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규칙 8.06(b)는 "감독이나 코치가 한 회에 동일 투수에게 두 번째 가게 되면 그 투수는 자동적으로 경기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경기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으로 바꿔 뛰어도 안 됩니다. 현대 프로야구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 두산 선발 투수 유희관은 이 조항 때문에 4회초 투구를 마치지 못한 채 경기에서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사정은 이랬습니다. 삼성은 1사 만루 상황에서 이지영의 희생플라이로 이닝 두 번째 점수를 뽑았습니다. 그러자 김진욱 두산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와 '태그가 빨랐으니 아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김 감독이 구심 나광남 심판에게 항의하는 와중에 강성우 두산 배터리 코치는 유희관-최재훈 배터리를 다독였습니다. 심판은 이 장면을 '이닝 두 번째로 투수에게 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닝 선두타자 박석민에게 2루타를 맞았을 때 정명원 투수 코치가 나왔었기 때문에 유희관이 빠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투수에게 간다'는 기준이 미국 메이저리그하고 우리 프로야구가 다릅니다. 메이저리그 규칙에는 "A manager or coach is considered to have concluded his visit to the mound when he leaves the 18-foot circle surrounding the pitcher's rubber"라고 나와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규칙은 이 부분을 "감독이나 코치가 투수에게 갔다가 투수판을 중심으로 18피트(5.486m)의 둥근 장소를 떠나면 한 번 간 것이 된다"고 번역해 두고 있습니다. 그 뒤 [주1]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조항에 있는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 둘레의 장소'를 파울 라인으로 대체하여 적용한다"고 해두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장면을 보시면 강 코치가 파울라인을 넘어간 건 맞지만 '투수판을 둘러싼 18피트(5.486m) 둘레의 장소' 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접입니다. 만약 메이저리그였다면 유희관이 마운드에 계속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정답은 '아니오'입니다. 이는 이 규칙에 딸린 [원주] 때문입니다.
[원주] 감독이나 코치가 포수 또는 내야수에게 간 다음 포수나 야수가 그대로 투수에게 가거나 투수가 수비위치에 있는 야수에게갔을 때는 감독이나 코치가 마운드에 간 것으로 간주한다. If the manager or coach goes to the catcher or infielder and that player then goes to the mound or the pitcher comes to him at his position before there is an intervening play (a pitch or other play) that will be the same as the manager or coach going to the mound.
이 동영상을 보시면 분명 최수원 대기심은 "어필 나왔잖아. 그때 강성우가 나와 가지고 포수한테 가서 뭐라고 이야기했다"며 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결국 메이저리그였다고 하더라도 유희관은 마운드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거죠. 명백하게 두산 코칭 스태프가 잘못했던 겁니다.
김진욱 두산 감독도 경기 뒤 "김태완의 (병살타성) 땅볼 당시 2루에서 세이프 콜이 나왔다. (오)재원이가 흥분한 상태라 흥분하기보다 차분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선수를 진정시키려는 목적도 있었다. 볼 판정이나 아웃 판정 등 우리가 봤을 때 석연치 않은 장면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우리가 흥분한 상황에서 실수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야구 규칙은 이렇게 상황이 지나고 나서 정리해 보면 '아, 그랬던 거였군'하고 이해하게 되는 일이 흔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상황에 압도당하면 규정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도했던 건 절대 아닐 테고, 꼭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한 것이지만, 어쩌면 최수원 심판에게 이런 사정을 알린 김태선 최성용 기록원이 시리즈 흐름을 바꾼 셈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