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전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 감독(42·사진)은 그저 옷을 벗은 게 아니다. 옷을 내던진 것이다. 우리말에서 옷을 벗었다는 건 보통 어떤 직책에서 물러났다는 뜻이다. 김 전 감독이 11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던졌다는 건 정말 양복 상의를 벗어 던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이 보통 화가 났을 때 하는 행동이다.
지난달 27일 수원 경기가 끝난 뒤였다. 대한항공은 이 경기서 안방 팀 한국전력에 1-3으로 패했다. 그러자 경기장을 찾은 구단 고위 관계자가 선수들을 코트 위에 세워놓고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때 김 전 감독이 옷을 내던졌다. 보통 구단과 따로 계약하는 다른 팀 감독과 달리 이 관계자도 대한항공 정직원, 김 전 감독도 같은 회사 정직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섣불리 하기 힘든 행동이다. 사람들은 보통 화가 아주 많이 났을 때 이런 행동을 한다.
화가 가라앉으면 정신도 돌아오는 법. 김 감독은 다음 날 "선수단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새로 팀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가 주심에게 경고를 받고 나서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드는 행동을 해도 "나한테 그랬다"고 해명하는 감독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프로팀 감독들은 보통 성적이 아주 급할 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핑계까지 대가며 선수를 두둔한다.
시간과 장소를 같은 달 19일 서울 장충체육관으로 옮겨보자. 대한항공은 이 경기서 우리카드를 꺾고 86일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인터뷰실에 들어온 김 전 감독이 제일 많이 쓴 낱말은 '부담감'이었다. 물론 OK저축은행이 다음 날 곧바로 선두 자리를 되찾아 간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는 OK저축은행이 한 경기 덜 치른 상태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정된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럴 때는 부담감이라는 낱말을 이렇게 연거푸 쓰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가 그가 감독으로 거둔 마지막 승리가 됐다. 이 경기 뒤로 대한항공은 5연패에 빠졌다. 순위가 4위까지 급전직하하자 그는 사퇴를 택했다. 김 전 감독은 "이번 시즌에 꼭 성적을 내야 하는데 이대로 계속 두면 더 나빠질 것 같아 (사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대한항공의 대학팀이나 마찬가지인 인하대 시절부터 24년 동안 한 팀에 몸담아 온 '원팀맨' 김 전 감독은 그렇게 팀을 떠났다. 이런 사람이 이런 식으로 조직을 떠날 때는 보통 뭔가 구린 냄새가 난다. 그리고 이럴 때 꼭 기자들은 뭔가 알고 있다는 듯 냄새를 풍기면서도 끝내 내용을 밝히지 않아 읽는 사람을 약오르게 만든다.
▌언젠가 택시 탄 이야기.txt기사님은 자신이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가문 차를 30년 동안 몰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집안이 얼마나 개판인지 열변을 토하셨다. 대부분 2대에 걸친 사모님 욕이었다. 사모님이 그 ...
Posted by 황규인 on Sunday, December 7, 2014
대한항공은 올 시즌을 앞두고 김 전 감독 의사와 무관하게 외국인 코치 두 명을 영입했다. 김 전 감독은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겼지만 '월급쟁이'로서 회사가 하는 일에 일일이 싫은 티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배구계에서는 "대한항공에는 총 감독이 두 명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사람에 따라 총 감독 둘에 외국인 코치 두 명이 들어가는지 아닌지도 의견이 엇갈렸다. 이런 소리가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구단은 보통 잘 되는 일이 없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도 그랬다. 구단에서는 부인했지만 선수들이 김호철 당시 감독보다 A(성씨와 무관하게 언론사에서 그냥 익명으로 쓰는 표현이다.) 단장 눈치를 더 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녔다. 결과는 프로배구 출범 후 첫 번째 포스트시즌 탈락이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떠올려봐도 참 낯선 경험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물갈이 인사가 뒤따른다. 현재 팀 내부적으로 현대캐탈에는 단장이라는 직책이 없다. '지원단장'만 있을 뿐이다. 이런 팀은 보통 다시 잘 나가게 마련이다.
프로배구 출범 이후 12 시즌 동안 대한항공을 거쳐간 감독은 모두 다섯 명. 이 중 네 명이 중도에 팀을 떠났다. 김 전 감독은 데뷔전 그러니까 신영철 현 한국전력 감독(52)이 떠나고 대행으로 치른 첫 경기에서 0-3으로 패했다. 재미있는 건 그때 "정의가 실현됐다"며 고소해 한 배구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신 감독도 한국전력을 이끌고 대한항공을 처음 꺾었을 때 "꼭 이기고 싶었다"며 속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보통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표현을 떠올려 보고는 한다.
대한항공은 김 전 감독이 떠난 자리를 장광균 코치(35)에게 맡겼다. 이로써 장 코치는 여자부 도로공사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박종익 감독 대행(37)보다 더 어린 나이에 양복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서게 됐다. 이 문장은 프로배구 역사상 가장 어린 감독 대행이 나왔다는 말과 똑같은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이럴 때 프런트 입김이 더 세질 것이라고 예상하고는 한다.
사실 김 전 감독이 처음 대행 자리에 앉은 것도 서남원 당시 수석코치(49)마저 신 감독 경질과 함께 팀을 떠나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월급쟁이로서는 '발령'에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것. 장 대행 역시 대한항공 정규직 사원이다. 게다가 마산중앙고를 나온 김 전 감독과 달리 장 대행은 인하대사범대부속고 졸업생이기도 하다. 프로 스포츠에서는 보통 이런 팀이 잘 된 역사가 없다.
원래 기사로 쓰려다가 핀트가 어긋나게 된 바람에 블로그에 남겨둡니다. 반말투로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