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문학 3연전 Review


#0 WPA에 관하여

미리 보는 한국 시리즈, 스포츠 채널 3社도 모자라 대구 지역 방송인 TBC까지 합류한 중계진, 마치 주말에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프로 경기라고는 이 시리즈밖에 없게끔 착각하게 만든 문학 혈전. 결국 양 팀이 1승 1무 1패로 너무도 사이좋게(?) 나눠가졌습니다. 최소한 어느 팀이든 2승 1패 정도는 거둬서 시즌 막판 순위 변동에 보다 큰 재미를 선사받고 싶었던 제 개인적인 바람도 경기 결과와 함께 동시에 사그라져 버렸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힘이 빠진 삼성을 한창 치고 올라가는 SK가 잡아주길 바랬습니다. 그래야 더 재미있어질 테니까요.

이번에는 제가 심심할 때마다 엑셀 양과 함께 그리는 WP 그래프와 더불어 WPA를 통해, 각 선수들의 활약상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WP는 Win Expectancy 혹은 Win Probability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말 그대로, 승리할 기대치/가능성을 뜻하는 낱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흐름 혹은 분위기라고 조금 확대해석한 것은 사실 경기에서의 흐름 혹은 분위기라는 것이 결국 궁극적으로 승리할 흐름, 분위기가 확률적으로 표현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WPA는 WP Addition입니다. WP가 구성되는 원리를 살펴 보면 아시겠지만, 각각의 플레이 결과에 따라 팀 전체의 WP에는 변화가 찾아들게 됩니다. 이를 각 선수별로 누적한 수치가 바로 WPA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a) 2점차로 뒤지고 있던 6회초 2아웃 1/2루에 터진 역전 3점 홈런과 (b) 2점차로 이기고 있던 8회말 무사에 터진 만루 홈런 가운데 어떤 홈런이 더 값어치가 있을까요? 이를 Win Expectancy Finder를 통해 확인해 보면, (a)의 경우 WP가 .205 → .610로 .405 상승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b)의 경우에는 .962 → .999로 .037의 변화밖에는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사실과도 부합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a)의 경우는 홈런 타자가 3타점, (b)의 경우에는 4타점을 올린 셈이 되지만, 그것이 실제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그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죠. 10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친 ‘그거’와 막 추격을 하던 시점에서 나온 ‘그거’는 분명 천지차이일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의 플레이는 저마다의 WP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선수 개개인은 자신의 플레이 결과에 대한 WP 변화의 책임을 지게 됩니다. 각 선수에게 할당된 WP 변화의 몫을 모두 더하면 바로 WPA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냥 필자의 편의상 -_-) 위의 (a), (b) 두 경우가 모두 한 선수에 의해 발생된 플레이라고 할 경우, 이 타자는 .405 + .037= .442의 WPA를 이 경기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 값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 값도 존재하겠죠. (a)의 경우 홈런을 맞은 투수는 -.405, (b)의 경우는 -.037의 WPA를 기록하게 됩니다. 야구라는 기록이 승/패로 끝나는 이상 한팀의 WP는 궁극적으로 1.000을 향해 가고, 상대팀은 .000을 향해 간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이런 기본 지식을 토대로, 지난 주말에 벌어진 문학 3연전을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8/26 1차전 ; 1-1 무승부



양신의 선취 타점으로 삼성이 1:0으로 앞선 4회초, 이호준 선수가 2루타를 날리며 1:1로 경기는 다시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8회말 SK는 1사 만루의 기회를 잡게 되지만, 박경완 / 이호준 선수가 힘없이 물러나며 SK 팬들의 한숨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경기는 양 팀 구원 투수들의 호투 속에 연장 12회까지 평행을 이루면서 진행되게 되고, 결국 1:1 무승부로 마감되게 됩니다. 이날 단연 돋보인 선수로는 삼성의 오승환, 그리고 SK의 위재영 선수를 꼽을 수 있겠죠? 정말 그런지 WPA를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SK에서는 위재영(.429), 정대현 (.132), 채병룡(.123) 선수가 1차전 WP 상위 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위재영 선수가 얼마나 많은 활약을 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삼성의 상위 세 자리는 CMB(.608), 철가면(.551), 안지만(.160) 順입니다. 오승환 선수의 눈부신 투구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사실이지만, 배영수 선수도 8회까지 1실점밖에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승부에 있어서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도 오승환 선수 정말 덜^3입니다. 던진 이닝수에 있어선 사실 배영수 선수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경기 후반이 보다 ‘중요한’ 이닝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실점을 했을 경우 우리 팀이 점수를 만회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경기 후반을 책임지는 투수들의 WPA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외국 사이트를 보시면, 구원 투수진을 평가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른바 승계 주자(Inherited Runners)에 대한 실점은 앞선 투수의 방어율에 포함되기 때문에, 구원 투수진의 방어율은 구원 투수진을 측정하는 데 있어 불완전한 지표가 됩니다. 때문에 구원투수진의 피OPS를 비롯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구원 투수진을 평가하고는 합니다. 이런 여러 방법 가운데 제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 바로 이 WPA를 통해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실점이 가능한 상황에서 실점을 막아내고, 적은 점수차의 리드를 끝끝내 지켜내고, 추격의 발판을 위해 마운드에서 실점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구원투수진의 기본적인 임무라고 할 때 이를 반영하고 있는 지표가 바로 WPA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 8/27 2차전 ; 3-4 SK 승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는 4회말 2사에 나온 박재홍 선수의 홈스틸입니다. 주자를 3루에 두고, 아마도 무심결에 했을, 바르가스 선수의 와인드업 동작을 그대로 간파 홈으로 뛰어들어 선취점을 올렸습니다. 이는 팀의 분위기라는 측면에 있어 엄청난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WP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여느 1득점과 똑같은 의미밖에는 드러내지 못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희생번트 역시 무사 1루의 주자를 1사 2루로 바꾸는 다른 모든 이벤트와 마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맞는 결과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사항임으로 일단은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1점을 더 추가, 2:0으로 8회초 2사까지 앞서가던 SK. 하지만 농구엔 추승균, 야구엔 김한수. 역전 뜨리런(한명재 캐스터 발음입니다. -_-)을 터뜨리며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 들여, 3:2로 경기를 뒤집게 됩니다. 엄청난 반전입니다. 사실 8/26 경기에서 오승환 선수가 그리 길게 가지만 않았더라면, 이 순간 투입되어 경기를 그대로 굳혀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오승환 선수는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9회에 임창용 선수를 투입해 보지만 통렬히 터지는 이호준 선수의 1타점 2루타. 그리고 승부를 마무리 짓는 최정 선수의 끝내기 안타.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WP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경기를 승리로 이끈 최정 선수의 끝내기 안타보다 이호준 선수의 동점타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분위기가 SK쪽으로 넘어 왔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일이고, 이제 어찌됐든 역전을 시킬 수 있는 또다른 기회(연장전)를 보장받게 됐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기서 최정 선수의 끝내기 안타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10회초가 시작될 때 SK의 WP는 .500을 나타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 그런 누가 잘했나? SK의 수훈갑은 이호준(.532) 선수입니다. 2위는 신승현(.358), 3위는 홈스틸의 주인공 박재홍(.176)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 최정 선수는 (.133)으로 4위를 차지했습니다. 끝내기 안타 자체는 .173의 WP 변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앞선 타석에서 .040의 값을 깎아 먹은 셈입니다. 삼성은 역전 쓰리런의 김한수(.444) 선수가 1위, 홈스틸 헌납의 주인공 바르가스(.187) 선수가 2위, 다음 경기에서의 활약을 예비하는 듯 김재걸(0.079) 선수가 3위입니다.


#3 8/27 2차전 ; 2-1 삼성 승



1회부터 박한이 선수, 선취 타점을 올리며 1:0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는 삼성. 하지만 조범현 감독의 선발 기용에 감사라도 하듯 터진 최익성 선수의 동점 솔로포. 너도 몇 년만이냐? 나도 몇 년만이다. 김재걸 선수의 역전 한방. 이후 0의 행진 속에 8/27 비록 팀은 패했지만 하루 휴식을 즐긴 오승환 선수 투입 그대로 경기 종료. 다시 한번, 오승환 선수의 포스를 느낄 수 있는 경기였습니다. 정말 이 선수, 삼성의 복^1000000 덩어리 선수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97의 WPA로 삼성 선수 가운데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2위는 삼성의 선발 투수 전병호(.180) 선수, 3위는 이번 시즌 무패의 주인공 박석진 선수(.163)였습니다. SK에서는 솔로 홈런 한방을 날린 최익성(.184) 선수가 1위, 2/3위는 각각 정대현(.097) 선수와 김태균(0.056) 선수가 차지했지만, 미미한 수준입니다.


#4 WPA Table

그럼 경기별 각 선수들의 WPA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응원하는 선수의 WPA가 (-)값이 나왔다고,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가 (-)값이 나왔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수비에 대한 WPA값이 계산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에, 그 점을 고려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타격과 투구 성적만을 토대로 계산된 WPA임을 밝힙니다.



SK 팬 여러분, 이호준/박재홍/박경완 선수에게 아쉬우셨습니까? 삼성 팬 여러분, 김한수 선수가 찬스를 못 살렸나요?




조웅천 선수야, 그 홈런을 맞아 버렸으니 할 말 없죠. 임창용 선수도 끝내기 안타를 맞아 버렸으니.




김재현 선수, 마지막 한 타석에 나왔을 뿐인데 좀 가혹하네요. 양신 2경기 연속 하위권에.


자, 이 결과들을 종합해 보겠습니다.



박재홍 선수, 홈 스틸도 하고 2루에서 박진만 선수도 멋지게 잡아냈는데, 아쉬운 결과가 나왔네요. 조웅천/임창용 선수는 각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WPA를 써서 불펜 분석하는 게 괜찮다고 했던 그래프는 이렇게 그릴 수 있습니다.



양 팀 모두, 2차전 불펜 때문에 속앓이하셨을 텐데, 그래도 양호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승환 선수가 마음껏 포스를 내뿜은 삼성이 좀더 나은 점수를 얻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양팀 모두 (+)값을 기록했습니다만, 사실 (-)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펜진의 불쇼를 마음껏 관람했다면 아마 그렇겠죠? 모르긴 몰라도 보스턴을 보면 그렇지 않을까요? -_-;


#5 나가면서

흔히들 기록상 분명,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도 욕을 먹는 선수들이 종종 있습니다. 찬스는 줄줄이 놓치면서, 이미 승부가 어느 한쪽으로 기운 후에나 홈런에 삼진에 내달리는 선수들이 아마 그런 부류에 속하는 선수들이라고 봅니다. 또 찬스에 약하다는 말도, 득점권 상황에서의 각종 기록을 살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WPA를 통해서도 알아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방식을 토대로, 한 시즌 혹은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살펴보면, 어떤 선수가 팀의 승리에 가장 많이 기여를 했는지, 또 불펜진은 어떤 식의 활약을 보였는지도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수비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의문이 남습니다만, 이런 기본적인 원리를 전제로 하면 분명 그 또한 어렵지 않은 접근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빌 제임스의 Win Shares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만, 이는 시즌 전체의 기록을 토대로 작성되기 때문에, 상황별 가중치가 좀더 반영되는 WPA가 실질적인 팬들의 느낌을 좀더 잘 나타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상으로, WP와 WPA를 사용, 문학 시리즈를 되돌아 본 허접한 글을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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