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레슬링의 초창기 스타 '박치기왕' 김일 선생이 타계했다. 이제 겨우 20대 후반인 주제에 김일 선생의 현역 시절에 얽힌 어떤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선생의 타계가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얼마 전 니그로 리그의 스타 선수이자 현역 최고령 야수 선수이던 벅 오닐(Buck O'neil) 역시 세상을 떠났다. 랍 네이어를 비롯한 많은 현역 컬럼리스트들이 그의 마지막에 송사(送辭)를 보냈다. 미네소타의 영웅 커비 퍼켓 역시 마찬가지 영광을 누렸다. 말하자면, 그런 문화가 너무도 부럽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김일 선생은 잘 알려진 대로 역도산의 제자다. '50년대 후반 역도산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일본으로 밀항,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역도산의 문하생이 되겠다는 일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 후 문하생으로 인정받기는 했지만 일본인들에 의한 차별과 멸시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이가 바로 김일 선생이다.

그의 전성기에 우리나라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서러웠다. 그런 울분을 덜어준 장본인이 바로 김일 선생이었다. 물론 각본이었다고는 해도, 상대의 반칙과 술수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김일. 그때마다 터지는 통렬한 박치기! 경기의 주도권은 다시 김일에게 넘어가고 결국 그는 승자가 된다. 그렇게 그의 박치기 한방은 우리 모든 국민에게 역전을 꿈꾸게 하는 희망이었다.

뭔가 굉장히 유사한 느낌을 주는 선수가 한명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박찬호다.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홀로 태평양을 건너 IMF에 신음하던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준 선수 박찬호. '90년대 후반 박찬호가 그랬듯 '60~‘70년대에는 김일 선생이 있었던 것이다. 혹자들은 '채무'라는 값싼 낱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스포츠가 존재하는 순기능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姑손기정은 우리 국민의 영웅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딴 게 전부다. 사실상 그가 대단한 독립 투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일제 치하에서 신임하던 우리 국민에게 해방에 대한 열의를 드높여 주고, 국민을 하나로 똘똘뭉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그를 베를린의 영웅으로 기억하는 까닭이다.

정치 · 역사적인 논쟁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스포츠가 갖는 의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렇게 온 국민에게 희망과 영광을 안길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그에게 영웅이라는 칭호를 사용해도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왜 김일 선생을 영웅으로서 보내주지 못하는가?

물론 김일 선생이 우리 조국 근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조국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사실상의 희생과 억압을 강요받았던 우리 국민들의 울분 해소에 도움을 준 것만큼은 틀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마지막 10년 이상을 서울 변두리의 한 병원에서 조용히 보내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없이 또 눈을 감고 말았다.

이제라도 우리 김일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자. 자이언트 바바를 박치기로 쓰러뜨린 희열에 대하여.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단 한번밖에 패하지 않은 그의 투혼에 대하여. 우리가 우리의 영웅을 전설로 만들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를 기억해주지 않는다. 적어도 희망을 꿈꾸는 이라면, 한번쯤 김일 선생에게 추모 묵념을 받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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