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MLB

엑스타인과 손시헌



2004년 트레이드 마감일. 레드삭스 팬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팀의 심장이던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된 것이다. 미네소타와 몬트리올까지 네 팀이 얽힌 이 트레이트를 통해 보스턴은 가르시아파라의 빈자리를 올란도 카브레라로 채웠다.

결국 미네소타에서 건너온 덕 민케이비치와 함께 올란도 카브레라는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무너뜨리는 1등 공신이 되며 팀에 챔피언 트로피를 안긴다.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빈자리는 그렇게 잊혀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펜웨이파크의 주전 유격수로 보낸 시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해 12월 FA 자격을 얻은 카브레라는 에인절스와 계약을 하며 팀을 떠났고, 레드삭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니널스의 에드가 렌테리아를 '모셔왔다.' 연간 1,000만 달러가 넘는 계약을 통해서 말이다. 이 와중에 에인절스의 주전 유격수였던 데이빗 엑스타인은 세인트루이스의 부름을 받았다. 결국 세 팀이 주전 유격수를 맞바꾼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스턴의 렌테리아 영입은 재앙으로 끝이 났다. 타자들에게 유리한 구장에서 뛰었음에도 렌테리아는 .276/.335/.385의 성적으로 2005 시즌을 마쳤다. 팀은 그와 계약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그를 애틀란타로 트레이드했다. 그 사이 카브레라는 에인절스에서 계속 자신의 명성을 이어갔고, 엑스타인 역시 세인트루이스의 확고부동한 리드오프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엑스타인은 자신의 가치를 만천하에 증명하며 MVP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자신을 밀어낸 올랜도 카브레라도, 올랜도 카브레라를 밀어낸 에드가 렌테리아도, 아니 레드삭스의 심장이라던 노마 가르시아파라도 차지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엑스타인 역시 레드삭스 구단으로부터 웨이버 공시된 전력이 있다. 유격수 자리에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버티고 있었기에 그에게 돌아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지난 일에 가정이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부상과 부진을 예견했더라면 엑스타인에게도 이런 기구한 운명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레드삭스와 에인절스 모두 자신들에게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차버린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아니, 어쩌면 이런 시련이 오늘날의 엑스타인을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엑스타인은 메이저리거답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다. 그의 공식 신장은 겨우 168cm밖에 되지 않는다. 덕분에 스카우트들은 그의 수비 레인지에 대해서 늘 회의를 품고 있었고, 타격 실력이 절정에 달했을 때조차 그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 이적 이후 그는 수비 범위와 송구에 있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심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월드시리즈 MVP에 등극했다.


우리 리그에서 작은 거인은 '손시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역시 작은 키에 좌우 수비 범위에 대해 그리 좋을 평을 듣지 못했다. 이 때문에 불운하게도 아시안게임 대표에 뽑히지 못하는 설움을 맛봐야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카타르 도하에서 모래 먼지와 싸우고 있을 때, 손시헌은 논산 훈련소에서 흙먼지에 눈물을 씻어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팬들은 믿는다. 2년이 지나고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줄 그의 재기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한국의 데이빗 엑스타인이니까 말이다.


댓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