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박용택은 몇 년째 '혹시나'를 '역시나'로 바꾸고 있다.


LG 팬들이 박용택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이병규의 일본 진출 이후 LG 팬들은 박용택이 타선의 중심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게 사실. 하지만 데뷔 이래 6년차가 되도록 아직 박용택은 LG 팬들이 기대하는 '포텐셜'을 터트리지 못한 상태다.


이쯤 되면 박용택은 '과대평가'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물론 빠른 발과 준수한 파워를 두루 갖춘 선수에게 기대를 거는 건 모든 팬이 마찬가지. 하지만 늘 기대를 저버리는 타자라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과연 박용택은 어느 정도 선수인가? LG 팬들이 주장하는 '포텐셜'은 과연 언제쯤 터질 것인가? 아니면 박용택은 그저 서울 팀에서 뛴다는 이유만으로 '과대평가'된 선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아보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선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기와 노쇠기를 경험한다. 그리고 어떤 선수들은 이 과정에서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홈런 타자는 다른 홈런 타자처럼 늙고, 도루왕은 다른 도루왕처럼 늙는다.


세이버메트릭스의 아버지 빌 제임스는 이를 유사도(Similarity Scores)라는 기록으로 정리했다. 타자는 포지션부터 시작해 출전 경기수, 안타, 홈런, 도루 등 모두 14개 항목을 토대로 유사도를 계산한다. 완벽히 똑같은 커리어를 기록한 선수의 유사도는 1000점이며, 유사점이 줄어들수록 숫자 역시 작아진다.

데뷔 이후 5년차까지 박용택과 가장 유사도가 높은 선수는 SK 김재현(960). 하지만 김재현은 1994년 신일고를 졸업한 이후 곧바로 LG에 입단했다. 반면 박용택은 고려대 4번 타자 출신이다. 나이를 감안하면 직접 두 선수를 비교하기가 무리라는 뜻.

그래서 비교 대상을 대졸 선수로 한정지었다. 그런 이유로 박용택과 곧잘 비교되는 SK 이진영(918) 역시 목록에서 탈락했다. 이진영도 1999년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쌍방울 와이번스에 입단한 고졸 출신이기 때문. 그래도 여전히 이진영보다는 이호성(940)이 박용택과 유사도가 더 높은 선수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맞다. '맨손으로 못을 눌러서 박는다던' 그 이호성이다. 이 해태 4번 타자는 1990년에 데뷔해 2000년에 은퇴하기까지 11년 동안 프로에서 활약했다. 통산 성적은 타율 .272에 홈런 101개. 타점은 525점이었다. 덧붙여 도루 167개를 기록한 준족이기도 했다. 한 시즌에 홈런 10개, 도루 15개 정도 기대할 수 있는 타자였다는 뜻이다.


박용택은 지난 시즌까지 타율 .283에 홈런 67개를 때려내며 299타점을 올렸다. 도루는 140개. 연평균 홈런 13개, 도루 28개를 기록한 셈이다. 물론 이 기록만 놓고 보면, 이호성은 조금 부족해 보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5년차가 되기까지 박용택이 이호성보다 연평균 19 경기나 더 뛰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이호성이 뛰던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투수 친화적인 시대였다. 이호성이 데뷔하던 1990년 평균 득점은 4.4점에 그쳤지만 박용택이 리그에 첫 선을 보인 2002년에는 5.1점이었다.


어쩌면 이호성과 비교하는 건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LG팬이 계실지 모르겠다. 좋다. 한번 다른 선수들의 이름을 천천히 살펴볼 시간을 드리겠다. 다음은 데뷔후 5년차까지 박용택과 가장 유사도가 높은 선수 10명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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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력이 좋은 독자 분이라면 아마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김경기, 송지만이라는 예외가 있만 이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타선의 '핵'이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긴 게 사실이다.


물론 이순철은 뛰어난 1번 타자였다. 현재 진행형이라 섣불리 말하기는 어렵지만 박한이 역시 그렇다. 김응국 또한 지난 세기말에 롯데 1번 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남겼다. 그러나 해태는 이순철보다 김성한 한대화가 타선의 핵이었고, 삼성은 양준혁 이승엽, 롯데는 마해영 박정태였다.


나머지 선수들을 향해서도 얼마든 다른 선수의 명단을 댈 수 있다. 이강돈은 이정훈 장종훈보다 네임 벨류가 떨어지고, 이영우 역시 송지만이 있기에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롯데 김대익은 김응국과 마찬가지고, 심성보는 김기태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타선의 2인자 혹은 3인자였던 선수들이 박용택과 유사도가 높은 선수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병규가 있을 때 공격 2옵션으로 박용택 또한 그리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어쩌면 박용택의 모습은 앞으로도 그리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현역 네 선수 기록을 제외하면 나머지 여섯 선수는 데뷔 후 6년차부터 은퇴할 때까지 평균 4.3 시즌을 더 뛰면서 타율 .269에 연평균 홈런 13개, 69 타점을 기록했다. 도루는 연평균 19개. 준수한 기록이지만 특급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이다.


이것이 우리가 박용택에 대해 진짜 가져야 하는 기대치의 실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9회말 찬스에서 박용택이 병살타로 물러나더라도 너무 원망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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