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선배 블로그 너무 어려워요. 야구 선수 이름도 막 다 알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아요." 이 사소한 투정(?)에서 이 꼭지가 시작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 좋아하는 야구를 어렵고 딱딱한 걸로 만들었구나'하는 반성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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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기계식 게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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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아니면 네 살 때였습니다. 막내 삼촌이 어디선가 수동 기계식 야구 게임기를 구해다줬습니다. 손가락으로 맨 오른쪽 손잡이를 당기면 스프링이 움직여 아웃과 안타를 결정해 주던 게임기.

아직 야구 규칙을 잘 모르던 저는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빠, 홈런은 몇 점이야?" "응, 사람이모인 만큼 점수를 줘." "아, 그렇구나."

아버지가 말씀하신 '사람'이 당연히 '주자'라는 걸 몰랐던 꼬마. 처음 찾은 도원구장에서 김바위 선수가 홈런을 날리자 홈런 공 근처로 뛰었습니다. 만날 지는 내 꼴찌 응원팀, 1점이라도 보태주고 싶었으니까요.


야구는 9명이 한다. 아니다, 10명이다.

대학에 와서 처음 사귄 여자 친구와 처음 같이 야구장에 갔던 날. 자기를 '삼성 팬'이라고 말해 야구를 나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했던 기대.

1회초 공격이 끝나고 삼성 수비. 여자 친구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비할 때 이승엽은 어디 있어?" "저기, 1루에 있잖아." "아, 타자도 수비하는 거야?"

네, 타자도 수이합니다. 야구 선수는 크게 공을 던지는 쪽(수비)과 때리는 쪽(공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넓은 야구장은 수비수 9명이 지키고 있는데요, 서 있는 자리에 따라서 아래 그림처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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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피디아

이 선수들이 그대로 공격에도 나섭니다. 타격 실력과 감독 성향에 따라 1번부터 9번까지 타순을 꿰차고 차례대로 방망이를 들고 공격하는 겁니다.

그런데 야구장 전광판을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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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마이뉴스

흰색 페인트로 1~9번이 써 있는 건 타순입니다. 왼쪽에 제일 먼저 나오는 박한이는 1번 타자라는 뜻이죠. 그런데 그 옆에 8은 뭘까요? 등번호가 8번이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야구 선수는 수비 위치별로 번호가 정해져 있습니다. 투수가 1번으로 시작해서 우익수 9번으로 끝납니다. 전체 순서는

1(투수)-2(포수)-3(1루수)-4(2루수)-5(3루수)-6(유격수)-7(좌익수)-8(중견수)-9(우익수)
포지션 모양을 잘 보시면 금방 외울 수 있습니다. 헷갈리는 건 3루수와 유격수 정도일까요?

다 숫자인데 이상하게 D가 있습니다. D는 Designated Hitter의 약자로 '지명 타자'를 뜻합니다. 지명타자는 수비는 하지 않고 공격만 하는 선수입니다. 이런 선수를 왜 두냐고요? 우리나라에서는 투수가 공격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투수가 공격을 하지 않으면 8명만 공격을 하기 때문에 이 자리를 지명타자가 대신 들어서는 겁니다.

그래서 야구는 9명이 하는 경기지만, 실제로는 10명이 나옵니다. 그래서 타순이 다 끝난 다음에 P로 Pitcher, 투수를 표시해 주는 겁니다.


전광판엔 많은 정보가 숨어 있다.

전광판 사진을 꺼낸 김에 조금 더 봅시다.



위쪽 TEAM을 보면 삼성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두산이 나옵니다. 삼성이 원정팀, 두산이 홈팀이라는 뜻입니다.

한 회(回)는 초와 말로 나뉩니다. 원정팀이 먼저 공격하고 홈팀이 나중에 공격을 합니다. (우리 프로야구 8개 팀은 도시를 하나 씩 정해 본거지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팀이 홈 팀, 남의 동네 팀이 원정팀입니다.)

돌발 퀴즈. 지금은 몇 회일까요? 정답은 14회입니다. 전광판엔 12회까지만 나와 있기 때문에 경기가 그 이상 진행되면 이전 점수는 지우고 위 그림처럼 표시하는 겁니다.

그 아래 R, H, E, B는 또 뭘까요?
 


R은 득점(Run), H는 안타(Hit), E는 실책(Error), B는 볼넷(Base on Balls) 숫자입니다.



더 아래 조금 작은 글씨로 S, B, O가 써 있는 건 스트라이크(Strikte), 볼(Ball), 아웃(Out) 카운트 상황입니다.

H, E, FC는 타자가 공을 때렸을 때 불이 들어와 심판이 어떤 판정을 내렸는지 확인시켜주는 구실을 합니다.

H는 역시 안타, E는 또 실책, FC는 야수선택(Filder's Choice)를 나타냅니다. (야수선택은 기본적으로 다른 주자를 잡으려다가 타자를 살려준 때를 뜻합니다.)

그 아래 HR, RB, AV가 있습니다. 복잡도 합니다.
 


이 기록은 현재 타석에 있는 타자 기록입니다. HR은 홈런(Home Run), RB는 타점(Runs Batted In) 숫자, AV는 타율(Batting Average)을 나타냅니다.

이제 소개 안 한 건 하나밖에 없죠? CH, I, II, III, LF, RF 옆은 심판 이름입니다.

CH는 주심(Umpire in Chief), I~III는 1~3루심을 뜻합니다. LF, RF는 선(線)심입니다.
 


보통 경기에서는 1루심과 3루심이 파울, 페어 판정을 하지만 포스트 시즌(정규 시즌이 끝나고 벌이는 챔피언 결정 토너먼트) 같은 중요한 경기에는 심판을 두 명 더 두고 이들이 외야에 떨어진 공이 파울인지 페어인지 결정하게 합니다. 이들이 바로 선심입니다.

전광판만 봐도 벌써 어지럽다고요?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용어는 전광판뿐만 아니라 TV 중계 때도 자주 등장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한 번 지켜보세요. :-)


이렇게 잘난 척 하자!

심판 중 CH가 주심이라는 건 어지간하면 야구팬이면 알아도 대부분 "포수"를 뜻하는 "Catcher"에서 헤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 때 자랑스럽게 "그건 'Chief'야. 주심이잖아"하고 말해주면 됩니다 -_-)/



# 다음 번엔 스트라이크 존, 파울 라인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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