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그가 은퇴했을 때 이렇게 썼습니다.

냉정히 말해 '2류 선수'가 한 팀에서 19년을 '버틴다'는 건 운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는 어디든 달려가 채웠고, 자기가 부족한 부분은 남몰래 채웠다. 타격감이 떨어질 때면 현대 타격 코치이던 김용달 코치(LG 출신)와 몰래 만나 타격 교정을 받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 그는 그렇게 누구보다 'LG맨'으로 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2009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2010년부터 LG 트윈스 육성군 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뒤 2년 더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나서 현재는 해외 연수 중입니다. 21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입던 LG 트윈스 유니폼을 벗은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현재 위치는 미국 오하이오주 볼링그린입니다. 볼링그린 주립대가 있는 곳에서 그는 '그린라인'이라는 팀의 코치로 올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린라인은 9~10살짜리 선수들이 뛰는 리틀리그 팀입니다. 미국 꼬맹이들은 그를 이종열이 아니라 '제임스 리'라고 부릅니다.


지역 신문 '센테니얼 트리뷴'은 1일(현지 시간) 이종열 코치 연수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은 언어 장벽도 허문다.'

기사에서 이종열 코치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운동만 했던 선수가 영어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사실 페이스북을 보면 영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래도 리틀리그에서 야구를 가르치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고 하네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야구로는 통하니까요.

같은 팀 코치 데이 파워스 씨 말입니다. "타격을 예로 들면 이런 겁니다. 이 코치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잘못된 동작을 과장해서 보여줘요. 그리고 나서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는 식이죠. 덕분에 아이들이 정말 빨리 배웁니다."

사실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이 은퇴하고 나서 흔히 밟는 코스가 있죠. 일본 2군 팀 혹은 마이너리그 팀 연수. 선진 야구를 공부하고 온다고 명분이죠. 그런데 이미 거의 다 완성 단계에 이른 선수들이 말도 안 통하는 코치에게 얼마나 많은 걸 기대할까요. 또 진짜 '야구 문화'라는 걸 이런 단기 연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걸까요.


이종열 코치는 확실히 남과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코치의 미국행을 도운 조성호 볼링그린 주립대 교수는 "만약 이 코치가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연수를 하려고 했어도 쉽게 자리를 구했을 거예요. 그러나 이 친구는 먼저 미국 야구의 풀뿌리 문화부터 배우고 싶어 하더군요"하고 말했습니다.

프로야구를 시작한 지 30년이 넘도록, 학생들도 값비싼 야구 장비를 쓰고, 프로 선수들이나 던지던 변화구를 던지지만, 어떤 의미에서 '야구 문화'는 늘 제자리걸음처럼 보이는 건 이종열 코치 같은 분들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러니까 20년 전 2년 마이너리그 연수 다녀온 걸로 여전히 선진 야구 전도사 노릇을 하시는 분이 천상천하 유아독존하고 계시다는 건 어쩌면 조금은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종열 코치 성공을 이렇게 멀리서나마 빌어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재미로 야구를 시작하고, 재미로 끝낼 수도 있게 되기를… 모두가 야구에 목숨을 걸지 않고도 당장 야구를 하는 그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되기를… 어릴 때 야구깨나 해 본 직장인, 정치인, 학자들이 더 많이 생겨 우리 야구 문화가 진정 풍요로워지기를… 이종열 코치가 가장 심한 냄새를 풍기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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