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가 내게 와서 물었다.
"감독님 제 보직은 무엇입니까?"
나는 늘 구상해오던 걸 말했다.
"자네는 롱릴리프라네."
잘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갔다.
롱릴리프, 선발 투수가 조기에 강판되면 나머지 몫을 채워주는 선수. 더러 선발 투수로 경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스윙맨'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곧 기록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감독님 제 첫 등판은 석 점을 뒤지고 있던 6회였습니다. 이건 롱릴리프 역할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경기는 꼭 잡고 싶었어. 그래서 자네를 올린 거라네."
"그런데 저는 26번 등판 가운데 6회 이후에 마운드에 오른 게 14번입니다. 그래도 롱릴리프인가요?"
"에이, 어디 포지션이 그렇게 딱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급하면 손민한도 세이브를 올리는 게 투수의 책무 아닌가. 믿을 만한 미들맨이 부족할 때도 자네를 마운드에 올리는 거라네. 필승 계투조인 셈이지."
"그런데 제가 구원 등판한 22경기를 살펴보면요, 지고 있을 때 마운드에 오른 게 14번이나 되는데요?"
"역전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지."
"그래서 실제로 뒤집은 게 몇 번인지 아세요?"
"글쎄?"
"2번인데요?"
"무승부일 때 올려서 이긴 것도 있지 않나?"
"네 번 올리셔서 세 번 잡았습니다."
"거봐, 내가 자네를 믿어서 그런 거라니까."
"그럼 선발로는 왜 쓰시나요?"
"그야, 에이스도 부상으로 2군에 있고 하니 선발진이 부족하지 않은가? 앞뒤로 휴식도 챙겨줬고."
"5월 22일날 나가서 47개 던지고, 26일 선발로 110개 던졌습니다. 6월 2일날 선발로 나가서 98개 던지고, 6월 6일날 불펜으로 67개 던졌는데요?"
"연투도 아닌데 무얼 그러나?"
"6월 12일, 13일 불펜에서 각각 38개, 13개 던지고 16일날 선발로 87개 던졌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는 승리 계투조도 아니고, 패전 처리도 아닙니다. 불펜도 아니고 선발도 아닌 것 같고요. 이런 게 롱릴리프의 역할인가요?"
"하하, 그게 궁금했나? 두성이, 자네는 나의 가장 확실한 '믿을맨'이라네. 덕분에 팀이 이 정도 하고 있는 것이니 이해해 주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 말씀이 꼭 듣고 싶었습니다. 비록 제가 우리 투수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아스럽긴 합다. 그래도 팀에 도움이 된다니 몸이 부서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두성아. 정말 고마워."
두성이가 가고 나서 기록을 찬찬히 살펴 봤다. 오늘 현재까지 황두성은 불펜으로 나와 40이닝 동안 693개, 선발 22⅔ 이닝 동안 375개를 던졌다. 게다가 선발로 나선 것을 포함해도 평균 3일 마다 마운드에 올라 41개의 공을 던진 꼴. 불펜만 따지면 이 기록은 2.7일당 35개가 된다.
어디 보자? 황두성보다 공을 더 더진 투수는 8명밖에 없구나. 게다가 모두 선발.
기록을 챙겨 보고 나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미안하다, 두성아. 정말 꼭 이기고 싶을 땐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 어쩌겠니? 그게 잘 던지는 투수로 태어난 숙명인 것을. 미안하다, 정말. 미안.
그래도 다행이다. 비인기팀 투수라 쉽사리 눈치들 못 채는 것 같으니…
"감독님 제 보직은 무엇입니까?"
나는 늘 구상해오던 걸 말했다.
"자네는 롱릴리프라네."
잘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갔다.
롱릴리프, 선발 투수가 조기에 강판되면 나머지 몫을 채워주는 선수. 더러 선발 투수로 경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스윙맨'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곧 기록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런데 감독님 제 첫 등판은 석 점을 뒤지고 있던 6회였습니다. 이건 롱릴리프 역할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 경기는 꼭 잡고 싶었어. 그래서 자네를 올린 거라네."
"그런데 저는 26번 등판 가운데 6회 이후에 마운드에 오른 게 14번입니다. 그래도 롱릴리프인가요?"
"에이, 어디 포지션이 그렇게 딱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급하면 손민한도 세이브를 올리는 게 투수의 책무 아닌가. 믿을 만한 미들맨이 부족할 때도 자네를 마운드에 올리는 거라네. 필승 계투조인 셈이지."
"그런데 제가 구원 등판한 22경기를 살펴보면요, 지고 있을 때 마운드에 오른 게 14번이나 되는데요?"
"역전 기미가 보였기 때문이지."
"그래서 실제로 뒤집은 게 몇 번인지 아세요?"
"글쎄?"
"2번인데요?"
"무승부일 때 올려서 이긴 것도 있지 않나?"
"네 번 올리셔서 세 번 잡았습니다."
"거봐, 내가 자네를 믿어서 그런 거라니까."
"그럼 선발로는 왜 쓰시나요?"
"그야, 에이스도 부상으로 2군에 있고 하니 선발진이 부족하지 않은가? 앞뒤로 휴식도 챙겨줬고."
"5월 22일날 나가서 47개 던지고, 26일 선발로 110개 던졌습니다. 6월 2일날 선발로 나가서 98개 던지고, 6월 6일날 불펜으로 67개 던졌는데요?"
"연투도 아닌데 무얼 그러나?"
"6월 12일, 13일 불펜에서 각각 38개, 13개 던지고 16일날 선발로 87개 던졌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저는 승리 계투조도 아니고, 패전 처리도 아닙니다. 불펜도 아니고 선발도 아닌 것 같고요. 이런 게 롱릴리프의 역할인가요?"
"하하, 그게 궁금했나? 두성이, 자네는 나의 가장 확실한 '믿을맨'이라네. 덕분에 팀이 이 정도 하고 있는 것이니 이해해 주지 않겠나?"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 말씀이 꼭 듣고 싶었습니다. 비록 제가 우리 투수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의아스럽긴 합다. 그래도 팀에 도움이 된다니 몸이 부서지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두성아. 정말 고마워."
두성이가 가고 나서 기록을 찬찬히 살펴 봤다. 오늘 현재까지 황두성은 불펜으로 나와 40이닝 동안 693개, 선발 22⅔ 이닝 동안 375개를 던졌다. 게다가 선발로 나선 것을 포함해도 평균 3일 마다 마운드에 올라 41개의 공을 던진 꼴. 불펜만 따지면 이 기록은 2.7일당 35개가 된다.
어디 보자? 황두성보다 공을 더 더진 투수는 8명밖에 없구나. 게다가 모두 선발.
기록을 챙겨 보고 나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미안하다, 두성아. 정말 꼭 이기고 싶을 땐 너밖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 어쩌겠니? 그게 잘 던지는 투수로 태어난 숙명인 것을. 미안하다, 정말. 미안.
그래도 다행이다. 비인기팀 투수라 쉽사리 눈치들 못 채는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