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규칙에 야구 경기의 목적은 '승리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규정돼 있다. 하지만 승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스포츠에는 드라마가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진부한 표현을 사용해도 좋다. 아니, 각본이 있다면 사실 스포츠는 너무 뻔하다.
끝내기 안타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면, 9회말까지 불편한 의자에 앉아 마음을 졸일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함을 참는다. 불편함을 견딜 이유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맞다. 스포츠는 결국 결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미리 결과를 알 수는 없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그래서 무지는 불편하다. 그리고 호기심은 너무도 유혹적이다.
호기심의 유혹이 우리를 감동으로 이끈다. 유혹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지 못하면 우리는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 아니 그 결과가 만들어지는 바로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네팔 대표팀에 18대 0으로 이긴 축구 경기에는 감동을 받지 않는다. 모든 경기를 콜드게임으로 이기는 야구팀 역시 마찬가지. 여기엔 이미 유혹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유혹을 회피한다. 결과가 두려워 TV 전원을 끄고, 경기를 보는 대신 두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다. 그렇게 유혹은 공포스럽게 우리 곁을 맴돈다. 결과는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스포츠를 경외한다.
여기 평생을 이 두려움과 맞서 싸운 노익장이 있다. 그는 평생을 두려움을 정복하는 데 바쳤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 이 두려움을 잘 아는 사람이 됐다. 그는 바로 SK 김성근 감독이다.
모두가 그에게 두려움을 물었고, 그의 해답은 꼭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두려움은 그저 정복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는 두려움을 존경하지 않고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그는 두려움이 자신을 존경하길 바랬다. 그런 그에게 두려움이 드라마를 만든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진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10:0으로 이기고 있어도 10:1로 이기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김성근 감독에게 끝내기 안타는 그저 8회초 투수 교체 실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의 야구에는 그래서 유혹 대신 집요함만이 가득하다.
때문에 거의 모든 순간 '승자'로 살아온 그에게 정작 '승자'라는 호칭은 잘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는 꼴찌를 2등으로 만들 수 있지만, 2등을 1등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사실이 그랬다.
대신 우리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트집 잡기 좋아하는 옹졸한 늙인이. 자신의 방식이 아니면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집불통. 당한 만큼 갚아주어야 안심하는 속 좁은 노인네. 그래서 김성근의 삶은 오늘도 순탄치 못하다.분명 이번 시즌은 김성근 감독이 최초로 승자의 지위를 얻을 있는 최고의 기회다. 만약 SK가 한국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면, 과연 이제 우리는 그를 승자로 기억하게 될까?
KBO 규정에는 분명 그래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돼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