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우리나라가 태권도에서 절대적인 강국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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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체격 조건의 열세에 부딪힐 순간이 오겠지만, 아직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종주국이라는 어드밴티지를 확실히 누리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양궁은 어떤가?

사실 태권도가 세계적인 종목이 된 건 그래 오래된 일은 아니다. 반면 양궁은 '79년 김진호 선수의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이후로 계속해서 '효자 종목'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최근 열린 두 번의 올림픽에서 우리가 따낸 금메달 수는 총 17개. 그 가운데 양궁에서 따낸 금메달이 6개일 정도다. 태권도에서는 이보다 하나 적은 5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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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도 자주 바뀌었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1위부터 3위까지 전부 한국 선수일 경우 4위 선수에게 동메달을 주는 규칙이 시행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개인전에 참가할 수 있는 각국 선수를 2명으로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됐다.

경기 내적인 측면에서는 결승전에서 18발을 쏘던 것이 12발로 변경됐고, 활을 쏘는 제한 시간 역시 40초에서 30초로 단축했다. 모두가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한 세계 양궁계의 몸부림.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양궁 최강국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제 세계 양궁계는 우리를 견제하는 대신 우리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외국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의 유니폼, 화살 등을 따라하는 것은 물론, 걸음걸이나 경기 전 스트레칭 동작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래도 안 되자 한국 코치 영입에 나섰고, 최근에는 한국 선수들을 귀화시키는 일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양궁은 난공불락이다.
 
도대체 우리가 이렇게 절대적인 양궁 강국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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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동이족(東夷族)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르겠다. 유전적으로 활을 잘 쏘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주장 말이다.

여기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습관, 골무의 사용 등을 접합시키면 그럴 듯한 '소설' 한편이 완성된다. 그리고 이런 '식자(識者)'들의 의견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배적인 견해로 자리 잡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것 때문일까?

사격과 마찬가지로 양궁은 거의 완벽한 멘탈 게임이다.

국가 대표 선수가 경기에 나가 자신이 쏜 활을 망원경으로 확인하고 영점 조절을 한다. 하지만 양궁 경기란 그 익숙한 동작조차 떨릴 정도로 심리적 압박이 강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마인드 컨트롤에 실패하면 성공할 수 없는 종목이 양궁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우리 양궁 선수들은 대표 선발부터 철저한 심리 테스트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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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국가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10 개월간 치러지는 7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야만 한다. 10 개월 동안 체력, 컨디션,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기 관리에 실패하는 사람은 결코 양궁 국가 대표가 될 수 없다.

이 7개 대회 성적 이외에 대표 선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학연, 지연은 물론이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명성도 대표 선발에 있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직 실력만으로 최강의 선수들을 선발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검증을 거쳐 대표로 선발되니 한국 랭킹 200위가 세계 대회 5위권이라는 말이 나온 것도 허튼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검증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대표로 선발되면 제일 먼저 해병대 훈련 캠프에 입소한다. 그것도 단순한 체험이 아닌, 전방 초소 근무를 기본으로 말이다. 16살짜리 소녀가 뱀을 목에 두르고 뱀 머리를 입에 물고 다니는 것도 양궁 대표 훈련 과정에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못 된다.

훈련 과정에는 이뿐 아니라 120 미터 번지 점프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실내 수영장에서 하루에 세 번 12미터 다이빙을 해야만 한다. 심박수 220의 한계치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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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가장 무섭고 혹독한 훈련이 남아 있다.

땡볕이 내리치는 한 여름, 양궁 대표 선수들은 5일 동안 매일 12시간씩 걷는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혼자서 12시간을 계속해서 걷는다. 그리고 한밤중 같은 방법으로 천호대교부터 63빌딩까지 뛴다. 26km를 말없이 혼자 걷고 또 뛴다.

선수들은 이 '침묵 구보'를 통해 육체적 고통은 물론 외로움과도 맞서 싸워야 한다. 침묵 구보 기간 동안 선수들은 혼자서 울고 웃으며 내면의 모든 기쁨과 슬픔, 분노를 풀어 버리게 된다. 선수들의 마음에 평정심이 찾아오는 것이다.

더욱 대단한 것은 50세를 넘긴 총감독이 선봉에 선다는 사실이다. 총감독이 먼저 혼자 걸으며 모든 감정으로부터 초탈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준다. 정말 무식한 솔선수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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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궁 대표팀의 전략은 결코 무식하지 않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점수 발표를 들었는가? 데카(그리스어), 텐(영어) 다음에 '10점'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양궁 강국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협회가 로비를 한 결과물이다.

쉬는 시간에는 김건모의 노래가 나왔다. 이것 역시 선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선수 협회가 노력한 결과다. 경기장 안에서 최대한 안정감을 주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상대 선수 분석 역시 대단한 수준. 나이와 성적은 기본이다. 취미와 성격, 가족관계 심지어 배우자나 연인의 생일까지 모든 정보를 파악한다. 성격이 급한 선수를 상대할 때는 자리싸움부터 시작하고, 심약한 선수를 상대로는 악수를 하면서 눈싸움을 잊지 않는 전략이 모두 이 정보로부터 비롯된다.

베이징 올림픽 양궁 경기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조감도와 배치도를 확보해 시뮬레이션에 들어간 지 오래다. 시뮬레이션에는 사전 답사를 통해 얻은 경기장 주변의 풍향과 풍속 데이터가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양궁 결승전 입장권 4,000장 가운데 3,000석을 확보하기 위해 오늘도 양궁 협회는 동분서주하고 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선수들을 돕기 위해서다.

이제 다시 묻는다. 정말 우리 선조가 동이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양궁에 강한 것일까? 아니면 그 어떤 조직도 이 정도라면 성공을 할 수밖에 없는가?

어쩌면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역사에 갇혀 살겠는가? 아니면 역사를 만들어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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