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나는 현대 유니콘스 선수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산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늦은 밤이나 경기가 없는 날에도 곧잘 사복 입은 선수들과 마주치곤 한다. 사실 제 아무리 프로 야구선수라고 해도 사복을 입고 마주치면 동네에서 흔히 보는 젊은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 간 길에 맥주를 사고 있는 선발 투수와 마주치거나 삼겹살집 옆 테이블에서 고기를 굽는 3번 타자와 만나기도 한다. 호프집 화장실에서 백업 내야수와 나란히 소변을 보는 경험도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예전 같았으면 사인 한 장이라도 요구했을 텐데, 이제 많은 선수들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되니 그것 역시 쉬운 일은 못 된다.

여전히 야구장에서 이들을 만나면 여전히 종종 사인 요청을 한다.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는 내게 이들이야 말로 거의 유일한 동경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석이라면 되도록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그들 사생활을 방해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나는 인간 이택근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성격이 어떤지도 잘 모른다. 음악 취향은 어떻고 어떤 타입의 여자를 좋아하며 어떻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전혀 모른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의 팬이지 친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 선수 이택근은 사정이 다르다. 타율이 어떠하며 홈런은 몇 개인지 수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안다. 타격 폼에 나타는 약점도 알고 약점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 그의 어머니가 한 사찰에서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다보니 알게 된 것들이다.

6월 11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주최한 팬 미팅이 있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선수는 전날 해당 팀 홈페이지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일요일 경기를 앞두고 토요일 새벽까지 노는 게 목격됐다는 '카더라 통신' 때문이었다. 일요일 경기에서 팀이 패하는 바람에 원성이 더욱 자자했다.

그런데 당신은 토요일 밤에 안 놀고 싶은가? 야구 선수라는 이유로 토요일 밤에 놀면 큰 일 나는가? 20대 남자애가 토요일 밤에 친구들이랑 좀 늦게까지 논 게 그렇게 비난 받을 만한 일일까? 야구 선수는 단지 야구 선수라는 이유로 '야구 기계'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경기에서 진 유일한 이유가 정말 그 선수가 전 날 늦게까지 놀았기 때문일까?

그 팀이 패할 때마다 홈페이지에 그 선수를 비난하는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 엉뚱한 피해자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팬들이 패배 아픔을 달래려고 그 선수를 '공공의 적'으로 만든다는 느낌이다. 경기에서 지면 팬들도 속이 상하겠지만, 과연 그게 선수들이 속상한 것 그 이상일까?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한 선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블로운 세이브를 한 날에는 꼭 양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잤다는 것이다. 그것도 꽤 비싼 술집에서 말이다. 그렇게 마시고 다 잊지 않으면 오히려 남은 경기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도 확실한 자기 관리를 보인 선수로도 유명하다.

영화 '루키'에서도 마흔 가까운 나이에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주인공과 어린 마이너리거들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이들은 맥주를 "베이브 루스를 명예의 전당에 보내준 음료"라 칭한다. 루스는 선수 시절 엄청난 알코올 중독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홈런왕으로 기억하지 알코올 중독자로 기억하지는 않는다. 프로란 결국 실력으로 말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자기 관리라는 건 야구장에서 판가름 될 문제지 야구장 밖 생활까지 팬들이 일일이 간섭할 필요가 있을까? 범죄만 아니라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선수에게도 있다는 이야기다. 또 프로는 '잘 하는 사람'이지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야구밖에 몰라도 매년 .200을 치는 타자와 주당(酒黨)으로 유명해도 평균 30홈런을 때려내는 선수가 있다면 당신은 누굴 택하겠는가?

어쩌면 누군가는 야구 선수 아무개의 인간적인 면모가 좋아서 팬이 됐을지 모르겠다. 이 팬이 과연 그 선수 어머니만큼 그의 열렬한 팬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선수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옹호하는 글을 올려도 여전히 팬들은 그 어머니를 비난한다. 이 정도라면 팬들의 '사생활 침해'가 수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야구 유니폼 입었을 때만 응원하는 일, 야구 유니폼을 입었을 때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는 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때로 너무 큰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 팬들 역시 명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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