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최근 두 유명인이 자신의 반라(半裸)를 공개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한명은 미스 유니버스를 꿈꾸는 20대 미녀 이하늬, 또 한명은 중년의 야구 코치 이만수다. 벗었다는 점을 빼놓고는 전혀 닮은꼴이 아닌 듯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하늬의 비키니 사진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해마다 열리는 미스코리아 대회부터 많은 여자 연예인의 모바일 화보까지 이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반라 사진에 노출돼 있다. 그러니까 이 정도 사진에 파격이라는 낱말이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하늬는 새삼스럽다. 미스 유니버스에 출사표를 내던질 때부터 이하늬는 기존의 선배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 참가를 위해 고가의 옷을 수십 벌 장만했노라고 공공연히 밝혔던 미스 코리아가 또 있었던가.

그러나 TV 카메라 앞에서 이하늬의 화법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미스 유니버스라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게 그녀의 주장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과정이 사치가 아닌 수단과 전술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이하늬는 얼굴과 몸매만 되는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다. 우선 국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인 매력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미 몇 장의 음반을 발표한 경험이 있는데다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경험 역시 그녀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다.

게다가 미래에 UN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 역시 이하늬는 숨기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길, 현재의 목표 그리고 미래의 소망까지, 그 모든 것에 대해 너무도 열심히 '설명'한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진심'과 '열정'이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모건 프리먼은 특유의 침착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열정 하나만큼은 최고라고? 그런 놈들이 꼭 제일 먼저 떠나더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심, 그렇기에 더더욱 느껴지는 열정. 대한민국 대표가 아니였대도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이하늬를 응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점이 바로 이만수와 코치와의 공통점이다. 다소 황당무계한 그의 약속에는 이미 팬들의 격려와 성원을 애타게 기대하는 '진심'이 깔려 있었고,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또 거기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슈퍼스타 이만수를 만든 원동력이다.

선수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팬이라면, 그리고 홈페이지를 통해 그의 미국 생활 소식을 접한 팬이라면, 이만수 코치가 약속을 이행하리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약속은 '정말 팬티 바람'이냐가 아니라 '그날이 언제일까'가 문제였다. 결국 그의 진심과 열정이 팬心을 움직였고, 이만수 코치는 기꺼이 팬티 바람으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 SK 와이번스

야구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여전히 아쉬울 때가 많다. 물론 좋은 경기를 펼치면 더 많은 팬들이 야구장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팬들을 끌어 모을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게 팬들을 '진심'으로 원하고, 더 많은 관중이 야구장을 찾게 하고픈 '열정‘이 있다면 당연히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팬티 바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여태껏 팬들의 발걸음이 야구장을 향하게 만들기 위해 이렇게 애쓴 관계자가 또 있었는가. 왜 야구장은 야구가 아니어도 재미있는 공간이면 안 되는가. 미국, 일본과 시장 환경이 달라서 우리는 정말 안 되는가.

이만수 코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프로야구는 팬이 있어야 살 수 있고, 팬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그 무엇을 해냈다. 결과는 너무나도 대성공. 야구가 아니라도 야구장이 재미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포츠 시장에서도 얼마든 관중을 불러모을 새로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이만수 코치는 너무도 멋지게 행동으로 증명했다.

현대그룹의 故 정주영 前회장 남긴 가장 유명한 말은 이것이다. "해보긴 해봤어?" 프로야구의 인기 부흥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고 꿈을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필요한 말이 또 있을까. 아니, 우리 오늘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해보긴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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