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투수의 승패는 사실 투수 본연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준은 못 된다. 지난 6월 28일 문학 경기를 한번 되짚어 보자. 200승을 향해 전진하던 송진우는 SK 타선을 9이닝 무실점으로 막았다. 한화 타자들이 단 한점만 뽑아줬더라면 완봉승이 기록될 순간이었다. 하지만 9회까지 양 팀 모두 단 한점도 얻어내지 못했고, 송진우에게는 승패가 기록되지 않았다.

이처럼 투수가 9이닝을 무실점을 막아 냈다고 하더라도 타선이 점수를 뽑아주지 않고서는 승리를 챙길 수 없는 게 야구다. 그런데도 우리는 곧잘 10승 투수, 20승 투수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마치 투수가 잘 해서 승리를 거두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길 줄 아는 투수가 진정한 에이스라는 소리 역시 곧잘 들릴 정도다. 하지만 타선이 점수를 많이 뽑아준 경기에서 슬렁슬렁 던지는 선수를 과연 에이스라 부를 수 있는 걸까?

이런 문제점이 지적된 건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선 지원이라는 개념이 고안됐다. 타선 지원은 투수의 방어율과 마찬가지로 특정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있을 때 타자들이 뽑아준 점수를 9이닝당 비율로 환산한 수치다. 타선의 도움을 얻지 못해 승리를 챙기지 못한 투수들을 배려하기 위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 역시 완벽하지가 못하다. 득점 지원이란 기본적으로 평균값이기 때문에 고른 분포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득점 분포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를테면, 18-0으로 한번 이기고 2-4로 패한 경기와, 10-0, 10-9로 이긴 두 경기의 평균 득점 지원은 똑같이 10점이다. 두 경기에서 투수가 받은 득점 지원의 수준은 확실히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물론 단 두 경기로 속단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내딛어 보자.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다음은 똑같이 7경기씩 던진 두 가상 투수의 최종 경기 득/실점 결과다. 두 투수 모두 모든 경기에서 완투를 한 것으로 간주한다.

  • 김승리 ; 1-0(승), 2-1(승), 3-2(승), 4-3(승), 5-4(승), 6-5(승), 0-6(패)
  • 이패배 ; 0-1(패), 1-2(패), 2-3(패), 3-4(패), 4-5(패), 5-6(패), 6-0(승)

    위의 경우 두 투수의 총실점은 21점, 타선의 지원도 21점으로 같다. 득/실점 분포 역시 차이가 없다. 하지만 김승리 선수는 6승 1패나 거둔데 비해, 이패배 선수는 1승 6패에 그치고 말았다. 한 경기, 한 경기 따져보지 않고서는 평균적인 득점 지원이 그리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느 투수가 어느 경기에서 얼마나 잘 던졌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또 다른 지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빌 제임스(Bill James)는 투수의 개별 경기 성적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 하나를 고안해 냈다. 바로 게임 스코어(Game Score, 이하 GS)다. 게임 스코어는 각 경기에서 투수가 어느 정도 활약을 보여줬는지를 점수로 나타낸 값이다. 계산 방법은 아래와 같다.

    50점에서 시작한 후

    •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을 때마다 1점씩 더한다. (1이닝 = 3점)
    • 4회 이후 이닝을 '끝마칠' 때마다 2점씩 더한다. (6 2/3, 6이닝 모두 4점.)
    • 삼진을 잡을 때마다 1점씩 더한다.
    • 안타를 맞을 때마다 2점씩 뺀다.
    • 볼넷을 내줄 때마다 1점씩 뺀다.
    • 자책점이 기록되면 4점씩 뺀다.
    • 비자책인 경우는 2점씩 뺀다.
    한마디로 투수가 잘한 경우에는 점수를 더하고, 못하면 빼는 과정이다. 비록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경기 내용이 좋았다면 높은 게임 스코어를 받게 마련이고, 그렇지 못했다면 낮은 점수에 만족해야 하도록 짜여진 괜찮은 방식이다. 단순한 승패를 떠나 투수의 경기 내용을 점수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한번 GS값을 가지고 이번 시즌 불운했던 투수들을 알아보기로 하자. 8월 20일 현재까지 '06 시즌 프로야구는 모두 374 경기를 치렀다. 매 경기 양 팀의 선발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기 때문에 GS값이 기록된 경우는 총 748번이 기록됐다. 승리를 가져간 경우의 평균 GS값은 62.2, 패전이 된 경우에는 42.7이었고, 승패 기록이 없는 선수들은 평균 49의 GS값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투수가 잘 던질수록 승리를 가져갈 확률이 높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높은 GS값을 기록했음에도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면 그 선수는 불운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범위를 한정 짓기 위해, 높은 GS값의 기준을 승리 투수들의 평균 GS값인 62로 정해보자. 그러니까 62 이상의 GS를 기록하고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잦은 투수들을 불운했다고 평가하자는 얘기다.

    이 조건을 따르자면, 가장 불운한 투수는 두산 베어스 소속의 다니엘 리오스다. 리오스는 62 이상의 GS값을 기록한 8 경기에서 승수를 쌓지 못했다. 이 8 경기에서 리오스의 평균 GS값은 68.3이나 된다. 패전은 4번이나 기록됐다. 11패 가운데 4패는 확실히 억울한 패전이었다는 뜻이다. 나머지 패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패전 투수가 된 11경기 전체의 GS를 알아봐도 평균 53.9나 된다. 패전이 된 경우의 평균값인 42.7과 비교할 때 11.2나 높은 기록이다. 확실히 승운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리오스는 이번 시즌 불운을 경험하고 있다.

    KIA의 세스 그레이싱어 역시 만만치 않다. 비록 누적 수치는 6회로 리오스에 뒤진다. 하지만 이 6경기에서의 평균 GS값은 68.8로 오히려 리오스에 근소하게 앞선다. 패전 횟수 역시 리오스와 똑같은 4회다. 패전으로 처리된 이 네 경기에서의 평균 GS값은 68.8, 전체 10패의 평균값은 50.6이다. 물론 수치상 리오스보다는 떨어진다. 하지만 10패 경기 가운데 6번이 7이닝 3자책 이하(QS+)였다면 또 다른 얘기가 아닐까? 우스개로 표기한 그의 이름대로 ‘회색가수'의 고독한 콘서트가 너무도 잦았다는 말이다.

    게임스코어 얘기를 꺼낸 김에 하나 더 짚어 보자. 투수가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기록한 GS를 알아보면, 그 투수가 어느 정도 수준의 활약을 보여줬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을 알아 보면, 우리는 또 한명 불운한 투수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현대의 장원삼이 그 주인공이다. 장원삼은 평균 GS 59.0으로 이 부분 3위에 올라 있다. 신인으로서 이 정도 순위는 확실히 칭찬받을 만한 기록이다. 하지만 예상하는 대로, 이 부분 1위는 바로 류현진(63.6)이다. 게다가 62 GS 이상으로 승리를 챙기지 못한 경우 역시 4번으로 국내 투수 가운데 가장 많다. 결국 다른 해 같았으면 충분히 신인왕이 됐을 성적이 류현진에 묻히고, 불운에 묻혀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본 것처럼 이번 시즌에는 유독 불운한 투수가 많다. 특히 두 외국인 에이스, 리오스와 그레이싱어는 확실히 그렇다. 사실 두 선수는 전체 평균 GS값에서 2위(리오스, 59.3)와 4위(그레이싱어, 58.7)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다승 명단 대신 다패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야 했다. 팀과 선수 개인 모두에게 이는 분명 불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원삼 역시 신인왕 타이틀에 있어 이래저래 치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류현진의 존재가 가장 큰 이유지만, 불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마냥 불운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기록상으로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경기장을 직접 찾아 이들을 응원하는 팬들에겐, 그 어느 선수보다도 안타깝게 느껴지는 소중한 선수들이 바로 이들이 아닐까? 그래서 팬들은 아마 그 어느 선수가 선발로 나설 때보다도 더 큰 응원의 목소리를 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팬들의 끊임없는 응원의 목소리가 이 불운을 행운으로 바꿔주길 아마 이 세 선수들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의 기나긴 불운이 이제 모두 끝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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