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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팬들은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를 '드록신(神)'이라고 부릅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첼시에서 뛰면서 득점왕을 두 차례나 차지했기 때문만이 아니죠. 영혼이 아름다운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하는 나라

1978년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난 드로그바는 5살 때부터 프랑스에 있는 삼촌 집에서 지냈습니다. 3년 후에 잠시 코트티부아르로 돌아왔지만 부모 모두 실직자가 되면서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컸습니다.

드로그바가 어린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국가브랜드위원에서 만든 공익 광고 '소년의 지구본' 편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코트디부아르는 자기네 식민지였으니 프랑스에서 모르는 이들이 적었을지 모르지만, 드로그바가 느끼는 감정은 저 소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드로그바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동등한 기회와 부(富)를 갖지 못한 나라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척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보리 코스트 또는 드록국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灣)에 있는 코트디부아르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나라는 아닙니다. 아예 드로그바 영향으로 '드록국'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을 정도죠. 1960년에야 프랑스에서 독립한 나라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정식 국명 코트디부아르보다 '아이보리 코스트(Ivory Coast·프랑스어 코트디부아를 영어로 바꾼 것)'로 더 알려진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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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디부아르는 세계 최대 코코아 생산국입니다. 전 세계 초콜릿 40%가 코트디부아르에서 생산한 코코아로 만들죠. 커피 생산량도 전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코트디부아르는 1960년 독립 이후 20년 동안 연 평균 성장률 10%를 기록할 정도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소득이 1600 달러 정도밖에 안 되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정치도 불안하죠. 2002년부터 시작한 내전인 5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북부 이슬람 세력이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과 맞서 싸운 것이죠. 이슬람 세력은 "정부 관료들이 코코아 수출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실패했습니다. 그 뒤 내전이 계속돼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드로그바의 축구

그런데 이 내전이 2005년 10월 잠시 중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달 코트디부아르는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경기가 끝나자 드로그바는 TV 인터뷰에서 무릎을 꿇고 "1주일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후에도 2년 동안 전쟁은 계속됐지만 이 1주일 동안은 총성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드로그바의 애국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국 코트디부아르를 넘어 꾸준히 아프리카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2007년에는 유엔 홍보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죠. 2008년에는 자선 협회를 만들어 아프리카에 의약품, 식료품, 축구공, 유소년 시설 등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재 60억 원을 털어 조국에 종합병원을 짓기로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드로그바는 "우리는 불치병에 대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에 아비장(코트디부아르 최대 도시)에 있는 병원에 갔을 때 거기 있는 어린이들은 그저 인슐린이 없어 당뇨병으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라면서 "단지 살아 있을 수 있는 기회(a chance just to stay alive)를 주고 싶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드로그바가 나이키와 함께 'Lace up & Save lives' 캠페인을 벌인 건 당연한 일이죠. 드로그바는 "나이키에서 캠페인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을 때 단 1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이키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에이즈 치료를 돕기로 한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빨간 끈을 축구와에 매고 뛰어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드로그바는 부상을 당하고 맙니다. 일본과 평가전을 벌이다 오른팔이 부러진 것이죠. 하지만 수술 나흘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고 보름 만에 포르투갈과 벌인 조별 리그 첫 경기에 참여했습니다.

드로그바의 부상 투혼에도 '죽음의 조'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과는 0-0 무승부, 브라질에는 1-3으로 패했습니다. 북한에 3-0으로 대승을 거뒀지만 1승1무1패로 결국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드로그바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북한과 경기가 끝난 뒤 "물론 실망스럽지만 동시에 이런 그룹에 들었다는 점을 떠올려 볼 때 그렇게 크게 실망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브라질과 포르투갈이라는 세계 최고의 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습니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입다"라면서 "내 심장은 언제나 코트디부아르와 함께 뜁니다. 내 조국의 주장 완장을 달고 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뛰는 드로그바의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앞으로 그가 축구장 안팎에서 보일 모습이 더더욱 기대됩니다. 축구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한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애국심'이죠. 아니, 이게 바로 '애국심'이죠.


정몽준의 축구

그래서 그럴까요? 한 국회의원이 낸 보도자료가 드로그바와 대조되면서 참 마음이 씁쓸하더군요. 최근까지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A) 부회장이 낸 보도자료 내용입니다.

1. 2002년 국내에서 16강에 진출했을 때는 대통령 시행령을 고쳐서 해 주었음. 해외원정 16강 진출은 국내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실임. 국내에서는 해주고, 이 보다 더 어려운 해외경기에서는 안해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는 지적까지 받을 수 있음.

2. 국정을 총괄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모든 일에는 국제사회와 국내의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경중이나 우선순위가 있어야 할 것임. 김대중 정부는 그런 사실을 몰라서 혜택을 준 것이 아니라고 봄.

3. 올림픽 3위와 월드컵 16강 진출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지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임. 참고로, 일본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축구 동메달을 획득하였지만, 월드컵 16강은 일본에서 공동 개최된 2002년에 겨우 달성할 수 있었음.

4. 2002년에 박지성, 이영표 같은 선수들이 혜택을 받았고, 그 후 해외로 진출해 잘하고 있음. 이제는 박주영, 기성용 같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 박지성 이영표 선수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젊은이들로서 그들이 국가의 병역의무을 회피하려하고, 애국심이 없다면 그러한 투혼을 발휘할 수 없음 것임. 우리의 젊은 선수들이 신성한 병역의무를 회피하고 돈을 더 벌기위해 병역특례를 요청하는 것으로 생각이야말로 시대에 맞지않는 편견이라고 봄.

5. 병역의무가 없는 일본에서는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혼다와 같은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 오늘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지만, 축구도 전쟁이라면 전쟁인데, 정부관계자가 틀린 이야기를 중요한 월드컵 경기를 앞둔 부적절한 시점에 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임.

6. 월드컵이 끝난 뒤에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해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람.

축구가 전쟁이네 마네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다만 한 선수는 나라를 하나로 합쳤고, 다른 이는 나라를 분열시키는 건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지구본을 들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나라지만 동시에 영해에서 군함이 침몰하는 나라기도 하니까요. 아, 축구 프로 리그 1군에 정식 군인 팀이 있는 나라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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