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1 "강정호가 주전인 팀과 김재걸이 백업인 팀의 차이."

SK에게 2연패를 당하고 수원 구장으로 그대들이 돌아왔을 때
나는 목놓아 그대들의 이름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하지만 장원삼의 호투도 양준혁, 진갑용의 홈런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9회말 2아웃 만루 동점
드디어 나도 승리를 만끽하나 보다...
하지만 김재걸의 그림 같은 수비는 그 꿈을 앗아 갔고
정성훈은 바운드를 맞추지 못해 결승점을 내줬습니다.

그렇게 두 번이나 더 연달아 패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승리가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포수였던 이택근



#2 "거참, 되게 시끄럽네. 여긴 청주라고. 한화 몰라?"

어쩌면 대전보다도 더 한화 팬들이 많은 고장 청주.
청주 시민들은 한 달에 한 번 자신들을 찾아오는
이글스를 열렬히 그리고 또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가뜩이나 팬이 적어 우울할 그대들에게
나는 여기도 그대들의 팬이 있노라 알려주고 싶었고
붉은 유니폼 속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들을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나의 막차 시간을 아는 듯
그대들은 너무도 손쉽게 상대를 꺾어주었습니다.
정말 거짓말 같은 승리였습니다.

시범 경기 때, 류현진에게 속절없이 당하던
바로 그대들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바로 어제만 해도 역전패를 당했던 그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에서도, 광주에서도 그대들을 승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원정 응원에 나설 때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고,
나는 어리석게도 점점 승리에 익숙해지고야 말았습니다.



준비된 그러나 모두를 놀래킨 신데렐라 박준수



#3 "요새는 뭐 맨날 패패승이냐?"

이제 좀 져라, 하는 바보 같은 내 말을 들었을까요?
아니면 이기고 있던 경기가 뒤집히며 연승이 끝나서였을까요?

17 경기에서 한번밖에 지지 않았던 그대들이
네 번이나 계속해서 졌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시리즈마다
연패 후 겨우 1승
연패 후 겨우 1승
이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바보 같은 그 소리를 어쩌면 당신들도 들었나 봅니다.
아뇨, 사실 계속해서 당신들이 이기길 바랬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간절히 당신들이 이기길 바랬습니다.



최근에는 뜨거운, 그러나 먹튀였던 집사님



#4 "한화랑 우리랑 사귀나봐."

그 이후 그대들은 내가 승리와 패배를 번갈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어느 틈엔가 우리 팀의 결과보다
한화의 결과를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오늘은 졌지만 괜찮아, 한화도 졌으니까.
이런, 한화는 오늘 이겼으니 큰 일 났네.

잊고 있었습니다.
시즌이 시작할 때만 해도
한화는 강력한 1위 후보
그대들은 맡아놓은 꼴찌
그 차이를 극복해주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그렇게 한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그대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는 걸 말입니다.



나이를 잊은 준호옹, 더불어 빼놓지 말아야 할 동수옹



#5 "강병식, 강병식, 강병식..."

우리 선발 김수경은 초반부터 연거푸 실점을 계속했습니다.
비가 내려 경기가 중단 됐고
나는 그대로 경기가 끝나주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경기 재개를 지시하는 심판을 향해
이런 날씨에 무슨 경기냐며 볼멘소리를 내뱉기도 했습니다.

미처 몰랐습니다.
그게 시작이 될 줄은....

그렇게 그 날부터 그대들이
다시 한번 이렇게 강해질 줄 말입니다.

그게 기적의 시작임을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강병식의 타구가 펜스를 훌쩍 넘어가던 순간까지도
어쩌면 나는 비가 계속 내리길 바라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확실한 기적의 시작



#6 "쟨 또 누구야?"

올 한 해는 정말 시작부터 힘이 들었습니다.

주전 유격수도 없이 시즌을 시작했고,
마무리로 내정됐던 황두성은 이틀만에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유일하게 믿을 만 했던 타자 서튼마저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늘 누군가 나타나 주었습니다.
처음엔 오재영이...
그리곤 손승락이...
다음엔 유한준이...
이어서 서한규가...
어느날 홍원기가...
갑자기 차화준이...
때로는 강병식이...
그리고 항상 우리 택근이가...

그래서 믿습니다.
남은 경기에서
그대들이 기적이란 무엇인지
그 결말을 내게 꼭 보여주리라는 것 말입니다.

그렇게 나타나 준 모두가
이번에는 힘을 합쳐
내게 기적을 꼭 보여주리라는 것 말입니다.



끈끈하진 않지만 다정한 우리팀...



#7 "2위라도 만족하겠습니다."

나는 2위라도 만족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기적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해보다 시달린
우리 감독님을 위해서

그리고 어느 때보다 힘들게 응원한
우리 팬들을 위해서

아니 그 무엇보다
올해 너무나도 열심히 뛴
그대들 스스로를 위해서

나는 그대들이 더 큰 기적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무 감사합니다.



올 늦가을에도 가장 마지막 경기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싶습니다.



Thank you and Thank you again,
Amazing amazing Unicorns,
Always Yours in Baseball,
k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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