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

어젯밤에 혼자 UCC를 하나 만들고 있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트리뷰트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12년간 매년 6개월씩 죽네 사네 매달렸던 팀인데, 어찌됐든 그 존재가 사라진다니 씁쓸한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곧 창을 닫았습니다.

어쩌면 그냥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좀더 사리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2

저는 곧잘 현대 유니콘스의 팬이 아닌 '태평양 돌핀스의 유민'일 뿐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스포츠 2.0>에 실린 우리 주장 이숭용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평양 돌핀스 팬이었기에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현대 유니콘스가 있었기에 태평양 돌핀스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만날 6등, 7등만 하던 팀, 더 좋은 회사가 사서 이렇게 '신흥 명문'으로 만들어놨는데 굳이 아쉬워할 게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하지만 쌀 부잣집에 딸내미 시집보냈다고 좋아했는데, 시집 쌀 창고에 큰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들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사실 현대 유니콘스 팬으로 사는 건 그리 녹록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연고지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혀끝까지 나와도 참아야 하고, 비인기팀에서 뛴다는 이유로 평가절하 되는 선수들이 안타까웠고, 프로야구 인기를 좀먹는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어이없는 조롱에 시달릴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적 때문에 얻은 기쁨보다, 해태 이후 구축된 굳건한 왕조보다, 현대 팬이기에 받은 서러움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하기보다 늘 빼기에 익숙해지는 것, 어쩌면 그게 현대 팬으로서 사는 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홀가분하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4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팀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는 해결되어야만 하며, 이 팀 하나를 팔기 위해 다수가 원하지 않는 정책들이 책정된 것도.

하지만 너무도 아쉽습니다. 1년에 100경기쯤 소리 높여 부르던 그 이름이. 때로 여자 친구보다 더욱 사랑했던 그 뜨거운 열정이. 정말 영원할 것만 같던 제국의 몰락이.

그래서 어제 수원 야구장에서 "막강 현대 영원하리라, 막강 현대 영원하리라."하고 노래 부르던 서포터즈의 간절함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나 봅니다. 평생 한 팀만 응원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확실히 현대 팬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일인가 봅니다.

제 작은 꿈 하나는 "최고의 현대 팬"이 되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꿈을 이룰 수가 없게 됐네요.


#5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야 할 때
그래서 당신은 떠납니다.
수많은 추억을 여기에 남겨두고.

나, 앞으로도 당신을 떠올리며 웃을게요.
당신과 함께 한 시간은 너무도 행복했으니까요.

이제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테니
우리가 만든 추억을 잊지 마세요.

그대가 우리를 위해 뛰고
우리가 그대를 응원하며
그렇게 하나가 되었던 순간을.

안녕.

함께 울고 웃었던 그 시간도
이 세상이 전부 우리 것 같던 행복감도
그 어떤 꿈도 모두 이룰 것 같던 열정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 주던 그 따뜻함도

Please, Remember.

아니, 당신은 잊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꼭 기억하겠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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