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감각 유지 차원에서 냈다. 투구수 15개 정도를 생각했다."
프로야구 롯데 김시진 감독은 19일 문학 방문 경기 후 인터뷰에서 11-2로 9점 이기고 있던 9회에 '필승조' 김성배(사진)를 투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성배의 이날 등판을 '구원 투수 피로도(closer fatigue)'로 환산해 보면 20에 해당합니다. 보통 ‘경기 감각 유지’ 차원의 등판은 피로도 0~5 수준입니다. 김성배는 이날 등판으로 자책점 두 점을 올렸고 허리에 담도 올라왔습니다.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야구 통계학(세이버메트릭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 제임스가 고안한 구원 투수 피로도는 등판을 기준으로 이전 닷새 동안 상대한 타자를 날짜에 따라 가중치를 둬 계산합니다. 5일 전 상대 타자 숫자는 그대로 더하고 바로 전날 상대 타자 숫자에는 5를 곱해 더 하는 것 같은 방식으로 말이죠.
구원 투수 피로도=(5일 전 상대 타자)+(4일 전 상대 타자×2)+(3일 전 상대 타자×3)+(2일 전 상대 타자×4)+(하루 전 상대 타자×5)
2010~2012년 3시즌 동안 구원 투수 기록을 분석해 보면 피로도가 0~15인 2만4733타석에서 투수들은 상대 타자를 평균 자책 3.86으로 막았습니다. 15이상인 2만4680타석에서는 4.14입니다. 피안타율도 0.250에서 0.261로 올라갑니다. OPS(출루율+장타력)로는 0.699와 0.725 차이. 피로가 쌓이면 확실히 투구에 영향을 받습니다.
올 시즌 현재까지 평균 피로도가 가장 높은 선수는 한화 송창식(27.1). 누적 피로도(515) 역시 1위입니다. 그 뒤는 팀 후배 유창식(25.4). '창식이 두 마리 치킨'이 부도 위기로 내몰린 셈. 모든 경기 때마다 한국시리즈처럼 투수진을 꾸려나가는 김응용 감독의 투수 운용이 기록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윤근영도 피로도 18.4로 공동 14위입니다.
그 다음은 두산 오현택(22.0)과 변진수(21.8)입니다. 유희관도 18.5로 공동 11위입니다. 유희관이 19일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해서도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록해야 했던 사정이 녹아나는 기록이죠. 두산은 주중 3연전에서 팀 장타력 1위(0.423) 넥센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휴식을 주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롯데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필승조에 해당하는 김사율(20.4) 김승회(19.8) 김성배(19.2) 모두 피로도 20 안팎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19일 경기에서 김시진 감독은 김성배 평균 피로도 상황에서 '경기 감각을 유지하라'며 내보낸 거죠.) 이명우(17.7)도 누적 수치에서는 425로 2위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롯데는 이번 주중 3연전 경기가 없다는 거죠. 김 감독 투수 운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휴식이 뭔 소용 있겠습니까마는…
순위 | 선수 | 누적 피로도 | 등판 경기 | 평균 |
1 | 송창식(한화) | 515 | 19 | 27.1 |
2 | 유창식(한화) | 330 | 13 | 25.4 |
3 | 오현택(두산) | 352 | 16 | 22.0 |
4 | 변진수(두산) | 327 | 15 | 21.8 |
5 | 이민호(NC) | 417 | 20 | 20.9 |
6 | 김사율(롯데) | 368 | 18 | 20.4 |
7 | 이성민(NC) | 321 | 16 | 20.1 |
8 | 김승회(롯데) | 297 | 15 | 19.8 |
9 | 김성배(롯데) | 384 | 20 | 19.2 |
10 | 앤서니(KIA) | 316 | 17 | 18.6 |
반면 리그 1,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는 삼성과 넥센은 피로도 관리를 잘 해주고 있습니다. 넥센 한현희가 평균 18.5(공동 11위), 누적 333(9위)로 다소 걸리지만 넥센에서 그를 제외하면 피로도 16을 넘는 선수도 없습니다. 삼성도 팀내 피로도 1위 심창민이 16.1밖에 안 됩니다. 소위 추격조를 적절히 활용한 덕분일 겁니다.
프로야구 페넌트 레이스에서 촌놈 마라톤 해봤자 남는 건 DTD일 뿐. 차라리 미리 예방 주사를 맞는 편이 낫습니다. 지난해 구원 투수 피로도 1위 팀 SK(19.2) 불펜이 올해 예년만 못한 활약을 펼치는 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