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씨름을 돌려달라.


나는 '과거의 향수'에 그리 집착하는 타입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CD는 절대로 LP처럼 따뜻한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1000만원 쯤 들여 진공관을 설치한다면 이 주장에 동조해 줄 의향은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LP를 택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까 적어도 발전 혹은 진보라는 건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스포츠는 과거에 대해 고집을 부리곤 한다. 뭐든 옛날이 더 좋아 보인다. 유니콘스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으면서 돌핀스 팬이라고 우기는 건 그런 까닭이다. 또 여전히 농구팀 기아 자동차를 그리워한다. 모비스가 기아 자동차의 대(代)를 이었다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어쩐지 SK 와이번스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모양새라고 할까? 기아는 이미 사라졌다. 삼미도 마찬가지다. 물론 돌핀스도 그렇다. 아니, 이들은 사라져야만 한다. 추억 속에서 역사하기 위해 말이다.

그래서 요즘 씨름판이 참 씁쓸하다. 내가 이 과거의 스포츠를 추억할 수 있는 건 오늘날 실재가 추억을 담보하기 때문이지 그들이 완전히 소멸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KIA 타이거즈 경기 때 해태 깃발이 등장하고 팬들은 목을 놓고 '해태! 해태!'하고 외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재 씨름은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이만기 교수를 제명한 건 완전한 확인사살이었다. 과연 씨름이 살아날까? 아니, 굳이 씨름을 살릴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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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씨름을 마지막으로 본 건 1994년이었다. 추석을 맞이해 부산에서 천하장사 결승전이 열렸다. 그때만 해도 씨름판 최고의 스타는 만 17세에 천하장사가 된 백승일이었다. 상대는 얼마 전 프라이드에 진출한 이태현. 두 선수 모두 청구 소속이었다. 경기는 125분 동안 12차전까지 벌어졌다. 결국 규정에 따라 체중이 덜 나가는 이태현이 천하장사 자리에 올랐다.

125분이 재미있었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경기가 재미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 순간부터 더더욱 씨름의 묘미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경기는 이태현을 천하장사가 돼야 끝나는 '비기기' 모드에 가까웠다. 나는 그 후로 씨름을 보지 않았다.

팬들을 위한 배려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정은 물론 중요하만 악이용해서는 안 된다. 팬들은 승부를 보려고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승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패자에게는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건 팬들의 정당한 권리다. 두 선수 모두 승자가 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과 똑같은 호흡으로 숨쉬려고 팬들은 경기장을 찾고 TV 앞에 앉는 것이다.

이 경기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선수는 비오듯 땀을 흘렸고 격렬한 숨소리가 내 귀에도 그대로 들려왔지만 심장은 뛰지 않았다. "예정된 기차 출발 시각이 지나 상경이 곤란하다"는 아나운서 목소리가 차라리 감동적일 정도였다.

그 다음 씨름계의 행보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한 때는 일본의 스모를 벤치마킹해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결국 옛 영광을 다시 얻는 데는 실패했다. 때마침 외환위기까지 터지면서 경영난에 몰린 팀들은 해체수순을 밟았다. 연맹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K-1에 진출하기 앞서 최홍만이 피눈물로 호소할 때도 눈 감기 바빴던 게 우리 씨름 연맹의 현실이었다. 그 절정이 바로 이번 이만기 영구제명 사건이다.

이만기 교수는 얼마전 인튜버에서 "왜 진작 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관심을 갖지 않도록 만든 건 바로 씨름인들 자신이다. 변화를 모색하기보다 '전통'이라는 허울에 갇혀 팬들에게 어필할 요소를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아무도 '왜 명절에 씨름 중계가 없냐'고 묻지 않는다. 아니 젊은 세대는 씨름이라는 스포츠가 존재하는지조차 잊은 것 같다. 씨름은 철저히 농경시대에 어울리는 스포츠다. 확실한 변화가 없다면 씨름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박광덕이 다시 람바다 춤을 춘 올드스타전은 사실 재미있는 볼거리였다. 문제는 현역 선수들 경기가 올드스타전보다 재미없다는 데 있다. 씨름 인기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꾸로 스타가 없어 인기가 없다.

씨름은 본질적으로 개인 경기지만 팀이 있어야 선수를 보호할 수 있다. 옛 스타들이 나서 '도장' 형태로도 팀을 운영하는 건 어떨까? 현재 당장 현역에 스타가 없다면 '이봉걸 도장', '이만기-이준희 도장' 같은 형태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해 보는 것이다.

도장을 운영하려면 돈이 든다. 개인적으로 돈을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떨까? 연맹 차원에서 대회 스폰서를 구한다. 스폰서 금액을 일정 자격은 갖춘 도장에 재분배하는 거다. 도장 차원에서 아마추어 선수들까지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다면 씨름판의 전체적인 모양새가 좀더 나아질지 모른다. 그러니까 '미래 스타' 대해서도 생각할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묻고 싶은 것이다.

경기 방식도 좀더 기술적인 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팬들은 '힘 자랑'보다는 기술 씨름을 선호한다. 덩치가 작은 선수가 화려한 기술로 커다란 덩치를 매다 꽂는 장면이야 말로 씨름의 백미다. 서민들에게 가장 큰 대리만족을 안기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손쉽게 이기려고 선수들에게 큰 덩치를 주문하기보다 기술이 뛰어난 선수를 중용해야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여전히 LP밖에 없다면 하릴없이 LP를 써야 한다. 하지만 CD, MP3 플레이어가 있는데 굳이 LP를 고집하는 이유가 '더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건 그저 그 사람 취향이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이미 세상에는 재미있는 게 참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옛날엔 이래도 좋았다"며 과거를 답습해서는 발전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K-1을 따라하는 건 너무 심했다. 복고는 여전히 스포츠 세계에서 유용한 문화적 코드다. 씨름계에서도 복고와 답습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1994년 추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분명 TV 앞에 앉아 씨름 중계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정말 그때는 씨름이 재미있었다. 방바닥에 이불 한 장 펴놓고 친구들끼리 허리띠를 잡아 본 건 비단 나 혼자만의 추억이 아닐 것이다. 제발 그 날의 설레임을, 그 날의 추억을 되돌려 달라. 제발 다시 재미있는 씨름을 보여달라. 그럼 마치 LP판에 집착하는 기기광(狂)처럼 "씨름이 정말 너무도 재미있다"고 남들에게 떠들고 다닐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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