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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뉴욕 양키스 소속의 왕치엔밍(王建民, 26)이 28일(한국시간)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꺾고 이번 시즌 19번째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박찬호가 가지고 있던 메이저리그 아시아인 최다승(18) 역시 왕치엔밍의 차지가 됐다. 이번 시즌 19승은 미네소타의 요한 산타나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기록이다. 확실히 왕치엔밍은 이제 아시아 출신 최고의 투수로 자리매김 해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이번 신기록 작성은 물론 왕 선수 본인에게는 분명 축하해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박찬호 선수를 응원하는 우리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한편으로는 아쉬움을 남기는 사건이다. 그래서 한번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자. 정말 '06 시즌 왕치엔밍은 18승을 거뒀던 '00 시즌의 박찬호보다 뛰어난 투수일까?

물론 투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승수가 가장 먼더 떠오르는 기록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투수의 승수는 다분히 '행운'이 많이 개입되는 기록인 것도 사실. 8이닝 무실점을 하고도 승수쌓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늘 왕치엔밍처럼 6이닝 4실점을 거두고도 챙길 수 있는 게 승리다. 따라서 단지 승수만 가지고 투수를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득점 지원을 알아보면 이를 금방 알아볼 수 있다. '00 시즌 박찬호의 득점 지원은 9 이닝 당 5.18점이었다. 반면 왕치엔밍은 이번 시즌 5.86점의 득점 지원을 받고 있다. 만약 두 선수 모두 200 이닝을 던진다고 가정하면 왕치엔밍이 박찬호보다 30점이나 더 지원을 받는 셈이 된다. 승수를 쌓는 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왕치엔밍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승수는 왕치엔밍이 더 많긴 하지만 단지 이것만으로 박찬호보다 더 뛰어난 투수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방어율 역시 좋은 기준이 되지 못한다. 방어율에는 투수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수비진의 능력 역시 포함돼 있다. 게다가 다른 시즌, 다른 리그에서 뛴 두 선수의 방어율을 직접 비교하는 것도 확실히 문제가 있는 태도다. 일단, 지명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는 AL과 그렇지 않은 NL은 득점력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구장의 특성 역시 득점 환경의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보정하기 위해 나온 기록이 바로 수정 방어율이다. 수정 방어율은 리그와 시대 그리고 구장의 차이를 감안해 평균보다 얼마나 뛰어난 방어율을 기록했는지 보여준다. 박찬호는 '00시즌 226이닝을 던지면서 3.27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이를 수정 방어율로 환산하면 132가 된다. 리그 평균에 비해 32% 뛰어난 활약을 펼쳐보였다는 뜻이다. 오늘 경기까지 218 이닝 동안 왕치엔밍의 방어율은 3.63, 수정 방어율은 127이다. 비슷한 이닝수를 감안하자면, 수정 방어율로 볼 때는 박찬호의 우위라는 얘기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방어율에는 투수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수비진의 능력 역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똑같은 타구라 해도 수비력이 좋은 야수들이 버티고 있으면 아웃으로 처리될 것이 2루타, 3루타로 둔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차이를 보정하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DERA(Defense-adjusted ERA, 수비 조정 방어율)이다. 마찬가지로 시대 차이와 구장 효과가 반영되는 기록이다.

'00 시즌 박찬호의 DERA는 3.57이다. 던진 이닝수를 감안하자면, 박찬호 혼자 자신만의 힘으로 막아낸 점수(PRAA)는 약 24점이 된다. 이는 대체 가능한 다른 투수에 비해 90점 가량을 더 막아낸 기록(PRAR)이다. 왕치엔밍의 이번 시즌 현재까지 DERA는 3.64로 박찬호에 근소한 차이로 뒤진다. PRAA와 PRAR 모두 각각 20, 65로 박찬호에 미치지 못한다. 수비력의 차이를 감안하자면 박찬호의 우위가 조금 더 입증이 되는 셈이다.


세이버메트릭스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이렇듯 겉으로 드러난 기록 이외에도 선수가 갖는 실질적인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다. 왕치엔밍과 박찬호의 경우에도 승수뿐 아니라 다른 기록을 비교할 때 두 선수 가운데 누가 더 뛰어난 투수였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좋은 투수란 점수를 적게 주면서 더 많은 이닝을 책임지는 선수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 막아낸 점수가 많을수록 그러니까 수비진의 도움 없이도 많은 점수를 막아낼수록 더 좋은 투수다.

왕치엔밍과 박찬호 모두 비슷한 수준의 이닝을 소화한 가운데 자신이 제어 가능한 실점은 박찬호의 경우에 더 적다.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라도 확실히 박찬호가 더 좋은 투수였다는 뜻이다. 만약 왕치엔밍이 나머지 한 번의 선발 등판 기회에서 20승을 달성한다면 박찬호의 18승은 더더욱 초라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에도 누가 더 좋은 투수인가에 대한 해답은 '06 시즌 왕치엔밍이 아닐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더 좋은 기록을 세울 가능성이라면 왕치엔밍의 손을 들어줘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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