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찬 바람이 몰아치던 1984년 2월의 어느 날, 조치원 신병 훈련소에 갓 입소한 방위병 하나가 연병장을 구르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크게 고되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오른쪽 어깨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군기가 바짝 들어 긴장한 탓이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부만으로 돌아온 뒤에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의무대를 찾은 그에게 군의관은 오른쪽 어깨 인대가 늘어났다고 진단을 내렸다.

방위병 복무에는 아무 지장이 없는 부상.

하지만 한밭중 체육부장관기 우승, 대전고 청룡기 4강의 주역이었던 박종호(44) 씨의 야구 인생은 그걸로 끝이었다.

"제대하고 어깨에 좋다는 건 다 해봤어요. 2군에서 재활하려 발버둥쳤던 거죠. 그런데 한번 늘어난 인대는 낫질 않더라고요. 결국 퇴단하고 1년을 허송세월했죠"

무력감, 패배감, 보이지 않는 희망. 매일 술이었다.

운명의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깨질 듯한 머리, 뒤집히는 속.

양변기를 부여잡고 속을 게워내고 있을 때 매일 듣던 여동생의 콘트라베이스 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난 프로야구 첫 번째 고졸 선수다. 프로 원년 우승 멤버다. 뭐든 할 수 있다"

박 씨는 그 길로 대전시내 음악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정말 '미친 듯' 연습에만 몰입했다.

"별로 대단한 활약을 한 건 아니지만, 대타로 나가면 쏠쏠한 활약을 했었죠. 콘트라베이스가 그랬어요. 드러나지는 않지만 묵묵히 꼭 필요한 구실을 하니까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10년이 지나 목원대 음대를 졸업했고, 독일 유학을 거쳐 현재는 대전시립교향악단 수석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야구 중계를 해도 그냥 '야구를 하나 보다' 하는 정도로 넘겨요. 아니, 피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지금은 음악이 야구보다 더 좋은 것뿐이죠. 조용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나쁘지 않잖아요?"

무릅팍 도사는 매번 출연자에 맨 마지막 질문으로 '꿈이 무엇인지' 묻는다.

언제 들어도 설레는 낱말, 꿈. 더러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그 무엇,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집착.

하지만 패자는 결코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지만, 승자는 더러 바꾼다.

그것이 박종호 씨가 실패한 야구 선수가 아닌 성공한 클래식 연주자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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