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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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5일 LG와 히어로즈는 두 팀 합쳐 역대 최다인 39점을 올리는 난타전을 벌였다. 이튿날에도 불을 뿜으리라 기대했던 두 팀 방망이는 비로 식었다. 5월 17일 경기에서 두 팀은 27점을 뽑았지만 이날 경기는 더블헤더였다. 사진 출처


오늘 잘 쳤으니 내일은 ㅠㅠ

지난해 9월 17일 한화 이글스는 잠실구장에서 홈팀 두산 베어스를 10-2로 꺾었다. 한화 타선은 1회 2득점을 시작으로 2회 3점, 3회 다시 2점을 보태며 초반부터 승기를 잡았다.

이튿날 한화 타선은 한 점도 뽑지 못했다. 두산은 전날과 똑같이 2점을 뽑았다. 경기장을 빠져 나가던 한화 팬들은 말했다. "어제 점수 많이 낼 때 진심으로 불안하더라니까. 역시 전날 점수를 많이 내면 다음 날은 못 쳐."

전날 불 타선을 뽐내면 다음 날 타선이 헤맨다는 건 야구팬들 사이에 '상식'이다. 어떤 팬들은 "전날 감(感)만 믿고 아무 공에나 방망이를 휘두르게 된다"고 그럴 듯한 이유를 대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2007~2009 시즌 2990경기에서 10점 이상을 뽑은 건 모두 258번. 이 258팀이 다음 경기에서 뽑은 평균 득점은 5.14점이었다. 이 세 시즌 동안 평균 득점 4.67점보다 0.5점 가까이 높은 점수다.

2008년 KIA와 롯데는 10득점 이상 경기(각각 8번) 이후 6.88점을 뽑았고 △2008년 한화(8번·6.5점) △2009년 두산(25번·6.08점) △2009년 SK(19번·6점) 역시 6점 이상을 뽑았다.

그럼 거꾸로 전날 무득점에 그친 팀은 어떨까? 이 세 시즌 동안 한 점도 뽑아 내지 못한 건 모두 166팀, 이들은 다음 경기에서 4.69점을 뽑았다. 전체 평균보다 0.02점 높기는 하지만 사실상 전날 빈타가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오늘은 잘 쳤으니 내일도 -_-)/


득점 분포를 알아보면 전날 타격이 끼치는 영향을 조금 더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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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무득점에 그친 팀은 역시 무득점에 그치거나 1점을 뽑아내는 데 그칠 확률이 올라간다. 빈타가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6~8점을 뽑을 확률이 이를 상쇄하는 모양새.

전날 10득점 이상을 기록한 팀은 5점 이상 뽑을 확률이 대체로 올라간다. 타격 상승세가 오히려 계속되는 분위기는 아닐까?

한 번 이렇게 접근해 보자. 한 경기에서 각 팀이 뽑아 낸 점수를 시즌 전체 평균하고 비교해 보는 거다. 시즌 평균 절반 이하로 묶인 경기와 두 배 이상으로 점수를 뽑아낸 경기를 기준으로 놓고 그 다음 경기 득점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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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점수를 적게 냈을 때는 다음 날 1점 빈도가 늘지만, 0점 빈도가 줄어든다. 잘 친 팀은 다음날 3, 5점이 많이 나지만 이 정도 점수를 뽑았다고 "상승세가 계속된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통계학적으로 말해 한 타선이 연속 경기에서 뽑아낸 득점 사이의 상관관계(r)는 0.04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 영향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다.

그러니까 응원팀이 점수를 많이 낸 경기를 본 날은 걱정 말고 두 다리 쭉 뻗고 자면 되는 거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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