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봐도 봐도 어려운 게 보크입니다. 그래서 당한 쪽에서는 더욱 '보크가 아니다'고 발끈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판정이 애매한 구석이 있으니까요. 27일 프로야구 잠실 경기서 송일수 감독을 비롯한 두산 코칭스태프가 모두 나와 항의한 이유입니다. 거꾸로 LG 양상문 감독에게는 가장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양 감독은 5-1로 승리한 뒤 "4회 정대현의 보크로 우리가 경기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아 온 것 같다"며 "안 그래도 보크라고 어필하려고 했는데 심판진이 먼저 잡아내더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LG 이진영은 4-0으로 앞선 4회 1사 만루에서 두산 두 번째 투수 정대현을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습니다. 정대현이 뿌린 공은 바깥 쪽에 꽉찬 스트라이크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대현이 공을 뿌리기 전 오훈규 주심이 보크를 선언했습니다. 3루에 있던 정성훈이 자동으로 득점을 올리는 상황이 됐던 거죠.



이에 대해 이날 대기심이었던 김병주 심판(팀장·사진)은 "정대현이 세트 포지션을 이미 취한 상태에서 오른발을 뒤로 빼고 나서 공을 던졌다. 세트 포지션 상태를 정확하게 유지한 뒤 와인드업 상태로 변환한 것"이라며 "주자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만(欺瞞) 행위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심판 설명은 "투수가 세트 포지션으로 투구할 때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투구하였을 경우" 보크가 된다는 야구 규칙 8.05(m)에 따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트 포지션은 뭘까요? 야구 규칙 8.01(b)는 "투수가 타자를 향하여 서고, 중심발이 전부 투수판 위에 놓이거나 투수판 앞쪽에 닿도록 하고(투수판 뒤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다른 발은 투수판 앞에 놓은 상태에서 신체의 앞에서 두 손을 모아 공을 잡은 후 완전히 동작을 정지하는 것이 세트 포지션"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주3]에 "세트 포지션으로부터 투구할 때 자유로운 발은 ①투수판의 바로 옆으로 내딛지 않는 한 앞쪽이면 어느 방향으로 내디뎌도 괜찮다. ②와인드업 포지션처럼 일단 뒤쪽으로 뺐다가 다시 한 발 내딛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주자가 있을 때 꼭 세트 포지션으로 던져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②를 통해 투구 동작 중간에 포지션을 바꾸면 안 된다고 못 박아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대현의 투구 동작이 문제가 될 수도 있던 겁니다. 여기서 아쉬운 건 오 주심이 정대현이 발을 뺐을 때 곧바로 보크 선언을 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된 거죠.

그런데 양 감독은 이를 어떻게 알고 "보크를 의심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한 번 당했기 때문입니다. LG 임정우 역시 6월 24일 경기에서 같은 조항에 걸려 보크 판정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때는 발을 빼는 순간 곧바로 보크 선언이 나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경기는 NC 찰리가 14년 만에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던 바로 그 경기입니다. 당시 양 감독은 "감독 부임 이후 가장 의욕없고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데 대해 팬들에게 죄송하다. 앞으로 이런 경기는 다시 하면 안된다"고 아쉬워했었습니다. 그날이 전화위복이 됐다는 듯 LG는 점점 4위 자리를 굳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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