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프로야구 감독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선수 교체, 그 중에서도 투수 교체입니다.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를 넣을 때는 더하죠. 야구를 볼 때 가장 짜증나는 순간을 꼽으라면 구원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볼넷 하나 내주고 물러날 때일 테니까요.

물론 감독은 미래를 모른 채 투수를 바꿉니다. 그렇다고 팬이 '결과론'을 가지고 투수 교체를 나무라는 걸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게 '팬질'의 본질이니까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투수를 바꾼 게 한 시즌 동안 쌓인다면 감독 실력이라고 봐도 영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2013 시즌 프로야구에서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를 가장 많이 쓴 건 LG 김기태 감독입니다. 김 감독은 투수를 451번 바꿨는데 이 중 78명(17.3%)이 1타자 이하를 상대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원포인트 릴리프는 '1타자 이하를 상대한 투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드는 첫 번째 의문: 그럼 한 타자도 상대하지 않고 마운드에서 내려간 투수도 있단 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이런 일은 지난 시즌 세 번 나왔는데요, 모두 상대팀 도루 실패로 아웃 카운트를 잡았습니다. 이럴 때는 투수가 상대한 타자가 없는 걸로 기록지에 남습니다.

두 타자를 상대하는 건 어떨까요? 왼손 타자가 잇달아 나오면 왼손 원포인트 릴리프 투수가 두 타자를 상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타자 이하일 때 .219/.338/.326(타율/출루율/장타율)로 상대를 막던 투수들이 두 타자 이하를 상대하면 .284/.393/.423로 기록이 나빠집니다. 그러니까 감독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과가 나오게 하려고 한 타자 이하로 묶은 겁니다.

다시 LG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LG에서 원포인트 투수가 많이 나온 건 다른 팀에는 한 명도 찾기 힘든 '원포인트 전문 투수'가 두 명이나 있기 때문입니다. 류택현(43·왼쪽)과 이상열(37)은 지난해 원포인트로 각각 24번 등판해 공동 1위 기록을 차지했습니다. 이 둘이 48번을 차지하고 나머지 LG 투수들이 30번 원포인트로 마운드에 오른 겁니다.

이렇게 78명이 원포인트 릴리프로 마운드에 올랐다면 '투구 이닝이 3분의 1이상'인 경우가 78번일 때 100% 효율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병살타를 유도해 아웃 카운트 2개를 늘렸다고(3분의 2이닝 투구) 이를 실패라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요. LG 원포인트 투수들이 '투구 이닝 3분의 1이닝 이상'을 기록하고 내려간 건 56번입니다. 따라서 LG의 원포인트 릴리프 효율은 71.8%가 됩니다.

나머지 8개 구단도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원포인트 릴리프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한 건 넥센 염경엽 감독입니다. 염 감독은 원포인트 릴리프로 투수 33명을 올렸는데 이중 27명(81.8%)이 자기 몫을 하고 내려갔습니다. 실패한 사례를 뜯어보면 박성훈(32)이 볼넷을 내준 게 다섯 번, 이정훈(37)이 안타를 맞고 바로 내려간 게 한 번입니다.

거꾸로 롯데 김시진 감독이 원포인트 릴리프를 제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김 감독이 원포인트 릴리프를 마운드에 올린 건 모두 50명인데 효율적으로 투구하고 내려간 건 절반인 25번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9개 구단 평균이 3번 중 2번 이상(67.3%)이라는 걸 감안하면 김 감독 기용법에는 문제가 있는 겁니다. LG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원포인트 투수를 기용하고도 효과를 못 봤으니까요.

 순위  구단 등판 성공 성공률 상대 OPS
 1  넥센 33 27 81.8% .293
 2  SK 35 27 77.1% .429
 3  두산 22 16 72.7% .707
 4  LG 78 56 71.8% .628
 5  NC 43 29 67.4% .598
 6  KIA 41 27 65.9% .591
 7  삼성 46 30 65.2% .857
 8  한화 31 18 58.1% .724
 9  롯데 50 25 50.0% 1.007

롯데에서 제일 문제가 된 투수는 강영식(33). 원포인트 릴리프로 마운드에 오른 강영식을 상대한 타자들은 .417/.533/.500으로 프로 원년(1982) 백인천 못잖은 강타자가 됐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강영식은 첫 타자를 상대하는 데 서툴렀기 때문에 마운드에서 오래 버틸 수가 없던 거겠죠.

반대로 KIA하고 SK에서 나눠 뛴 진해수(28)가 원포인트 릴리프 등판 때 성적이 가장 좋았습니다. 16타자를 맞아 15타자를 잡아냈고 나머지 한 번은 SK 이적 후 KIA 상대 첫 게임(5월 15일) 때 이용규에게 볼넷을 내준 것밖에 없습니다. 전체 진해수 상대 OPS(출루율+장타력)가 .748인 점을 감안하면 진해수는 원포인트 릴리프에 맞는 타입입니다.

삼성 권혁(31)은 반대. 원포인트 릴리프일 때는 상대 OPS가 .933이나 되지만 나머지 경우에는 .715로 좋아집니다. 평소에는 그래도 상대 타자를 LG 정의윤 수준으로 막는데 원포인트로 올라오면 팀 동료 박석민으로 만드는 셈이죠. 물론 삼성은 백정현(27)도 원포인트 성적(상대 OPS .933)이 시원치 않아서 대안을 찾기가 힘들겠지만 말입니다.

원포인트 앞에는 보통 '좌완'이라는 말이 붙는 만큼 대부분 왼손 투수인 게 사실. 오른손 투수 중에서는 LG 이동현(31)이 원포인트 구실로 여덟 차례 등판한 게 최다입니다. 그 중 7번(87.5%)을 성공했으니 제 몫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원포인트 릴리프는 상대 타자를 OPS .664로 묶습니다. 지난해 리그 평균 OPS가 .737이라는 걸 고려하면 팀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적재적소에 잘 쓸 때 그렇습니다. LG만 봐도 류택현은 상대를 OPS .660으로 묶지만 이상열은 .935나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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