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몇 번을 쓰려다가 결국 못 썼던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각 팀 감독들은 어떤 방식으로 타순을 짜고 있을까? 타순을 효율적으로 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세이버쟁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OPS 순으로 타순을 짜는 게 보다 효율적이지 않을까? 사실 몇 가지 고민해 본 세부 사항들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결과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 바람에 생략했습니다. 글을 조금 더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어제 오후 2시 40분경부터 이 글 시작했습니다. -_-;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물론 귀차니즘이 가장 큽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별님께서 훌륭한 자료를 올려주셨는데 언제까지 귀찮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하고 한번 알아보고자 글을 씁니다. 현재 시각 2005년 10월 26일 14시 39분. 언제 마무리될지 저부터 궁금해집니다. -_-; 제 개인적으로 쓰기 시작하고 2-3년이 지나 마무리한 글들도 제법 있다는 ㅡ,.ㅡ

그리하여 타순에 대한 글은 어떻게든 시작이 됐습니다. 그럼 각 팀 타순을 어떻게 비교하잔 소리인가?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두 가지 메트릭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 결과 XR과 OPS 사이에서 다소 갈등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OPS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별님 자료 맨 아래에 팀 타순별 XR 분포를 보고 그래, XR이야,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최종 결론은 GPA가 뽑혔습니다. ㅡ,.ㅡ

개인적으로, 미국 친구들이 왜 그렇게 GPA 타령인지 다소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OPS보다 이론적으로 정확하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그리 큰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타율과 비슷한 범위의 값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게, 요즘 제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도 저처럼 단순한 놈에게는 참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GPA입니다. 노파심에 밝히자면 (1.8×출루율+장타율)/4, 이게 GPA입니다.

먼저 2005 시즌 국내 프로야구 타순별 GPA입니다.



리그 평균 GPA는 .250이었고, 타순으로 볼 때 4번 타자들의 GPA가 가장 높았습니다. 이로써 위에서 던졌던 3)번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을 지웠는데요, 3번 질문은 팀내 최고 타자를 3번에 놓을까, 4번에 놓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이었습니다. 또 수비에 가장 꼭 필요한 선수는 8번에 놓을까, 9번에 놓을까,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국내 리그에서, 적어도 GPA상 최고 타자들은 4번에 위치했습니다. 8/9번은 차이가 너무 미미해서 아직 확답을 내리기는 이르다고 봅니다.

하지만 사실 가장 제 예상 밖의 결과를 보인 건 2번 타순이었습니다. 2번 타순의 GPA가 .234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의외라고 생각되는 건 저 혼자만일까요? 리그 평균보다도 16포인트나 모자란 수치를 보이는 선수들에게 우리가 작전 수행 능력을 기대했던 걸까요?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그럼 한번 2번 타자들은 다른 타순에 비해 어떤 특징을 보였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일까요? 예상하신 대로, 희생번트 비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선발로 경기에 출장한 선수들인 이번 시즌 모두 635개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습니다. 이 가운데 2번 타순에서 202개가 기록됐습니다. 비율로 따지자면, 31.81%. MLB의 경우 2번 타순에 성공시킨 희생 번트 비율은 18.52%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국내 2번 타자들이 번트를 많이 댔다는 뜻입니다. NL의 경우엔 어떨까요? 그러니까 투수들의 경우 말입니다. 투수들 역시 전체 희생번트 대비 24.19% 정도밖에는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비율로만 따지자면 우리 2번 타자들은 MLB의 투수들보다 더 자주 번트를 댔습니다. (헐...을 쓸 수밖에 없군요. -_-, MLB의 평균 GPA는 .251, 우리 리그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TV 해설자들이 그렇게 강조하는 타구 우측으로 보내기. 그러니까 우타자의 경우 밀어치기 말입니다. 2번 타순에서 구장 우측으로 타구를 날린 비율은 .392입니다. 제법 높은 비율입니다. 실제로 타순으로 볼 때 우측으로 가장 타구를 많이 날린 건 3번 타자들(.439)이었습니다. 그리고 2번 타자들은 2위. 리그 평균은 .371. 전체 평균과 마찬가지로 두산의 2번 타자들 무려 .440이나 타구를 우측으로 보냈습니다. 최하위는 우측 타구 비율 .282에 그친 롯데 2번 타자들.

매우 성급한 결론을 내자면, 우리나라 2번 타자들은 상당히 '작전'을 의식한 야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할'을 다소 강요받아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많은 희생번트, 그리고 높은 우측 타구 비율. TV 해설자들이 선호하고, 또 강조하는 식의 역할 수행에 나름 충실한 결과였다고 봅니다. 혹은 그런 식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감독들이 타순을 조정하는 데 있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전체 타순 속에서 각 팀 2번 타자들의 역할은 어땠을까요?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렬은 팀 순위를 따르겠습니다.


1. 삼성 라이온즈



2번 타순을 보기로 했는데, 5번이 더 눈에 뜨입니다. 삼성에서는 모두 7명의 타자가 5번 타자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김한수 선수가 65경기로 5번에 출전 5번 최다 출전 선수입니다. 4번보다 6번이, 근소한 차이지만 앞선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8번 타순은 좀 심하게 쉬어가는 자리였네요 -_-


2. 두산 베어스



2번 타순에서 GPA .257을 기록,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높은 GPA를 기록했습니다. 3번의 GPA가 .236으로 2번에 비해 쳐지는 게 아쉽습니다. 4번 타순에서 .309를 찍어준 것 역시 칭찬받을 만한 일입니다. 7번 타자의 GPA가 가장 쳐진다는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3. SK 와이번스



와이번스는 5번이 6번보다 약하고, 또 9번이 8번보다 강한 모습입니다. 이 모양으로 롤러 코스터를 타면 제법 재미있지 않을까요? -_-;


4. 한화 이글스



이 모양 롤러 코스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_-; 역시나 5번이 6번보다 약합니다.


5. 롯데 자이언츠



2번, 8번의 부진이 그래프로 손쉽게 확인되지만, 그보다 전체적으로 그래프의 높이 자체가 문제가 있습니다. -_-;


6. LG 트윈스



LG는 2번과 6번. 모두 리그 최하위 기록입니다. 정말 2번 문제 참 -_-;


7. 현대 유니콘스



5번이 너무 아쉽네요. 보아뱀을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_-;


8. 기아 타이거즈


참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기 힘든 모양입니다. -_-;

이 결과를 종합해서, 한번 최고 GPA 팀과 최저 GPA 팀을 구해 보면 ;



다시 이를 그래프로 그리면 ;



그래프 사이에 흐린 실선이 하나 그어져 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최고와 최저 GPA 사이의 차이를 나타낸 선입니다. 그 선 길이가 길수록 둘 차이가 많이 났다는 뜻이겠죠? ^^ 표에서 보시다시피 2번과 6번이 0.80과 0.77로 가장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를 볼 수 있는지, 소위 "Box-Whisker 그래프"를 그려보겠습니다.

Box-Whisker 그래프에 대한 설명은, http://argyll.epsb.ca/jreed/math9/strand4/boxNwhisker.htm 를 참고해 주세요.



증권하시는 분들, 뭔지 아시겠죠? ^^ 2번과 6번이 언뜻 사소한 차이지만, 이 그래프를 통해 확인해 보면, 실정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번은 확실히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그만큼 좋은 2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뜻이 아닐까, 고 한번 개인적으로는 생각해 봤습니다.

언뜻 그래프만 보시면, 그리고 제가 그렇게 설명을 한 탓도 있겠지만, XR로 보시면 ;



하위 타선에 비해 2번의 득점 창출이 많습니다. 3, 4번 다음으로는 1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6번은 거의 차이가 없었고, 8번에 수비가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치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의사구 기록을 보시면, 5번 타순을 거른 경우가 35번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하지만 GPA나 XR 모두 5번 대신 6번과 상대하는 것이 그리 큰 이점이 없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6번을 거르고 7번을 상대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겠죠? 물론 수학적으로는 말입니다. 그게 마음대로 되면, 야구는 정말 재미없겠죠. ^^

+
이 글을 쓰는 동안, 커피 6잔, 오렌지주스 3컵, 흰우유 2컵 그리고 제법 많은 물을 마셨습니다. 계란찜, 어묵 볶음, 고등어구이, 약식, 떡국 등으로 요기를 때우기도 했네요. 담배는 벌써 새로운 갑을 뜯은지 오래. 빌리 조엘의 Honesty, 아바의 SOS, 비지스의 Holiday,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 Maceo Parker의 Home Boy, 리얼그룹의 Come together 등의 노래도 들었고, 월드 시리즈를 두 경기나 보기도 했습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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