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정말 베이스 루스(1895~1948)가 대단하기는 대단한 모양입니다.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 언론이 줄줄이 오보를 내게 만드니까요.


발단은 '추추 트레인' 추신수(36·텍사스)가 15일(한국시간) 50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추신수는 이날 볼티모어 방문 경기에서 1회초 첫 타석에서 선두 타자 볼넷을 얻어내며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그러자 한국 언론에서 '베이스 루스와 어깨 나란히' 같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 경기를 생중계한 MBC스포츠플러스에서도 그렇게 자막을 내보냈고,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 역시 이런 내용을 담은 그래픽(사진)을 만들어 띄웠습니다. '1등 인터넷뉴스'를 표방하는 조선닷컴 역시 이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일단 루스 개인 최다 연속 출루 기록은 50경기가 아니라 51경기입니다. 이건 베이스볼레퍼런스만 확인해도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한두 매체에서 실수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문제는 연합뉴스가 잘못 보도했다는 데서 시작했을 겁니다. 이제는 많은 분들이 그냥 인터넷 매체처럼 생각하시겠지만 연합뉴스는 원래 '언론사를 위한 언론사'가 제일 중요한 기능이니까요. (연합뉴스에서는 결국 이날 오후 9시 58분 "베이스 루스의 연속 경기 출루는 '51 경기'"라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게다가 51경기가 이 부문 역대 기록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루스가 이 부문 기록 보유자가 아닙니다.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84경기로 역대 최다 연속 경기 출루 기록 보유자고 그다음에도 37명이 루스보다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제일 큰 이유는 사실 연속 경기 출루가 그렇게 아주 썩 대단한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속 경기 안타는 아예 따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야구 규칙 어디에도 어떨 때는 이 기록을 이을 수 있고, 어떨 때는 끊어야 하는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관심도 덜 받습니다. 2017년 김태균(36·한화)이 윌리엄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때 쓴 글에서 인용하면: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은 오래 묵혀 있기도 했습니다. 조 디마지오(1914~1999)가 1941년 56경기 연속 안타를 때렸다는 건 메이저리그 상식 퀴즈에도 곧잘 등장하는 사실이지만 윌리엄스가 84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는 건 2003년 아마추어 연구자들이 알아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이치로(44·현 플로리다)가 아니라 린즈셩(林智勝·35)이 이 부분 아시아 기록 보유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도 꼭 대만 프로야구를 무시해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겁니다. (참고로 마이너리그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은 74경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야후 스포츠'에서 바로 오늘 집중 조명한 기사 정도를 제외하면 태평양 건너편에서 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기자가 참고할 만한 '소스'가 별로 없었습니다. (이럴 때 인터넷 매체에서는 당장 이 기사부터 번역하는 게 급선무일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뉴스가 무려 '베이브 루스와 나란히'라는 야마(山·주제)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렇게 '섹시한' 폭탄에 (판단력이) 녹아 내리지 않은 테스크가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어쩌면 아마 '연합(뉴스) 애들은 바보냐? 걔네라고 왜 확인 안 하고 썼겠어? 일단 써'라고 이야기한 데스크도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이 이번 한번만 있던 것도 아니겠죠. 쌓이고 쌓여서 기자도 일단 데스크 지시를 따르게 됐을 겁니다.


제가 처음 기자 명함을 갖게 됐을 때 그 전부터 제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스포츠) 기자 한 분은 "독자(시청자)는 설득할 수 있는데 데스크를 설득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더랬습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데스크를 설득해야 할 때 난도(難度)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물론 '그래서 모든 건 데스크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닙니다. 뭔가 시스템이 어딘가 구멍이 난 것 같은데 찾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남이 쓰면 꼭 그렇게 빨리 일단 베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요즘 야구 담당 기자가 아닌 탓에 속보(續報)에 취약합니다. 루스가 야마로 튀어나오게 된 과정이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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