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타자가 '자동 출루권'을 얻으려면 볼이 4개가 들어와야 합니다. 영어 표현 베이스온볼스(Base On Balls)를 우리말 '볼넷'으로 번역하는 이유죠. 그런데 '출루 머신' 조이 보토(32·신시내티·사진)에게는 볼 4개가 너무 많았나 봅니다. 3볼에 1루로 걸어나갔지만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보토는 1일(한국 시간) 안방 경기에 2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장했습니다. 사건이 터진 건 7회말. 보토는 1사 1루에 워싱턴 투수 맷 그레이스(27)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2구는 볼이었지만 3구는 헛쳤습니다. 4구는 파울이었고 5구는 다시 볼. 여섯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 존 아래로 가라 앉았습니다. 이러면 풀 카운트가 됩니다.


그런데 보토는 드디어 올 게 왔다는 듯 방망이를 내던지고 1루로 걸아갔습니다. 심지어 전광판과 TV 중계 화면에서도 볼 카운트가 3볼 2스트라이크로 바뀌었지만 심판과 워싱턴 선수단은 물론이고 TV 중계진까지 아무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결국 정상적인 경기 진행. 7회말에 이미 1점을 뽑았던 신시내티는 보토가 걸어나간 뒤 5점을 더 뽑아내며 3-2였던 점수를 8-2로 벌렸습니다. 가정이지만 보토가 계속 타석에 들어서 있었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물론 보토가 일부러 속였다고 볼 근거는 없다. 초구를 볼로 착각했을 확률이 높다는 게 일단 현지 분석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야구 역사상 처음 있는 건 아닙니다. 박경완 현 SK 퓨처스리그(2군) 감독 역시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3볼에 걸어 나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도 당연히 '볼셋'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대표 사례는 2011년 7월 2일 인터리그 경기. 


샌디에이고와 시애틀이 맞붙은 이 경기에서 샌디에이고 7번 타자 카메론 메이빈(28)은 5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 볼셋으로 1루에 걸어 나갔습니다. 메이빈은 알베르토 곤잘레스(32)가 적시타를 칠 때 홈을 밟아 득점도 올렸습니다. 이 점수가 시애틀 선발 투수 덕 피스터(31)가 이날 허용한 유일한 실점. 결국 피스터는 이 볼셋 후 득점 때문에 이날 패전투수가 됐습니다.



시애틀은 여드레 뒤에도 또 한번 볼셋을 허용했습니다. LA 에일전스 방문 경기에서 선발 투수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29)를 상대로 바비 어브레유(41)가 3회말 걸어 나갔는데 이때 볼카운트를 3볼 1스트라이크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실점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경기는 2-4로 시애틀이 패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볼셋 사례 두 번 모두 조쉬 바드(37)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해 26게임밖에 뛰지 않은 포수 치고는 참 얄궂은 운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가 2011 시즌이 끝나고 은퇴한 것하고 이 볼셋 두 번은 아무 관계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반대 사례는 없을까요? 그러니까 볼넷이 됐는데도 걸어나가지 않은 타자는 없었을까요? 없었다면 묻지도 않았겠죠. 주인공은 이제는 프로야구 넥센 타선을 이끌고 있는 박병호(29). 이 홈런 타자는 LG 소속이던 2009년 4월 11일 경기 6회말 공격 때 '볼다섯'으로 1루를 밟은 적이 있습니다.


초구는 볼이었다. 2구째는 스트라이크가 들어오며 볼 카운트 1-1. 3구째는 볼이 들어왔고 4구째는 박병호가 좌측 큰 파울타구를 쳐내며 볼 카운트가 2-2가 되었다. 큰 파울타구를 치고 잠시 숨을 골라 타석에 들어선 박병호. 5구째도 볼을 골라 2-3 풀 카운트가 되었다.


운명의 6구. 역시 볼이 들어왔다. 박병호의 탁월한 선구안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게 어떻게 된 순간인가? 분명히 볼넷이었다. 그러나 박병호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판 또한 몰랐다. 투수인 김상현도 몰랐고 LG와 두산의 덕아웃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중략) 평생 볼까 말까 한 진기한 장면이었다. 결국, 박병호는 7구째 볼도 골라내며 1루로 출루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4볼 2스트라이크에서 공격한 타자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요미우리(讀賣) 소속 요시무라 사다아키(吉村禎章·52). 요시무라는 1987년 10월 18일 히로시마 상대 안방 경기 4회말 타석 때 네 번째 볼이 들어왔지만 카운트를 착각하고 계속 타격에 임했습니다. 결과는 홈런.



이 홈런은 두 가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요시무라가 프로에서 17년 동안 뛰면서 유일하게 기록한 30호 홈런이라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고라쿠엔(後樂圓) 구장에서 나온 마지막 홈런이었다는 점입니다. 요미우리는 이해를 마지막으로 1988년부터는 도쿄돔을 안방으로 쓰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건 도쿄돔 1호 홈런을 떠뜨린 주인공 역시 요시무라였다는 점입니다.


야구에서 볼 카운트 싸움이 중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 선수들이 그만큼 집중하고 있기에 까먹지 말라고 전광판에 커다랗게 표시까지 해줍니다. 구심은 따로 볼 카운트를 알려주는 장치까지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보면 참 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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