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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KBO 신상우 총재의 인터뷰 내용을 둘러싸고 온갖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구단에서 수원에 정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던 시점에서 나온 이야기인지라 갑론을박이 더더욱 거센 상태다. 선수들은 찬성하는 분위기이지만 현대와 롯데 팬들의 미묘한 감정싸움까지 겹치며 보도를 부인하는 기사까지 나왔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의 연고지 문제가 불거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실 '00 시즌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것과 동시에 발생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 입성을 꿈꾸던 현대 구단으로서는 사실 이 정도는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오로지 경기에서 승리할 장소, 어쩌면 이것만이 현대 구단이 수원 구장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목동을 유력한 후보지로 선정하며 금세라도 서울에 번듯한 홈구장을 갖게 될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아시는 대로다.

바로 이 지점이 수원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수원은 수도권에 위치한 도시 치고는 특이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텃세가 그 어느 지역보다 심하다. 시쳇말로 전라도 주먹이 수도권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유일한 지역으로 불릴 정도다. 그리고 대개 수도권 사람들이 지방을 고향으로 두고 있는 데 비해 수원은 이 고장이 고향인 사람들의 비중이 높다. 전체 인구의 68.38%가 해방 이후 수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일 정도다. 최근 택지 개발로 인한 인구 유입을 고려하자면 엄청 나게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현대 구단은 수원을 임시 연고지로 확정하면서 이에 대한 마케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도시에 들어오면서 곧 떠난다는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밝혔으니 팬들의 관심을 얻을 수가 없었다. 구장 코앞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여러 개 위치해 있으면서도 관중이 없는 건 그런 까닭이다. 영통 쪽에 위치한 개발 지구와 달리 북수원 쪽에는 애초부터 수원에 살던 사람들이 입주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원은 철저한 지/학연이 지배하는 사회다. 최근 20년간 거의 대다수의 국회의원과 민선 수원시장은 수원농고-수원고 출신 정치인들이 양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수원 경제의 근간은 SK와 삼성이라는 두 대기업이다. 삼성은 반도체 단지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SK 창업주 최종현 씨가 바로 수원농고 출신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대라는 또 다른 대기업의 이미지가 자리잡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01년 수원을 연고지로 하던 농구팀 썬더스마저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차피 떠날 팀을 응원할 바보 같은 수원 시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벌써 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여전히 빈자리가 더 많지만 최근에는 부쩍 많은 관중이 구장을 찾고 있다. 팀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게 물론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 현대가 수원에 잔류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 역시 어느 정도 효과를 끼쳤다고 본다. 현재 현대를 응원하는 많은 팬들은 이미 연고지 이전의 상처를 한번씩 겪은 분들이다. 그 분들의 숫자가 바로 작년까지의 관중 숫자였다. 올해 들어 새로 늘어난 관중수는 현대 구단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수원 시민들이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이들에게 또 한번 연고지 이전의 상처를 주는 일은 사실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수원 잔류를 선언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은 연고지 보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아직도 현대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와 두산과 금전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상태다. 게다가 SK 구단과의 지명권 문제도 복잡하다. 이를 해결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해결책이 이번 논란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의견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머지 7개 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다른 구단, 특히 SK의 많은 양보를 필요로 하는 실정이다. SK 구단도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수도권에 위치한 구장 가운데 수원 구장의 시설이 가장 떨어진다. 문학 구장은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원 구장보다 지은 지 더 오래 된 잠실구장은 리모델링을 통해 관중석이 편안해졌고, 편의시설 또한 한층 세련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수원 구장엔 그 흔한 영상 전광판 하나 없는 상태다. 그러나 어차피 떠날 구단을 위해 선뜻 십수 억에 달하는 전광판을 기증할 지방 자치 단체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 역시 잔류 선언 이후에나 해결 가능한 문제로 보인다.

현재 수원시 인구는 105만 명이나 된다. 게다가 계속 증가세에 있다. 인근에 위치한 용인(88만), 화성(30만), 오산(13만) 등의 인구까지 계산하자면 여느 광역시 못지않은 시장인 셈이다. 분당, 판교 등은 서울 시장이라고 봐도 그렇다. 게다가 버스 편을 이용하면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꽤 높은 편이다. 프로야구 시장은 아직 파이를 나눌 단계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만약 현대가 수원을 떠난다면 우리 프로 야구는 이만한 파이를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물론 꼭, 반드시 현대가 수원에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현대가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겪은 문제와 수원에 남게 될 경우에 어떤 문제점이 남아 있는지를 알아본 것뿐이다. 현대 팬으로서, 현대 선수들이 보다 많은 관중 앞에서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멋진 플레이를 펼치길 바라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방안이 꼭 연고지 이전밖에 없는지는 사실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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