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사람들은 야구 선수 또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 세상 사람 모두가 알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면 '선수도 아니라는' 철없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들 중 누구도 세계 최고의 샐러리맨, 세계 최고의 학생이거나 세계 최고의 주부로서 번듯한 기록하나 세워놓지 못했음에도, 저마다 글로 풀자면 책 몇 권을 써도 부족한 감동과 희열과 분노를 품은 귀한 삶들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는다. - 김은식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 중에서

자유 없는 '자유계약'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4일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선수 명단을 공시하면서 "모든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올해는 11월 7일까지 현재 소속 구단과 계약을 맺는데 실패하면 20일 동안 나머지 7개 구단과 '자유롭게' 협상을 할 수 있다. 이때도 계약에 실패하면 내년 1월 15일까지는 8개 구단과 '마음대로' 협상을 해도 된다.

어쩌다 야구를 한 두 번 보는 캐주얼 팬도 이름은 들어봄직한 선수라면 말이다.

그러나 야구장 전광판에 뜬 이름을 보고 "쟤가 나랑 불알친구에요"하고 얘기해도 지난 주 소개팅에서 만난 야구 초짜 아가씨가 '저런 야구 선수도 있었나?' 하는 선수라면 FA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역사가 증명한다.

프로야구가 FA 제도를 시행한 11년 동안 '모든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한 선수는 모두 220명. 이 중 44.1%(97명)만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권리를 선언한 선수 중에서도 69.1%(30명)는 결국 소속팀에 그대로 남았다.

<1999~2010년 프로야구 FA 계약(단위: 명)>
 연도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대상  17  15  17  15  24  17  21  20  20  27  27  17
 신청  6  8  4  4  13  11  14  12  6  11  8  ?
 타팀  2  1  2  1  6  3  1  1  0  3  0  ?
 해외  1  2  0  0  1  0  0  1  0  1  2  ?
 잔류  3  5  2  3  6  8  13  8  6  7  6  ?
 미계약  0  0  0  0  0  0  0  2  0  0  0  ?

물론 소속팀에 대한 애정과 FA 권리 행사는 서로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처음부터 소속팀에 남고 싶었지만 나중에 후배들도 당당히 자기 권리를 찾으라는 선례를 남기려고 FA 신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그 비율이 70%에 육박했던 걸까?


문제는 '보상'

여러분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이직을 결심했다고 치자. 직장을 옮기고 싶은 이유는 수 백, 수 천 가지가 넘을지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마음에 드는 회사를 찾아냈다. 이제 남은 건 회사에 이직을 통보하는 일.

그런데 평소에도 참 마음에 안 들던 부장이 말한다. "A씨가 리프레시한 기분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니 정말 해피한 일이에요. 그 쪽 회사도 잘 알고 있죠? 지금 A씨가 지난해 받은 연봉 450%를 우리 회사에 줘야 한다는 거. 아니면 핵심 직원 빼고 우리가 고르는 직원 하나랑 A씨 연봉 300%를 주든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런데 프로야구 FA는 그렇다. FA로 선수를 데려가려는 팀은 원래 소속팀에 '전년도 선수 연봉 300% + 보호선수 18인 외 선수 1명' 또는 '전년도 연봉 450%'를 보상하도록 돼 있다.

그게 9년 연속 3할을 기록한 장성호가 '모든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는데도 다른 팀에서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았던 이유다. 장성호는 결국 시즌 중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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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는 지난해 KIA에서 5억5000만 원을 받았다. 장성호를 데려가려는 팀은 KIA에 최대 24억7500만 원을 줘야하는 셈. KIA에서는 잘 쓰지도 않는 선수를 데려오려면 그야말로 '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셈. 선수 본인이 나서서 "내 연봉 줄여서 저 돈 보상할 테니 제발 좀 데려가 달라"고 사정해도 오라는 팀이 없었다. 모두가 한 걸음 떨어져 입맛만 다셨을 뿐.


장성호가 일본에서 뛰었다면?

일본 프로야구는 FA 선수를 3등급으로 나눠 보상 체계를 달리한다. A급 선수를 데려오려는 팀은 '연봉 80%' 또는 '연봉 50% + 보호 선수 28인 외 선수 1명'을 보상해야 한다. B급 선수는 연봉 60% 아니면 선수 1명과 연봉 40%다. C급은 보상할 필요가 없다.

A~C 등급을 나누는 기준도 간단하다. 소속 팀에서 연봉 순위가 1~3위면 A급, 4~10위면 B급, 나머지는 C급이다.

지난해 장성호는 KIA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였다. 그러면 A급 선수니까 장성호를 데려가려면 4억4000만 원이면 충분했다. 선수를 내줘야 할 경우에도 한화는 1차 지명 출신인 안영명을 내줄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보호선수가 28명이라면 말이다.

올해도 마찬가지.

롯데는 불펜이 필요하다. 넥센 송신영은 FA 자격을 갖췄다. 올해 송신영은 1억6000만 원을 받았다. 현재 FA 시스템이라면 롯데는 넥센에 7억2000만 원 또는 4억8000만 원에 장성우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장석 대표는 7억2000만 원으로는 부족하다며 손승락을 현금 트레이드하는 걸 생각할지 모르겠다.)

일본이었다면? 송신영은 넥센에서 4번째로 연봉이 많으니 B급이다. 돈으로는 9600만 원, 선수가 낀다고 해도 상동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가 될 확률이 높다. 이 정도면 팀이나 구단 모두 아무 부담 없이 FA 시장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야구 선수도 좋은 아빠, 좋은 아들로 살 권리가 있다

물론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구단 숫자도 다르고 선수층 두께도 다르다. 때문에 소중한 자원을 빼앗기는 구단에 대한 보상 수준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현행 제도를 그대로 두고 '모든 구단과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를 운운하는 건 거짓말이다.

그러니까 등급제를 실시하고 보상 수준을 낮추자는 얘기다. 팀마다 포수가 없어 난리인데 최기문이 시장에 풀려도 아무도 입질할 수 없는 구조라면 분명 잘못이다.

처음 김은식 씨 글을 꺼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등급제는 쇠고기 품질을 나눠 고기값을 결정하는 것 하고는 다르다. 오히려 지금 팀에서 자리를 못 찾는 아빠가 더 좋은 가장이 될 수 있도록, 부족한 아들이지만 고향에 계신 부모님 곁에서 자기가 노력하는 모습을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FA 등급제는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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