 vs 한국전력 | 1.80 | ||
10 | 1/12 | 4 | 현대캐피탈 | 대한항공 | 3-2 | 1.75 |
위에서 언급한 2일 경기가 4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상하시는 것처럼 현대캐피탈에 이 경기는 드라마 인덱스는 0짜리였습니다. 하지만 삼성화재에는 5.18배짜리 경기였기에 이렇게 높은 숫자가 나온 겁니다. 현재까지 삼성화재는 평균 드라마 인덱스 1.65 상황에서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만큼 시즌 내내 순위 경쟁 한 가운데 있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이유로 6라운드 삼성화재 경기는 상대팀에 상관없이 모두 중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캐피탈이 올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이유가 이 표를 보면 드러납니다. 정규리그 챔피언 자리에 오른 1위 경기를 포함해 중요한 경기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그리고 스포츠 팬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시즌 막바지가 되면 패배를 만회할 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드라마 인덱스도 올라갑니다. 거꾸로 현대캐피탈은 4라운드부터 중요한 경기가 있었는데 (당연히 당시 기준으로는 제일 중요한 경기였습니다.) 이 경기서 치고 올라가면서 연승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2위는 이해하기 힘든 분도 계실 겁니다. OK저축은행은 이 경기에 주전 선수 대부분을 빼고 나섰거든요. 그건 OK저축은행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최하위 우리카드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2위를 확정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도 OK저축은행은 최종전에서 우리카드를 3-1로 꺾으면서 2위를 확정했습니다. 상대팀 대한항공에는 준플레이오프가 열리느냐 마느냐가 달린 경기였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올 시즌 최종전인 7일 대전 경기는 어떨까요? 삼성화재와 KB손해보험이 맞붙는 이 경기 드라마 인덱스는 5일 경기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어느 정도냐면 드라마 인덱스 0과 5.52 차이입니다. 팀당 36경기를 치르는 리그에서 나올 수 있는 제일 큰 차이죠. 대한항공이 5일 경기에서 이기면 삼성화재는 7일 경기 승패에 관계없이 준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합니다. 거꾸로 대한항공이 승점을 한 점도 따지 못하면 삼성화재가 이겨야 플레이오프에 직행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차이를 반영한다면 드라마 인덱스는 퍽 쓸 만한 도구 아닌가요?
여자부에서는 6라운드 흥국생명-GS칼텍스 경기가 4.12로 드라마 인덱스가 제일 높았습니다. 이 경기 승패에 따라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3, 4위가 바뀔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흥국생명이 3-1 승리를 거두고 3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팀으로 따졌을 때도 GS칼텍스가 1.40으로 가장 드라마틱한 시즌을 보냈다. 거꾸로 드라마 인덱스 여자부 최하위 팀 인삼공사는 0.31이 전부였습니다.
드라마 인덱스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우는 '이항분포'를 통해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남은 5경기에서 승점 10점 이상을 따야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는 팀이 있다고 해보죠. 이 팀이 첫 경기에서 승점 3점을 따면 남은 4경기에서 최소 7점만 따면 되지만(7~12점 추가 확률 38.7%), 한 점도 못 따면 다시 10점 이상따야 합니다(10~12점 추가 확률 1.9%). 그러면 확률 차가 36.8% 포인트가 나오는데 경기마다 나온 이런 숫자를 평균이 1.0이 되도록 조정하면 드라마 인덱스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