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팀 웨이크필드. 보스턴=로이터 뉴스1

팀 웨이크필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7세.

 

메이저리그(MLB) 보스턴은 "웨이크필드가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아픈 마음으로 전한다"고 1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했습니다.

 

보스턴 팀 동료였던 커트 실링(57)이 팟캐스트를 통해 웨이크필드가 뇌종양과 싸우고 있다고 입을 턴 지 공개한 뒤 사흘 만입니다.

 

보스턴 구단은 "훌륭한 팀 동료이자 뛰어난 해설자 그리고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를 잃었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너클볼을 던지는 팀 웨이크필드. 유튜브 화면 캡처

너클볼 투수였던 웨이크필드는 1995년부터 17년 동안 보스턴에서 뛰면서 3006이닝을 소화했습니다.

 

보스턴 소속으로 가장 많은 이닝을 책임진 투수가 웨이크필드입니다.

 

이닝 소화가 많았다는 건 아웃을 그만큼 많이 잡아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스턴 투수로 아웃을 가장 많이 잡아낸 투수가 바로 웨이크필드입니다.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결정전(ALCS) 3차전 당시 팀 웨이크필드. 보스턴=로이터 뉴스1

웨이크필드의 이닝 소화 능력이 가장 빛을 발한 건 2004년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결전전(CS) 때였습니다.

 

웨이크필드는 원래 이해 ALCS 4차전에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 전적 2전 전패로 밀려가던 3차전에서 4회초에 6-9로 뒤지기 시작하자 구원 등판을 자처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웨이크필드가 3과 3분의 1이닝을 막아주면서 보스턴은 '필승조'를 지킨 채로 4차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보스턴은 4차전에서 데이브 로버츠(51)의 '더 스틸'을 앞세워 시리즈를 일단 5차전까지 끌고갔습니다.

 

웨이크필드는 5차전 때도 4-4 동점이던 12회초에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실점이 곧 시즌 종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건 어떤 투수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웨이크필드는 바로 전년도(2003년) ALCS 7차전에서 애런 분(50)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장본인이기도 했습니다.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팀 웨이크필드. 유튜브 화면 캡처

그러나 이날은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연장 14회말 데이비드 오티스(48)가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6, 7차전이 열리는 뉴욕으로 승부를 끌고갔습니다.

 

웨이크필드는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지난해는 지난해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스턴은 결국 MLB 역사상 첫 '리버스 스윕'으로 ALCS를 마감하면서 월드시리즈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도 필라델피아에 4전 전승을 거두면서 86년 만에 '밤비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보스턴 지휘봉을 잡고 있던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웨이크필드가 어떤 선수인지는 ALCS 3차전이 상징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웨이크필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다"고 평했습니다.

 

웨이크필드는 정규시즌 때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보스턴에서 뛴 총 590경기 중 430경기가 선발, 160경기가 구원 등판이었습니다.

 

보스턴 역대 다승 3위에 이름을 올린 팀 웨이크필드. 보스턴=로이터 뉴스1

웨이크필드는 보스턴에서 186승 168패, 평균자책점 4.43을 남겼습니다.

 

보스턴 소속으로 웨이크필드보다 승리를 더 많이 거둔 투수는 사이 영(1867~1955)과 로저 클레먼스(61)뿐입니다.

 

영과 클레먼스 모두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192승을 거뒀습니다.

 

보스턴 안방 구장인 펜웨이파크에서 웨이크필드(97승)보다 승리가 많은 투수도 클레먼스(100승)뿐입니다.

 

팀 웨이크필드 선수 시절 선수 카드

웨이크필드는 1988년 MLB 신인 드래프트 때 피츠버그로부터 8라운드 지명을 받으면서 프로 선수가 됐습니다.

 

이해 드래프트 전체 200번째 지명자가 웨이크필드였습니다.

 

당시 웨이크필드는 투수가 아니라 주로 1루수로 출전하는 내야수였습니다.

 

그러나 1988년 마이너리그 A에서 OPS(출루율+장타력) .636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마이너리거 시절 팀 웨이크필드

그의 운명을 바꾼 건 '장난'이었습니다.

 

스프링캠프 때 팀 동료와 캐치볼을 하면서 너클볼로 송구를 했는데 이 모습이 우디 하위케(86) 감독 눈에 띄었습니다.

 

피츠버그 구단에서는 그에게 너클볼 투수로 전향할 것을 권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를 받아들이면서 웨이크필드는 포지션을 바꾸게 됩니다.

 

웨이크필드는 "타자로는 AA 이상 올라기가 힘들다는 평가를 들은 뒤였다. MLB에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피츠버그 시절 팀 웨이크필드. 동아일보DB

1991년 AA에서 15승 8패,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한 웨이크필드는 1992년 AAA로 올라온 뒤 그해 7월 31일 MLB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웨이크필드는 데뷔전에서 상대 타자 10명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2실점(무자책점) 완투승을 거뒀습니다.

 

그해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NLCS) 3차전6차전에서도 승리 투수가 되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1993년) 6승 11패, 평균자책점 5.61에 그쳤고 1994년에는 AAA에서도 5승 15패, 평균자책점 5.84를 기록한 뒤 1995년 시즌 개막 후 방출 통보를 받았습니다.

 

통산 200승 달성 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팀 웨이크필드. 보스턴=로이터 뉴스1

피츠버그에서 방출 당한 지 6일 만에 보스턴과 계약한 웨이크필드는 그해 바로 16승 8패, 평균자책점 2.95로 부활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1년 MLB 통산 200승(180패)을 기록한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웨이크필드는 보스턴에서 데뷔하지는 않았지만 웨이크필드보다 보스턴에 오래 몸담은 건 △칼 야스트렘스키(84) 23년 △테드 윌리엄스(1918~2002) 22년 △드와이트 에반스(72) 19년 등 세 명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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