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메이저리그 11년차 세르히로 로모(35·탬파베이·사진 오른쪽)에게 2018년은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겁니다. 연달아 각종 데뷔 이후 첫 경험을 쌓아가고 있으니까요.


로모는 뉴욕 양키스를 불러들여 치른 25일(이하 현지시간) 안방 경기 때 생애 처음으로 야수(3루수)로 출전했습니다. 네, 로모는 원래 투수, 그것도 주로 마무리나 셋업맨을 맡는 구원 투수입니다.


그런데 5월 19일에는 생애 처음으로 선발 등판을 경험했습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588 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한 다음이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튿날(5월 20일)에는, 첫 선발 등판으로부터 19시간 만에 생애 두 번째 선발 등판도 경험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날 경기 때 공을 몇 개 던지지 않은 상태에서 퇴장을 당하거나 비가 오래 내려 마운드에서 물러난 경우가 아닌데도 이틀 연속 선발 등판한 건 1980년 4월 14일그 다음 날 스티브 맥캐티(64·당시 오클랜드) 이후 로모가 38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67일이 지나 생애 첫 야수 출전 경험도 하게 된 겁니다.사실 이날 로모의 첫 포지션은 (당연히) 투수였습니다. 로모는 팀이 3-1로 앞선 8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해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준 다음 이닝을 마감했습니다.


탬파베이가 8회말에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양키스가 9회초 공격을 시작할 때 점수는 계속 3-2였습니다. 이때 케빈 캐시 탬파베이 감독(41)은 로모 대신 조니 벤터스(33)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이럴 때 앞선 투수는 더그아웃으로 물러나는 게 보통이지만 로모는 3루수 자리로 나갔습니다.


이유는? 양키스 타석에 왼손 타자 그레그 버드(26)가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오른손 투수 로모를 대신해 왼손 투수 벤터스가 버드를 상대하게 한 겁니다. 버드가 2루 땅볼로 물러나자 캐시 감독은 로모를 다시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러니까 로모는 이날 투수 → 3루수 → 투수로 포지션을 바꿨습니다.



동아일보에서는 이 내용을 전하면서 "메이저리그(MLB)에서 고교야구에서 볼 법한 변칙 기용이 나왔다"며 "이번 시즌 MLB에서는 경기 막판 야수의 깜짝 투수 등판은 종종 있었지만 투수의 야수 전환은 로모가 처음"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일단 탬파베이만 해도 호세 알바라도(23)가 6월 26일 경기 때 투수 → 1루수 → 투수로 포지션을 바꾼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6월 13일에는 시카고 컵스 투수 두 명이 한 이닝에 좌익수로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네, 한 이닝에 투수 두 명 맞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컵스는 이날 안방 팀 밀워키에 1-0으로 앞선 채 8회말 수비에 들어갔습니다. 컵스 마운드에는 오른손 투수 스티브 시섹(32)이 나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밀워키 선두 타자 올란도 아르시아(24)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조 매든 컵스 감독(64)은 왼손 투수 브라이언 듀엔싱(35)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다음 타석이 왼손 타자 에릭 테임즈(32)였거든요. 이때 시섹은 경기에서 빠지는 게 아니라 좌익수로 수비 위치를 바꿨습니다. 


듀엔싱이 테임즈를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매든 감독이 다시 그라운드 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시섹과 듀엔싱이 서로 자리를 바꿀 것이라고 심판에게 전달했습니다. 듀엔싱이 좌익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대신 시섹이 다시 마운드 위에 서게 된 것. 시섹은 오른손 타자 로렌조 케인(32)에게 2루 땅볼을 빼앗았고 1루 주자였던 아르시아가 2루에서 아웃 당했습니다.


이번에도 매든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다시 듀엔싱을 마운드로 불렀습니다. 시섹은 다시 외야로 나가는 대신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윌슨 콘트레라스(26)가 좌익수로 나갔습니다. 듀엔싱이 크리스티안 옐리치(27)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이닝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2014년까지 탬파베이 지휘봉을 잡았던 매든 감독은 연장 15회까지 갔던 2016년 6월 28일 경기 때는 투수 세 명을 좌익수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아, 넓은 의미에서는 로스앤젤레스(LA) 에인절스도 계속 투수를 야수로 기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니도류(二刀流)'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4)가 투수와 타자를 오가면서 뛰고 있으니까요.


물론 선수 기용은 감독 고유 권한입니다. 그리고 스포츠에서 묘수와 꼼수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역시 승패일 터. 일단 LA 에인절스를 제외하면 올해는 투수를 야수로 기용한 세 경기 모두 이겼으니 묘수였다고 평가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한국 프로야구에서 같은 사례가 나온 건 2007년 5월 23일이 마지막입니다. 당시 SK를 이끌던 김성근 감독은 조웅천(47·현 두산 코치)을 투수 → 좌익수 → 투수로 기용했습니다. 당시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 올해 이날 현재까지 야수를 투수로 기용한 경험이 있는 건 전체 30개 팀 가운데 22개 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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