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흰 코끼리가 수명을 다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호상(好喪)'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레거시(유산)까지 바꾸기는 역시 무리였을 터. 2018 평창 겨울 올림픽이 끝난 뒤 첫 번째 양심고백자가 나왔습니다. 주인공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국가대표 출신 김마그너스(20·사진).


김마그너스는 17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자기 소속사 브리온컴퍼니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8~2019시즌부터 노르웨이협회 선수로 등록해 국제대회에 출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15년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뛴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두 나라 국적을 모두 유지하고 있습니다. 


김마그너스는 "한국 대표를 그만두고 노르웨이 선수로 뛰기로 한 것은 선수로 더 발전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면서 "한국에서 선수로 뛰면서 (대한스키)협회와 신뢰에도 문제가 있었고 운동에만 전념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제가 한국 선수로 뛰면서 점점 좋아지는 것이 보이면 앞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겠지만 그런 부분이 없었고 제 미래를 걸고 뛰기엔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얼핏 생각해도 스키협회에서 김마그너스가 원하는 만큼 케어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현재 스키협회장 이름은 신동빈입니다. 네, 롯데 그룹 그 신 회장 맞습니다. 설명이 더 필요하신지… 게다가 김마그너스가 스키 전체를 통틀어 최고 스타였던 만큼 원하는 게 많았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합니다. 김마그너스는 "사전에 없었던 조항 등 의무적인 것들이 계속 튀어나왔다. 노르웨이에서 생활하고 코치도 노르웨이 사람들이라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운동에 몰두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스물 둘이 되면 문을 닫는다.

게다가 언제 결정해도 결정했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한국 국적법에 따라 만 22세가 지나면 그는 노르웨이와 한국 국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2022년에 열리는 베이징(北京) 올림픽 때까지 이중국적을 유지할 수 없는 것.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 제41조 역시 한 나라 국가대표였던 선수가 국적을 바꿔 다른 나라 대표가 되려면 최소 3년은 지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A competitor who has represented one country in the Olympic Games, in continental or regional games or in world or regional championships recognised by the relevant IF, and who has changed his nationality or acquired a new nationality, may participate in the Olympic Games to represent his new country provided that at least three years have passed since the competitor last represented his former country. (여기서 IF는 the International Federations 약자입니다.)


김마그너스는 2016년 릴레함메르 겨울유스올림픽에서 한국 스키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10㎞ 프리스타일)을 땄고, 이듬해 삿포로(札幌) 겨울아시아경기 때도 한국 남자 크로스컨트리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평창 때도 기대가 컸던 게 당연한 일. 그러나 그는 1.4㎞ 스프린트 클래식에서 80명 중 49위로 예선 탈락했고, 15㎞ 프리 45위, 50㎞ 매스스타트 47위에 그쳤습니다.


평창에서 이 종목 1위를 차지한 건 (역시나) 노르웨이였습니다. 노르웨이는 이 대회서 전체 금메달 12개 중 7개를 따낸 데 이어 은메달 4개, 동메달 3개가 가져갔습니다. 특히 요하네스 클레보(22)는 개인 및 팀 스프린트, 40㎞ 계주에서 3관왕을 차지했습니다. 평창 올림픽 당시 김마그너스는 "(클레보는) 주니어 때 저랑 기량이 비슷했던 선수"라며 "제가 두 살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어떤 나라가 어떤 종목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건 그만큼 대표선수가 되기 힘들다는 뜻.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 선수로 뛰어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선수로서 발전하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세계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 결정하는 일이니 사람들이 잘 이해해주길 바란다. 좋은 모습으로 성공해 보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김마그너스는 노르웨이에서 바이애슬론 선수도 병행할 계획입니다.


자기 의견을 충분히 전달했으니 '처세'가 등장할 차례. 6월 30일까지 부산체육회와 계약을 맺고 있는 김마그너스는 "선수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선에서 한국 스키 발전에 이바지하겠다. 부산팀과 계속 교류하고 여름 훈련으로 한국 선수들을 노르웨이에 초청해 노르웨이 스키문화를 가르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머지 귀화 선수 19명 운명은?

김마그너스는 이날 "나는 귀화선수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스키협회의 귀화 프로젝트(대상)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사실상 귀화선수'로 본다고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만약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지 않았다면 노르웨이에서 바이애슬론 선수로 변신할 준비를 하던 그에게 태극마크를 달자고 설득하는 일이 일어났을 확률은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김마그너스를 제외해도 귀화 선수 총 19명이 태극마크를 달고 평창 올림픽 무대를 누볐습니다. 아이스하키가 10명으로 제일 많았고 이어 △바이애슬론 4명 △스키 2명 △아이스댄스 △루지 각 1명 순이었습니다. 19명은 전체 출전 선수(144명) 가운데 13.2%에 해당합니다.


이는 대회 전체 평균 귀화 비율(6.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숫자. 2014년 소치 대회 때는 화교 출신인 공상정(22·쇼트트랙)이 한국 대표 선수 가운데 유일한 귀화 선수였습니다.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쪽 팔리지 않으려고'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증거.


과연 앞으로도 이들에게 평창을 앞두고 그랬던 것처럼 계속 지원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닌데도 이들이 계속 한국 국적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뭐가 있을까요? 독일 출신 한국 루지 국가대표 아일렌 프리슈(24·사진)는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한국 루지 발전을 위해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정보를 전수하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 말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과연 힘을 보탤 곳이 계속 남아 있기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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