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결과는 케네디 스코어(8:7)다. 게다가 두 팀 모두 최근 4연승으로 상위권을 형성한 팀끼리 맞붙은 경기라면 더더욱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5일) 벌어진 대구 구장 이야기다. WP 그래프와 함께 이 경기를 되짚어 보자.


먼저 승리 팀 유니콘스 관점에서 그린 그래프다.



유니콘스가 먼저 2회에 2점을 뽑으며 한 발 앞서 나갔다. 게다가 4회에는 이택근의 투런 홈런까지 터지며 승부는 완전히 현대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실제로 4회초 현대 공격이 끝났을 때 유니콘스의 WP는 .858, 즉 경기에서 승리할 확률이 85.8%나 됐다.

하지만 삼성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현대의 선발 송신영 선수를 강판시키며 끈질기게 찬스를 물고 늘어진 결과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린 것이다. WP는 다시 .500, 승부의 향방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큰 사건 없이 넘어간 5회는 폭풍전야였을까? 6회에 또 타시 석 점 홈런을 터뜨리는 유니콘스, 주인공은 또 한번 이택근이었다. 다시 한번 WP .845의 승기를 잡으며 저만치 앞서 나가는 듯 했다. 전준호가 범타로 물러나고 6회초가 끝났을 때까지도 현대의 WP는 .840이나 됐다. 6회말에 삼성이 한 점을 따라붙기는 했지만 .818의 WP, 삼성의 추격도 별 소용이 없는 듯 했다.

게다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채종국 선수의 솔로포가 터지면서 현대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8회에 삼성이 곧바로 두 점을 따라왔지만 현대의 WP는 여전히 .836이나 됐다. 현대의 9회초 공격이 아무 소득 없이 끝났을 때조차 WP는 .797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큰 위기를 느낄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삼성은 역시 삼성이었다.

다음은 삼성의 9회말 공격만 따로 확대해 그려본 WP 그래프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현대의 9회초 공격이 끝났을 때 현대의 WP는 .797이었다. 그럼 당연히 삼성의 WP는 .203(1 - .797)이 된다. 이제부터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김대익이 좌타자이기에 김재박 감독은 그대로 이현승으로 밀고 갔지만 보기 좋게 안타를 허용하고 만다. 신철인이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지만 연거푸 볼 네 개로 김한수를 내보낸다. 삼성의 WP는 .520, 경기에서 이기고 있는 현대보다도 오히려 승리를 이끌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다.

다음 타자 박진만에게도 계속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 신철인, 견제를 제외하고는 계속 볼 뿐이었다. 결국 김재박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오르고 나서야 신철은 선수는 겨우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었다. 그때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번트 지시를 거두고 강공 작전으로 전략을 변경한다. 하지만 결과는 얕게 뜬 중견수 플라이였다. WP .520이 .336으로 .184나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삼성이 아니었다. 곧바로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진갑용 선수의 안타가 터졌다. 삼서의 WP는 .537, 9회들어 가장 높은 수치였다. 2루에 있던 대주자 이정식 선수는 걸음을 재촉해 홈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현대 수비진 역시 송지만 - 정성훈 - 김동수로 이어지는 릴레이를 시작했다. 결과는 현대 수비진의 승리, 김동수 선수의 블로킹을 제대로 피하지 못한 이정식 선수의 몸에 김동수 포수의 미트가 먼저 닿은 것이다. 삼성의 WP는 .176으로 급락했다.

.537에서 .176로, 무려 .361의 변화였다. 이는 이날 경기를 통틀어 가장 큰 WP 변화폭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양 팀의 WP는 똑같이 .500이다. 승리를 뜻하는 1.000에서 모자란 나머지 .500이 결국 1승과 마찬가지 수준인 것이다. 따라서 이 플레이 하나가 전체 승부에 끼친 영향은 무려 72.2%에 달한다. 현대에겐 엄청난 수확이며, 삼성에게는 너무도 아쉬운 플레이였다. 이 플레이 하나로 승부는 끝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김창희 선수의 헛스윙 삼진으로 경기가 마무리됐다. 승리팀 현대에선 .426가 기록된 이택근 선수의 WPA가 가장 높은 수치였다. 승리의 85.2% 정도를 책임질 정도의 멋진 활약이었다. 거꾸로 삼성에선 선발 투수 임동규가 WPA -.591을 기록하며 패배의 책임을 지게 됐다. 홈런을 얻어맞은 책임이 큰 결과라고 하겠다.

이로서 당초 꼴등은 맡아 놨다는 현대 유니콘스는 어느덧 5연승을 내달리며 단독 2위를 차지하게 됐다. 과연 6연승에 성공하며 1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삼성이 1위 수성에 성공할 수 있을지 내일 경기 역시 흥미진진한 한 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케네디 스코어는 한국에서만 쓰는 야구 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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