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팬으로서의 믿음


#1 Sacramento Kings Vs. C-Webb



난 새크라멘토의 팬이라기보다 크리스 웨버의 팬이었다. 그러니까 크리스를 좋아하다 보니, 새크라멘토 역시 좋아진 것뿐이었다. 코트에 불이 모두 꺼지고 선발 선수 한명 한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질 때, 동그랗게 모여 춤을 추고 있던 그들만의 의식. 그리고 이타적인 플레이. 놀라운 속공. 플레이 하나를 만들기 위한 출전 선수 다섯 명의 유기적인 움직임. 자연스레 나의 페이보릿 팀은 새크라멘토 킹스가 되었다. 그들은 내게 정말 왕이었다.

하지만, 웨버가 필리로 향하고 나서, 나는 생전 관심도 없던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새크라멘토엔 어떤 선수가 거쳐갔고, 그 선수가 어떤 팀에서 뛰었고, 심지어 선수들의 아들 이름마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필리는 내게 생경한 팀이었고, 나는 선수들의 이름부터 다시 차근차근 외워야했다. 웨버가 뛰는 팀의 홈코트가 아코 아레나가 아니라는 어색함, 하지만 당연하게 무너질 걸 알면서도 플레이오프에서 필리를 응원했다. 아니, 웨버를 응원했다.

필리는 새크라멘토만큼 강팀이 아니다. 그리고 웨버도 예전만큼 엘리트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난 필리를 응원하고, 웨버를 응원했다. 한때 리바운드 왕이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겨우 3-4개의 리바운드밖에 낚아채고 있지 못한 그를 끝까지 믿었다. 그에게 20-10을 해달라고 믿었던 게 아니다. 그저 휴스턴 전에서처럼, 승부를 결정지을 그 한방을 넣어주길 바랬다. 하지만, 필리는 경기 막판까지 그런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이 아니다. 그리고 웨버의 존재가 그 팀을 겨우 그렇게밖에 못 만든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제 웨버는 더 이상 웨버가 아니다. 그저 한쪽 무릎으로 힘겹게 코트에 서 있는 한때 잘나갔던 선수일 뿐이다. 올스타 스타터도 ALL-NBA 팀에도 끼지 못하는 그저 그런 노장 선수.

그러는 동안, 새크라멘토에 대한 관심은 뚝 끊어져 버렸다. 내게 웨버가 없는 새크라멘토는 새크라멘토가 아니다. 골든 스테이트, 멤피스, 밀워키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팀이다. 내게는 그렇다. 시애틀과 어떤 승부를 펼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렇게 바랬건만, 요즘 줄기차게 방송되는 새크라멘토의 플레이오프 경기는 이제 내 관심 밖이다. 컴퓨터의 즐겨 찾기에도 sacbee,com 대신 philly.com이 들어섰다. 비비는 이제 그저 리그 2류 가드로 보일 뿐이고, 공에 대한 집착, 소유욕으로만 보였던 앤서의 플레이가 승부에 대한 강렬한 열정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안녕, 새크라멘토.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 널 정말 사랑했어. 하지만, 이제 너에 대한 관심이 조금도 생기질 않아. 미안. 디박도 웨버도 크리스티도 뛰고 있지 않은 널 더 이상 응원해줄 힘이 나질 않아. 미안. 그래도 내가 정말 널 사랑했었다는 건 알고 있지?










#2 Boston Redsox Vs. Pedro Martinez



반면, 난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팬이라기보다 보스턴의 팬이다. 팬이었던 게 아니라, 여전히 팬이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아무리 외계인 스탯을 찍어도, 그 기간 동안 팀 성적이 그 모양이라는 게 내겐 더 마음이 아팠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던 선택이란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애너하임을 골랐다. 기왕 성적이 그 모양일 거라면, 약체를 응원하는 게 속이 편할 거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해 애너하임은 월드 시리즈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때 내가 느꼈던 건, 바꾼 팀의 승리에 대한 희열이 아니라 결국 또 무너져 버린 보스턴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내게 필요했던 건, 내가 원했던 건, 승리가 아니라 믿음과 기다림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내 마음을 펜웨이 파크에 묻기로 했다. 그리고 재작년 ALCS 7차천 패배. 나는 페드로를 원망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그건 분명 페드로의 아집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외계인이 아니었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페드로 마르티네스 혼자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작년의 ALCS 4차전, 사실 난 포기하고 있었다. 낡은 보스턴 모자를 꺼내 쓰고 왔던 아침까지 난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았지만, 게임 데이를 통해 보던 9회말, 모가 마운드에 오르자 나는 창을 닫아 버렸다. 담배를 끊은 이후, 처음으로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년엔 되겠지. 이게 1-2년도 아니고, 내가 본 것만 10년은 될 테고, 뉴 잉글랜드 사람들은 86년이나 기다렸는데.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ALCS까지 갔으니, 언젠간 월드 시리즈도 가겠지.

하지만 때마침 점심시간 누군가 켠 티비의 화면, 데이브 로버츠의 도루, 뮬러의 동점 적시타. 그리고 슈렉 형님의 끝내기 홈런! 내일 뵙겠습니다, 하는 캐스터의 엔딩 멘트. 솔직히 하루뿐인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보스턴 모자를 챙길 땐 비장한 각오 같은 것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연장전 승리. 베이브 루스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치러진 6, 7차전. 모든 팀은 홈에서 우승하길 원한다. 하지만 양키 스타디움만큼 레드삭스에게 우승하기 좋은 구장이 또 있을까?




정말 그랬다. 역사상 첫 번째 리버스 스윕. 흔들렸던 내 믿음을 원망했다. 믿고, 또 믿으면 언젠간 된다. 그리고 보스턴은 믿기만 한 게 아니라, 믿음을 현실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게 노마를 내보내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더 이상 외계인이 외계인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커트 실링의 말 그대로 핏빛 투혼, 경기 시작전 한잔씩 마시고 출전했다는 잭 다니엘. 86년간, 매해 경험했던 끔찍하게 춥고 추운 겨울 대신, 선수들은 챔피언으로서, 사랑받는 패자가 아닌 당당한 승자로 따듯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86년이라는 건 정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 겨울, 페드로가 보스턴을 떠났다. 사실 예정된 수순이었다. 노마도 트레이드 하는 판에 FA로 풀린 외계인을 잡지 않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의 구위는 심각하게 저하돼 있는 게 사실이고, 어깨 부상 문제도 미심쩍었다. 게다가 만만찮은 나이에 요구한 4년 계약. 잡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내가 정말 간절히 바랬던 건, 핀스트라이프를 입은 그를 보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결국 그는 뉴욕으로 갔다. 하지만 다행히 메츠였다. 난 거기서 그가 부활하길 바랬다. 다시 외계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랬다. 하지만, 이제 그의 경기를 게임 데이로 지켜보거나 토렌토에서 다운 받거나 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페드로 대신 부머를 응원한다. 클레멘트를 응원하고, 웨이드 밀러가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팀에 합류하길 염원한다. 그리고 여전히 매니와 슈렉에게 빈볼을 던진 탬파베이 선수들을 경멸한다. 설사 상대투수가 박찬호라고 하더라도, 보스턴이 지는 게 더 가슴 아프다. 팀이 펜웨이 파크에 남기로 했다는 결정에 환호하고, 봄이 되자 다시 낡고 또 낡은 보스턴 모자를 쓰고 다닌다. 결코 다시는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한번 잘못된 선택으로 우승을 맛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승리의 희열. 말 그대로 기적 같은 우승의 기쁨을 내게 안겨준 팀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이젠 다른 팀을 응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내게 페이보릿 팀은 영원히 보스턴이다.

데이브 로버츠가 샌디에서 어떤 활약을 보이고 있는지, 데릭 로우가 투수들의 천국 다저스타디움에서 다시 싱커볼러로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지, 내겐 그다지 관심사가 아니다.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NL 삼진 1위라고 하더라도 내겐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들 모두 더 이상 보스턴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월드 시리즈, 삽질을 염원했던 렌테리아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이제 나는 주목한다. 맷 클레멘트도 부머의 일거수 일투족에도 모두 관심이 간다. 이제 그들이 빨간 양말을 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겠지만, 영어 가정법에 등장하는 were to 용법 같은 가정이지만, 지터가 빨간 양말을 신게 된대도, 나는 진심으로 그를 믿고 응원할 것이다. 그의 홈구장이 펜웨이 파크라면 말이다.


당신을 한번 배신했던 것,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께 돌아오고서야 알게 됐어요, 내가 바랬던 건 승리나 우승이 아니라, 바로 당신을 믿고 당신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것. 당신이 앞으로 내 삶에 또 다른 우승을 선사하지 못한대도 상관없어요. 당신은 내가 평생 당신 편이 되고,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보여줬으니까요. 고마워요, 다시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이젠 이 마음 영원히 변치 않겠습니다.





#3 Loyalty

그저,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새크라멘토를 대했던 내 마음, 그리고 보스턴. 똑같이 내가 응원하는 팀이었는데, 이렇게 달라진 모습. 그리고 선수와 팀을 응원하는 것의 차이. 뭐랄까, 다만 그 차이에서 기인했을 뿐, 내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믿음의 방향은 다른 게 아니라는 걸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그저 나 자신에게 말이다. 늘 말하고 다녔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게 낫다고, 그때까지 난 믿을 거라고. 하지만 막상 찍혀 보니, 제법 아프던 걸.

아마 웨버가 정말 초라한 모습으로 은퇴를 한대도 난 끝까지 그를 믿고 응원할 것이다. 그는 내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열정 그 자체니까. 하지만 외계인에게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설사 그가 보스턴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대도 아마 그럴 것 같다. 팀의 태도가 어떠했던 간에, 그리고 그것이 비즈니스라는 것도 이해하긴 하지만, 그는 결국 보스턴을 배신한 사람이니까. 내 믿음에 흠집을 남긴 사람이니까 말이다.

기적은, 믿지 않고서는, 결코 이뤄낼 수가 없다. 증거는 보일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 보일 수가 없다. 보스턴은 노마를 버리고 나서야 우승할 수 있었다. 실링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 그 최선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 그만두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 kini 註 ────────

지난 5월 초에 쓴 거라 지금이랑 좀 생각이 달라진 것도 있고
술 먹고, 그냥 믿음이 뭘까 생각하다 써본 글입니다.

역시나, 일하기 싫어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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