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0. QS에 대한 오해

박찬호 선수가 MLB에 진출하면서, 야구팬들의 경기를 즐기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일부 매니아층에서 향유되던 MLB의 문화가 거의 모든 야구팬, 나아가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관심까지 끌어 모으면서, 야구 경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가 야기됐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박찬호 선수의 포지션이 투수기 때문에 투수와 관련된 많은 새로운 스탯들이 야구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물론 내공이 깊으신 분들은 이전부터 알고 계셨겠지만, 저는 솔직히 박찬호 선수가 아니었더라면 퀄리트 스타트(Quality Start)라는 낱말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파울볼러 여러분 가운데는 그 개념을 모르시는 분이 없겠지만, 정의를 되새기는 점에서 넘어가자면, 퀄리트 스타트(이하 QS)는 선발 투수가 경기에 등판 6이닝 이상 3실점 이내로 막아주는 걸 뜻합니다. 처음에 저도 이 QS라는 기록에 신기해 했고, 박찬호 선수가 QS를 거두고도 승수를 챙기지 못할 때면, FC 다저스라 불리던 LA의 타선을 원망하기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러는 와중에 우리는 득점 지원율이라는 스탯에도 노출되게 됐죠. ^^;)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6이닝 3실점, 뭐야? 겨우 4.50짜리 방어율을 보고 대단하다고 칭찬한다는 거야?

아마, 이런 생각 해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특히 많은 이들의 성을 팩으로 바꾸길 즐기는 사이트에 가 보시면, 이런 식의 발상을 하시는 분들 심심찮게 발견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면서 저는 은근슬쩍 잊고 있는 게 있습니다. 무심결에 너무도 당연한 걸 놓치고 있었는데, 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던져서 뜨끔했습니다. 그게 최저치잖아. 그렇습니다. 최저 6이닝을 던져야 하고, 아무리 많아도 3실점밖에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존재하는 거였는데, 저도 모르게 방어율 4.50만 떠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방어율과 승수 사이의 해묵은 논쟁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새 저도 모르게, 우리 팀이 2점밖에 못 내면 상대를 1점으로 막아야 하고, 우리가 10점쯤 냈을 땐 한 4-5점 줘도 괜찮은 거 아냐?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투수는 그 ‘승수’로 가치를 평가 받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경기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투수의 집중력이 달라진대도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 사이 야금야금 깎아 먹는 방어율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말입니다. 그러니까 QS를 우습게 생각해 버린 결과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까지 번져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한번 통계적으로 검증해 보고자 합니다. 정말 QS는 얼마 정도의 가치를 갖는가, 하고 말입니다. 가급적 많은 통계 자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우리에겐 Retrosheet.org 부럽지 않은 별보며한잔 님의 자료가 있습니다. 그리고 8월 28일 현재까지, 870개의 선발 투수들의 게임 로그(Game Log) 자료가 있습니다. 1,000건도 되지 않는다며 나무라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제가 현재 지구상에서 구할 수 있는 프로야구 관련 자료가 그것뿐이라 어쩔 없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 QS의 통계적 검증

870번의 선발 등판 중, QS를 기록한 경우는 모두 344번입니다. 전체 등판의 약 39.54%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QS를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전체 경기 내용 가운데 상위 40% 정도에 해당하는, 평균 이상의 경기 내용을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개인적인 예상으로는, 대략 48% ~ 50%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었는데 기대치보다 낮았습니다.

그럼, 정확히 계속 6이닝 3실점, 그러니까 QS의 마지노선만 계속 기록하는 투수의 승률은 어느 정도나 될까요? 8월 28일까지 리그 평균 방어율은 4.39입니다. 아주 단순히 피타고라스 승률로만 계산했을 경우, 승률은 약 .489정도 됩니다. 반올림을 심하게 해준대도 50%. 한 경기 이기면, 한 경기 져주는 그런 선수가 단지 QS를 계속 기록한대서 팬들이 그 선수가 대단한 투수라고 생각할까요? 상위 40%면 평균 이상이기는 합니다만, 그저 무난한 투수들도 어느 정도 수준이면 획득할 수 있는 기록이 QS가 아닐까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QS를 기록한 경기과 그렇지 못한 경기의 차이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모든 기록이 QS를 기록했을 때 압도적입니다. 승수는 130%나 상승했고, 패는 1/4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승률도 거의 세 배에 달합니다. 방어율은 차이가 너무 심해서 따로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투구 이닝 역시 2이닝 이상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닝 당 투구수가 확연히 줄어듭니다. Quality Start를 기록한 투수는 확실히 양질의 투구를 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일부에서 QS로는 부족하다면서 주장한 QS+를 기록했을 때는 어떨까요?


물론 차이를 보여주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QS과 非QS의 차이만큼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정말 S급의 투구를 가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면 QS+가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QS만으로도 충분히 A급의 투수는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그래서 논의를 다시 QS에만 한정시키도록 하겠습니다.


2. QS 경기 분포 양상

위의 기록을 통해 아시겠지만, 확실히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의 투구를 보여준 선수들이 많지 않고서는 이런 결과가 얻어지기 힘듭니다. QS시 투구 양상 분포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표로 한번 보시면 ;


분명, 6이닝에 몰려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7이닝 투구도 87% 수준입니다. 그리고 6이닝 이상을 투구한 전체의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가장 빈도가 많은 경우는 6이닝 2실점으로 36회를 기록, 전체의 4.1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6이닝 1실점 역시 22회로 빈도수가 높은 편이지만, 6이닝 1실점과는 동률, 2실점보다는 오히려 빈도수가 작습니다. 7이닝 무실점 혹은 1실점 역시 6이닝 3실점보다 훨씬 많은 빈도수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 이닝을 마치지 못한 경우, 투수가 교체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닝을 마친 경우가 231회에 달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는 97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새로운 이닝에 들어와 아웃 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물러나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QS에만 국한 된 경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전체 경기를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 양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를 보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QS의 이닝과 실점별 상황을 그래프로 짚어 보면서, 개인별 QS 상황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 개인별 QS 상황

이번 시즌 QS를 단 1회라도 거둔 투수는 모두 60명입니다. 그럼 먼저, QS 횟수 상위 10걸을 보시겠습니다.


예상하셨던 대로, 손민한 선수가 1위입니다. 공동 2위를 차지한 두 선수 가운데, 문동환 선수 부활의 조짐이 확실히 발견되는 것 같아 기쁘게 생각합니다. 늘 에이스가 없다시는 SK 팬 여러분, 김원형 선수도 확실히 수준급 에이스라는 말입니다! 캘옹 역시나 무너진 현대 마운드의 희망, 이오수 선수 역시 등장할 줄 알았죠. ^^; 이상목 선수 14번밖에 선발 등판 안 했으면서 벌써 10번, 스미스 선수는 이미 떠나 버렸고, 신승현 선수 역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QS% 상위 10걸입니다. ;


김덕윤(삼성), 신용운(기아) 두 선수 100%의 QS%를 기록하기는 했습니다만, 달랑 1번 선발 등판에 100% QS를 기록 제외했습니다. 현대의 송신영, 황두성 선수 역시 선발 등판 5번 가운데 4번의 QS를 기록 80%를 QS%를 보였지만, 표본이 작아 제외시켰습니다. 최소 10경기 이상 선발로 출장한 선수의 기록입니다.

배영수 선수야 그렇다 치고, 이상목 선수 굉장합니다. 좀더 일찍 합류했더라면… 손민한 선수 다시 힘 보충해서 돌아와 멋진 모습 보여주실 거죠? 문동환 선수가 빠질 리가 없죠. 늘 에이스가 없다시는 SK 팬 여러분, 크루즈 선수가 몇 게임 안 뛰었다고 이러시깁니까? 왜 10걸이라면서 11명이냐고 물으실 분들을 위해 자신있게 밝힙니다. 이오수잖아요. ^^;

마지막으로 QS를 기록했을 때의 방어율만 한번 뽑아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한번 미치면 정말 무서울까, 알아 보자는 것입니다.



(시즌 ERA가 여러분이 알고 계신 방어율과 다른 점 발견하신 분들 계실 겁니다. 선발 등판시의 방어율만 계산했기 때문임을 밝히겠습니다. 공동 4위 김명제 선수와 리오스 선수의 Q_ERA는 1.0253164556962로 똑같았습니다.)

LG의 박만채 선수 역시 QS를 기록했을 때의 방어율이 0이었습니다만, 선발로 4경기에 나와 QS 1번 기록한 경기가 무실점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출전 선발 경기수를 10 경기로 제한했기 때문에, 목록에서는 누락돼 있습니다. 전준호 선수(8GS, ERA 0.64)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서 리오스는 왜 껴줬느냐? 이오수잖아요. ^^;

참고로 리오스 선수의 기아 → 두산 변화를 알아보면, 기아 시절 19번의 선발 등판 가운데 7번 QS를 달성해서 QS% 36.8%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두산에 와서는 8번의 선발 등판 가운데 1번을 제외한 7번의 QS를 기록 87.5%의 QS%를 기록했습니다. QS시의 방어율 역시 1.73에서 1.03으로 하락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시즌 종합 기록은, QS% 51.9%(14 for 27), QS시 방어율은 1.38입니다.

잘한 선수 칭찬해 줬으니, 못한 선수도 질타해 줘야죠? 한번 말아 먹으면, 어디까지 가나 축 쳐진 선수들입니다.



송신영 선수, 원칙적으로 10경기 이상 등판하지 않아서 빠져야 합니다만, 한 이닝도 못 채우고 내려간 게 안타까워서 올려봤습니다. 이미 떠난 사람은 욕하지 말고 ^^ 장문석, 왈론드, 이승호, 진필중 선수 등 LG 선수가 4명이나 포함 돼 있다는 사실도 말씀 드리기는 참 껄끄럽습니다만, 어쩌다 참 -_- 이상목 선수도 줄곧 칭찬받아 마땅했는데 왜 느닷없이? 임창용, 김수경 선수도 패스. 회장님도 뜻밖에 여기 모습을 ^^; 그레이싱어 선수가 들어간 이유는 어떤 분과 비교를 원하는 파울볼러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습니다.

(기억력이 아주 좋으신 분들을 위해 밝히자면, 제가 지난번에 최고 먹튀로 전혀 뜻밖의 인물이 뽑혔다는 말씀 드렸던 것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그때 회장님 연봉에 0자를 하나 더 넣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회장님이 먹튀 1위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때 큰 실수로 본의 아닌 낚시를 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q-_-p d_ _b)

마지막으로 잘할 때와 못할 때 편차가 큰 선수와 작은 선수들을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차이가 큰 선수는 -10.58의 현대 투준호 선수였습니다만, 8경기 선발 등판으로 누락.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를 향해 가는 선수도 한 분 계시긴 합니다만, 패스. 롯데 선수들이 세 명이나 있네요. 내년엔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서, 가을에 현대와 같이 야구하길 바립니다.


크루즈 선수, QS 아닐 때와 방어율 차이가 겨우 -0.99인걸 보면, 거의 QS급 피칭을 계속 선보였다고 하겠습니다. 해크먼은 이미 떠난 사람, 정민태 옹은 확인차. 정말 여기 없었으면 섭섭할 뻔한 손 교주님의 이름도 눈에 들어옵니다. 간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다음 시즌에도 계속 꾸준한 모습 보이길 바랍니다.

(이런 단순 비교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계속 못해도 좋은 수치가 나오기 때문에 꼭 믿어달라는 말씀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4. QS를 위한 변명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은 QS를 기록했을 때 거둔 202승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더 큰 의미로 다가왔던 건 61패였습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두 에이스, 손 교주님과 CMB 선수 모두 QS를 기록하고도 4패나 끌어안았습니다. 김원형, 김해님, 이승호(LG) 선수 3패. 감이 오십니까? 적어도 각 팀을 대표하는 準에이스급 투수들입니다.

이런 투수들이 QS를 기록하고도 패전을 끌어 안은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상대한 투수도 QS를 기록한 거죠. 그것도 패전을 안은 투수보다 더 나은 기록을 찍었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투수전이었겠죠. 보기 드문 투수전이라는 말, 전체 경기수를 놓고 볼 때 약 14% 정도만 해당되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문득, 손 교주와 CMB 선수가 맞붙은 대구 경기, 문동환 선수와 김원형 선수가 맞붙은 문학 경기가 생각이 납니다. 두 팀 모두 승수는 상대팀이 올렸지만, 모두가 패전의 멍에를 짊어진 투수를 진정한 승자라고 평가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경기 내내 눌렸다는 평가를 듣고도 승수를 챙기는 수완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저도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이 이야기만 하고 싶습니다. 상대 에이스에게 분명 압도 당하는 경기를 펼치고도 결국 승리를 챙긴 두 팀이 현재 리그 1,2위 팀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