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선수와 단 둘이 있을 땐 디킨스나 위트먼의 시를 읽어주곤 한다. 끝까지 남아 얼마나 잘 들어주는지 모른다. (섹스의) 전희라 생각하면 뭐든지 잘 들어준다. 난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그들은 나를 안정되고 편하게 만들어 준다. 내가 주는 건 평생을 가지만, 그들이 주는 건 142게임 동안뿐이다. 내가 손해보는 장사라고 생각하지만 야구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누가 밀트 파파즈 때문에 프랭크 로빈슨을 잊을 것인가? 야구야 말로 영혼을 살찌우는 유일한 종교다.

─ 영화 '19번째 남자' 중


세계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야구 리그는 어디일까요? 사실 이 질문 자체가 바보스러울 정도. 정답은 당연히 미국 메이저리그입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모두 7186만1768명. 그럼 2위 리그는 일본일까요? 일본 프로야구 지난해 총 관중은 2137만226명이었습니다. 우리 프로야구(715만 4157명)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숫자.


그런데 일본 프로야구보다 관중이 더 많은 리그가 있습니다. 바로 마이너리그입니다. 지난해 마이너리그에 속한 15개 리그 176개 팀 경기를 찾은 관중은 4127만9382명으로 일본 프로야구보다 두 배 가까이 많습니다. 이 중 메이저리그 산하 AAA 팀이 뛰는 퍼시픽코스트리그와 인터내셔널리그만 따져도 1330만 명. 이 중에는 평균 관중 1만 명이 넘는 팀도 적지 않습니다. 스포츠 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마이너리그를 단순히 '2군'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죠.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마이너리그가 이렇게 인기를 25년 전 세상에 나온 영화 '19번째 남자(Bull Durham)'에서 찾습니다. 1988년 6월 25일 나온 이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와 수전 서랜든이 출연해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포수의 사랑과 열정을 연기합니다. 그 전까지는 미국에서도 마이너리그에 대한 관심이 별로 높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마이너리그 인기도 올라가고 관중도 늘기 시작했다는 게 이 신문 분석. 관중도 2160만 명에서 현재 수준으로 늘었습니다.


'19번째 남자'에서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한 크래시는 은퇴 기로에 몰린 마이너리그 노장 포수입니다. 역시 만년 하위팀인 더럼 불즈에서 그를 영입한 건 '영건' 에비(팀 로빈스)가 메이저리그에 안착할 수 있도록 스승 노릇을 맡기려던 의도였죠. 어디까지나 그게 그가 월급을 받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크래시 역시 자기 꿈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건 마이너리그에서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는 타자가 되는 것. 이 때문에 그는 에비의 빅 리그 진출 이후 자신이 해고 당하자 애니(수전 서랜든)의 사랑도 뿌리치고 다시 마이너리그 팀을 찾아 떠납니다. 크래시는 마침내 247번 째 홈런을 때리지만 이를 보도한 신문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인생일까요? 메이저리그에서 그저 그런 백업 선수로 버티는 것과 마이너리그에서 아무도 모르는 역대 최다 홈런왕이 되는 것.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 대부분 그렇게 2류로 늙어간다는 건 슬픈 진실입니다. 게다가 성공은 역시 운칠기삼. "누군가 평생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낼 때 다른 누군가는 일주일에 하나 씩 터진 바가지 안타 때문에 양키스타디움에 선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어쩌면 그게 인생의 진면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슴에 품고 있는 247번째 홈런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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