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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극도의 투고타저 속에 진행됐던 지난 시즌 초반, 유독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타자가 한 명 있었다. SK 소속이었던 시오타니 가즈히코(塩谷和彦)가 바로 그 주인공. 여담이지만 얼마 전 K-1 진출설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바로 그 선수다.

시오타니는 시범 경기부터 3할9푼5리의 타율(1위)을 자랑하며 화려하게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그를 지켜본 전문가들 역시 시오타니를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정교한 타격 솜씨뿐 아니라 장타력과 함께 진루타 '능력'까지 갖춘 선수가 나타났다며 최초의 일본인 외국인 타자의 등장에 환호했다.

시오타니의 맹활약은 현대와의 개막 시리즈서도 계속됐다. 개막전에서는 결승 투런, 2차전에서는 끝내기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일약 SK의 스타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러나 시오타니의 야구 철학은 늘 한결 같았다. 경기 직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홈런이 아닌 진루타를 강조한 것이다.

"홈런을 의식하기 보다는 의식적으로 진루타를 치려고 노력했다. 주자를 한 베이스라도 더 보내기 위한 타격에 신경을 썼다. 한국선수들이 좀 더 진루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부분만 더 나아지면 한국야구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다."

전체 7타점 가운데 5타점을 홈런으로 쓸어 담은 타자의 인터뷰 치고는 확실히 뜻밖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팀 내 분위기 역시 시오타니의 이런 발언에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당시 조범현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 모두 "시오타니는 정말 진루타만을 생각하는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선수들 또한 자신의 안타나 홈런 등 개인적인 목표보다 '팀 승리'를 목표로 '진루타'에 초점을 맞춰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시오타니의 이런 야구관은 비단 이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부상으로 귀국길에 오르기 전까지 시오타니는 자신의 인터뷰를 몸소 기록으로 증명했다. 개막 시리즈 이후 21 경기에서 시오타니는 겨우 홈런 하나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타점은 12개를 기록하며 팀 배팅에 주력하는 모양새를 잃지 않았다.

'시오타니 효과'는 팀 성적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시오타니가 부상을 당한 5월 7일까지 SK의 성적은 14승 9패. 선두 현대에 반 경기 뒤진 2위였다. 하지만 시오타니의 부상 이후 SK는 부진을 면치 못했고, 결국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시오타니가 그토록 강조했던 진루타가 SK 타자들에게서 사라진 때문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지난 시즌 SK 타자들은 30.3%의 진루타율을 기록했다. 이는 리그 평균(27.6%)에 2.7%포인트 앞선 전체 1위 기록이다. 시오타니가 떠난 이후에도 SK 타자들은 계속해서 진루타에 주력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표 1> 2006 시즌 각 구단별 진루타율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진루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자. 스포츠 전문 통계 기관인 앨리어스 스포츠 사무국(Alias Sports Bureau)에 따르면 진루타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이닝의 첫 번째 아웃을 소모하며 주자를 진루시키는 행위 
  • 이닝의 두 번째 아웃을 소모하며 득점을 올리는 행위 
  • 이닝의 두 번째 아웃을 소모하는 투수의 희생번트
  • 우리 리그에서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세번째 경우는 사실 의미가 없다. 따라서 앞의 두 조건을 충족시키는 경우를 진루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 진루타는 해당 아웃카운트에 지장된 루(壘)에 주자가 있을 때만 발생한다. (기회) 
  • 진루타는 기본적으로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 행위다. (진루타⊃아웃)
  • 분명, 아웃 카운트 소비 없이 주자를 진루시키는 행위는 안타나 볼넷 등으로 불리지 '진루타'라고 불리지 않는다. 그래서 진루타의 영어 표현은 Productive Outs(생산적인 아웃)이다. 따라서 아웃 카운트와 한 베이스 진루를 맞바꿀 경우 그만한 효용 가치가 반드시 담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웃 카운트 하나를 낭비할 만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구에서 이런 효용 가치를 갖는 지점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2006 시즌의 경우, 무사 1루에서 타자들은 평균 0.80점을 뽑아냈다. 그러나 진루타에 의해 1사 2루가 되면 기대치는 0.66점으로 떨어진다. 무사 2루에 1.00이던 득점 기대치 역시 1사 3루가 되면 0.93점으로 소폭 하락하긴 마찬가지다.


    <표 2> 2006 KBO 득점 기대값 메트릭스(Matrix)

    물론 득점 기대치가 올라가는 지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사 1/2루가 1사 2/3루가 될 때 1.45점에서 1.48점으로 0.03점 올라가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런 경우는 지난 시즌 41번 나왔다. 한 시즌 전체를 놓고 봐도 1.23점 정도의 효과밖에는 없는 셈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루타는 아웃 카운트를 늘리는 행위다. 그리고 투고타저가 심하면 심할수록 아웃 카운트 하나보다는 1점이 더 소중하다. 타자가 아웃 당할 확률이 타고투저 상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점수가 너무 안 난다며 혀를 내둘렀던 지난 시즌에도 진루타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여전히 와 닿지 않는 독자들이 있다면 다음 표를 한번 확인해주길 바란다. 왼쪽에 나온 선수들은 진루타 비율이 높은 선수들이고, 오른쪽은 반대로 진루타를 때려내지 못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이 10 명의 선수들로만 팀을 짜야 한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왼쪽 아니면 오른쪽?


    <표 3> 2006 시즌 타자별 진루타율 (기회 20번 이상)

    다시 4월의 SK 얘기를 해보자. 4월 9일 경기에서 동점 투런 홈런을 터뜨린 박경완은 그 공을 앞타자인 김재현에게 돌렸다.

    "대기타석에 있을 때 앞타자 김재현이 '무조건 살아나갈 테니까 뒤를 책임지라'는 말에 더욱 집중을 했다."

    한 기자는 이를 두고 '시오타니 효과'라고 명명했다. 도대체 이 문장 어디서 진루타를 읽어낼 수 있을까? 무조건 살아나가겠다는 건 '출루'를 뜻하고, 홈런은 진루타가 아닌 '장타'다. 그것도 득점과 곧바로 직결되는 장타 말이다. 홈런은 아웃 카운트를 전혀 소비하지 않는 행위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시오타니 효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사실 시오타니의 진루타율은 33.3%로 그리 높은 편도 아니었다. 달리 말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전혀 하지 않기로 유명한 시오타니의 K-1 진출설이 한낱 해프닝으로 들리는 것처럼,  '시오타니 효과'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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