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0. 죽지 않은 잔야구

이른바 빅 볼 혹은 3런 게임이 대세를 이룬 이후, 자잘한 야구는 다소 뒷전으로 물러난 게 사실입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테이블 세터엔 발 빠르고 센스 있는, 이를테면 작전 수행 능력이 있는 타자를 배치해야 한다, 는 상식 역시 세이버쟁이들에 의하면, 차라리 OPS 순서대로 타순을 짜는 게 득점력 향상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도 합니다. 투수를 8번에 놓고, 엑스타인을 9번, 래리 워커를 1번에 놓았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해 분석한 카디널스 팬의 글을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자잘한 야구의 매력이 정말 사라졌을까요? 아닙니다. MLB의 경우만 해도, 최근 샤이삭스는 특유의 스몰볼을 구사하며 리그 전체 승률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애너하임과 SF간의 월드 시리즈에서도 SF의 홈런포에 애너하임은 소총포로 맞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후안 피에르 선수는 이번 시즌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MLB에서 손꼽히는 리드오프감입니다. 이치로의 내야 안타 역시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뻥야구가 속이 뻥 뚫리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잔야구 역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응원하는, 현대 유니콘스 부동의 1번 타자 전준호 선수야 말로, 사실 현대의 ‘김재박 야구’가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2번 타순에 주로 포진됐던 박종호 선수의 쏠쏠한 활약도 주요했겠지만, 그리고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의 화력도 중요했겠지만, (그러고 보니 그때는 참 짜임새가 있었군요. -_-) 기본적으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전준호 선수의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경기장에 가서 보면, 어떻게든 살아 나가겠다는 의지가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였습니다. 타석에 들어서서 그렇게 많은 번트 동작을 취하는 타자는 정말 전준호 선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세월은 결국 속일 수 없는 법, 이번 시즌 전준호 선수의 모습을 보면 참 노쇠화라는 게 무엇인지 확연히 느껴지는 것 같아 속이 다 상할 지경입니다. 정수성 선수의 경우도 결코 출루율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가 없죠. 근본적으로 정 선수의 경우, 선구안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나가질 못하니, 빠른 발을 살릴 기회가 적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 도루를 기록한 걸 보면, 정말 100만 불짜리 다리이기는 한 모양입니다. 정수성 선수, 내년 시즌엔 이번 시즌 전반기의 박기혁 선수처럼 출루율 부분에 있어 크게 각성할 수 있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현재까지 우리나라 야구판에서는 어떤 선수가 가장 잔야구에 능할까요? 예컨대, 이종범 선수나 박재홍 선수는 잔야구에(만) 능하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선수들은 그냥 ‘괴물’이죠. 비록 별명은 ‘바람의 아들’이지만, 또 이번 시즌 파워가 급감했다고는 하지만, 이종범 선수 역시 호타준족에 가까운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박재홍 선수야 두 말할 필요가 없죠.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선수들은 전준호, 정수근, 정수성 같은 선수들입니다. 홈런 개수 늘리겠다고 동계 훈련을 웨이트에 쏟아 붙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그런 선수들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선수들이 어리석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 아시죠? ^^;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정수근 선수 홈런 타자 변신 선언 ; 하루 10시간씩 웨이트 기구와 씨름, 이런 헤드라인이 뜰 리가 없는 선수들이라는 점입니다.)

자, 그럼 8월 28일까지, 어떤 선수들이 이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기준은 도루와 번트, 그리고 내야 안타를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1. 최고의 도루 쟁이

잘 아시는 대로, 이번 시즌 현재까지 도루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는, 39개를 기록 중인 LG의 4번 타자 박용택 선수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주목하고 싶은 선수는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두산의 윤승균 선수입니다.

박용택 선수는 위에서 제가 분류한 근거에 의하면, 야구를 잘하는데 도루도 잘하는 선수일 것입니다. 물론, 이 점은 팀에 크게 득이 되는 게 틀림없는 점입니다만, 선수의 장점이 도루‘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두산의 윤승균 선수에 주목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시즌 기록한 31개의 도루 가운데 26개가 대주자로 기용됐을 때 나온 성적입니다. 대주자로 나와서 기록한 도루자는 7개로 성공률 역시 78.79%로 썩 괜찮은 편입니다. 선발 출장했을 때의 기록이 SB 5, CS 3 (62.5%)에 그친다는 걸 감안하자면, 오히려 대주자가 적성에 맞는 선수라고 하겠습니다. 1루 출루당 도루 시도 비율을 살펴보더라도, 256.25%로 타석에 들어서기보다 대주자로 경기에 나와 많이 뛰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1루 출루당 도루 시도 비율이 100%가 넘어가는 선수로는, LG의 이대형(111.11%)과 삼성의 강명구(106.25%) 선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대주자 선수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루 1위인 박용택 선수는 36.07%의 비율을 기록 9위에 올라 있습니다.

한편, 하일성 위원이 흔히 하는 표현 가운데 ‘도루는 성공률 70%가 넘어 가지 않으면 안 뛰는 게 이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이버쟁이들 역시 비슷한 논리를 적용, 도루는 성공 1개당 0.3점의 이득을 얻는 반면, 실패시 0.6점을 손해본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토대로 각 선수들의 SB Runs를 알아보겠습니다.

가장 높은 SB Runs를 보이는 선수는 성공 39개, 실패 6개를 기록 중인 도루 1위 박용택 선수입니다. 팀에 8.1점 정도의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위는 현대의 정수성 선수, 3위는 4.2점을 기록한 삼성의 강명구 선수와 기아의 이종범 선수가 공동으로 차지했습니다. LG의 이대형 선수와 두산의 윤승균 선수가 3.6점, 3.3점으로 각각 4,5위에 올라 있다는 사실도 밝히겠습니다.

거꾸로 오히려 도루로 손해 피해를 입힌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요? 채종국(-4.5), 손시헌, 정수근, 김재걸(이상 -2.7), 박경완, 홍세완, 정경배(이상 -2.1) 선수들이 불명예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좋아하는 곱하기 놀이를 하시리라는 것 아시겠죠? (TSB% × SBR 의 값입니다. 얼마나 좋은 효율을 위해 몇 번이나 노력했는가, 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1위는 두산의 윤승균(4.46), 2위는 삼성의 강명구(4.46), 3위는 LG의 이대형(4.00), 4위는 역시 LG의 박용택(2.99), 5위는 현대의 정수성(1.29) 선수가 각각 차지했습니다. 하위권 선수 역시 말씀드리자면, 롯데 정수근(-0.73), 삼성 김재걸(-0.60), SK 김강민(-0.43), 현대 채종국(-0.37), 기아 홍세완, 현대 장교성(이상 -0.27) 선수가 차지했음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최고의 도루 쟁이는 두산 베어스의 윤승균 선수입니다.


2. 최고의 번트 쟁이

이어서 번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SK와 삼성의 지난 주말 시리즈 중계에 자주 언급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이른바 번트 아티스트들이 제몫을 다 못했다는 소리입니다. 제 기억에 하나 남는 게 아마도 김태균 선수가 번트를 시도하다 볼카운트 2-0에 몰렸고, 결국 병살타를 쳤습니다. 1사 2루가 2사에 주자 없는 상황으로 바뀌는 안타까운 순간이었죠. 물론, 희생번트가 정말 득점 생산에 도움이 되는지는 통계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할 상황입니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대로 번트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 즉 작전 수행이 실패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지적받아 마땅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번트에 있어서 성공률을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로는 이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무사에 주자가 나가 있는 경우 몇 번 타석에 들어섰고 그 가운데 몇 번 번트를 시도했고, 그 가운데 몇 번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자료가 현재로서는 전무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상황을 조금 에둘러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체 타석당 희생번트가 차지하는 비율을 한번 보겠습니다.

SK의 조동화 선수, 전체 타석 가운데 12.76%나 희생번트를 대어 성공했습니다. 2위 역시 SK의 강성우 선수입니다. 전체 타석의 10%입니다. 10%를 넘긴 선수는 이 두 선수가 유이합니다. 3위는 롯데의 박남섭 선수(9.43%), 4위는 SK의 김강민(8.33%), 5위 역시 SK의 정근우(7.55%) 선수입니다. 감이 잡히십니까? SK는 정말 희생번트를 좋아하는 팀입니다. 8월 28일 현재 팀 희생번트 120개로 2위 팀 현대를 29개 차이(24.17%)로 누르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SK의 전체 타석을 고려할 때 2.71%에 해당되는 수치입니다. 위에서도 김재박 감독의 인터뷰를 언급했지만, 적은 점수 차이로도 이길 수 있는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율로는 잘 감이 오시지 않는 분들을 위해, 한번 희생번트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위는 역시나 조동화 선수입니다. 37개나 희생번트를 성공시켰습니다. 2위는 롯데의 신명철(24), 3위는 삼성의 박종호(22), 4위는 두산의 임재철, 5위는 18개를 기록한 김태균 선수(괴수두목 말고 SK의 김태균 선수 말입니다. ㅎㅎ)와 정수성 선수가 공동으로 차지했습니다.

번트에는 희생번트만 있느냐? 아닙니다. 내야진을 흔들어 놓는 센스! 바로 번트 안타 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8월 28일 현재까지 가장 많은 번트 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누구일까요? 구관이 명관, 전준호 선수일까요? 비슷하지만 아닙니다. 전준호 선수 13개의 번트 안타를 성공시키며, 녹슬지 않은 실력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1위는?? 예상하신 분이 많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SK의 조동화 선수입니다. 무려 17개의 번트 안타를 기록중입니다. 3위는 현대의 정수성(9) 선수, 공동 4위에는 기아의 이용규, LG의 이대형, 기아의 김민철 선수 등 세 선수가 6개로 올라 있습니다. 정수근 선수는 4개를 기록 포스에 비해 다소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다른 공식이나 수식을 만들지 않더라도, 고개를 끄덕이시리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번트 쟁이, 단연 SK의 조동화 선수입니다.


3. 최고의 내야안타쟁이

내야 안타가 기록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원바운드로 플레이트 부근에 튄 공의 체공 시간이 너무 긴 경우도 있고, 사실 빠지는 안타성 코스였지만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는 수비수가 가까스로 막아낸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야진이 결코 기분 좋아할 리 없는 안타라는 점일 겁니다.

8월 28일 현재까지 모두 세 명의 타자가 5개의 내야안타로 (번트 안타는 제외한 수치입니다.)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용규, 정수근 선수가 그 가운데 두 선수입니다. 그럼 나머지 1명은? 1) 전준호, 2) 조동화, 3) 박용택, 4) 정수성, 5) 장원진. 낯선 이름이 하나 등장해서 눈치 채셨겠지만, 나머지 한명은 장원진 선수입니다. 도루보다도 내야 안타가 많은 선수가 바로 장원진 선수 되겠습니다.

그럼 번트 안타까지 포함하면 어떻게 될까요? 조동화 선수 번트 안타에서 워낙 벌어 놓은 게 많으니 ^^ 19개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는 구관이 명관, 전준호(15) 선수, 3위는 기아의 차세대 1번 타자 이용규(11) 선수, 4위는 현대의 차세대 1번 타자 정수성(10) 선수, 5위는 아우보다 못한 형(?) 정수근 선수(9)입니다.

한편, 전체 안타에서 내야 안타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떨까요? 기아의 김원섭 선수 100%를 기록했으나, 달랑 안타가 1개뿐인 관계로 패스. 수긍할 만한 결과를 보이는 선수는 단연 조동화(31.15%) 선수입니다. LG의 이대형(28.57%) 선수가 2위, 그 뒤를 롯데의 박정준(22.22%) 선수가 잇고 있습니다. 4위는 익숙한 그 이름 전준호(20.55%) 선수입니다. 기아의 김민철 선수가 16.22%로 5위에 올라 있습니다.

기왕 내야안타쟁이로 자리매김하려면 장타가 적은 게 좋겠죠? -_-; SK의 조동화 선수 내야안타 : 장타 비율에서 3.80으로 압도적입니다. 2위는 현대의 전준호 선수 1.50, 3위는 LG의 이대형(1.20) 선수입니다.

이쯤 되면, 말 안 해도 아시겠죠? 내야 안타의 최고봉은 SK의 조동화 선수입니다.


4. 나가면서

이런 스타일의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팬들의 이목을 한 몸에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늘 내야진을 흔들어 놓고, 상대방 투수를 압박하면서, 승부의 흐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막말로, 홈런 타자는 피해 버리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의 선수들은 대개 플레이트에서 끈질긴 승부를 벌이길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보낼 수도 없습니다. 내야 땅볼로 잡았다 생각하는 순간 잰걸음으로 1루를 통과해 버리고,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도 않고 1루를 밟아 버립니다. 발 느린 주자 내보냈다고 안심하고 있는 사이 들어와 2루를 훔치고, 후속 타자의 단타로 홈을 밟기도 합니다. 정말 상대팀 시각에선 성가시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하나 있습니다. 볼넷으로 1루에 출루, 2루 도루 하는 사이 내야수가 공을 빠뜨려 3루 도착. 희생 플라이 하나로 손쉽게 1득점. 물론, 홈런으로 2점을 버는 게 공격하는 쪽에서는 경기를 풀어나가기에 손쉬운 환경을 제공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비측 기분은, 아마 전자가 훨씬 나쁠 거라고 봅니다. 피안타 하나도 없이 1실점.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이런 기술 역시, 많은 숙련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고, 또 무엇보다 똘똘한 센스 없이 이룩하기 어려운 기록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선이 굵은 야구와 자잘한 야구가 어우러져 보다 다채로운 야구가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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