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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KBO

선동열을 위한 변명


KIA의 서정환 감독은 롯데와의 더블헤더에 앞서 지난 토요일(9월 30일) 벌어진 삼성과 두산간의 경기 결과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선동열 감독이 '져주기 경기'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사실 5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은 선발 임동규를 너무 일찍 내렸고, 좌타자가 줄줄이 등장하는 타순을 상대하면서 '옆구리' 박석진을 계속해 고집한 건 확실히 의심을 살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1일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보기에 따라 삼성 선수들이 태업을 한다는 인상을 주는 플레이가 몇 차례 나왔다. 이를 가지고 오승환의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을 만들어주기 위한 '미필적 고의'라는 주장이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것 역시 사실이다. 게다가 오승환을 곧바로 올리지 않고, 권오준을 먼저 마운드에 올려 단 한 타자만을 상대하게 한 것 역시 의혹을 증폭시킨다. 권오준에게도 홀드를 안겨주기 위한 선동열 감독의 '꼼수'라는 얘기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지난달 29일 현대가 한화에 패함으로써 삼성은 이미 정규 시즌 1위를 확정했다. 말하자면 두산과의 경기에서 패한다고 해도 삼성으로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굳이 권오준-오승환을 가동시킬 이유는 없었다. 더욱이 바로 다음날부터 현대와의 최종 점검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KO펀치를 아끼는 것과 동시에 한국 시리즈에 대비해 좌타자를 상대로한 박석진의 능력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비록 이 실험이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져주기' 운운하는 건 비약이라고 느껴진다.

오승환의 세이브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타이밍상 병살로 연결되는 분위기에서 1루수 조영훈이 볼을 떨어뜨린 건 맞다. 하지만 송구 자체가 원바운드로 들어왔기에 고의로 보기는 어렵다. 유한준의 3루 땅볼 타구 역시 바운드가 컸다. 조동찬이 잘 잡기는 했지만 발빠른 유한준은 이미 1루에 거의 도착한 상황이었다. 주자가 루상에 있는 상태라면 굳이 공을 던질 필요가 없는 분위기였다. 완벽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그랬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이때 권오준과 오승환 모두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상황이 정말 다급했다면 오승환을 먼저 올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만루라고는 해도 5점 차이로 삼성이 앞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오승환에게 몸을 만들 충분한 여유를 주기 위해 권오준을 올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수순이었다. 그리고 기대대로 권오준은 깔끔하게 이택근을 땅볼로 돌려세우고 마운드를 오승환에게 넘겼다. 밖에서 보기엔 의심스러울지 몰라도, 분명 삼성의 불펜 운영만 놓고 보자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물론 진실은 선동열 감독 본인만이 알고 있다. 실제로 상대전적에서 뒤진 KIA 대신 두산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오승환에게 아시아 세이브 기록을 세울 기회를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러 싹쓸이 3루타를 맞으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박석진을 효율적으로 공략한 강동우를 칭찬해 할 일이지 선동열 감독을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 날의 승리는 확실히 승리의 대한 집녑을 포기하지 않은 두산 선수들의 공이었다. 게다가 2위도 아닌 4위 팀을 일부러 1위팀 감독이 고를 이유도 전혀 없다.

수원 경기도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마찬가지로 전근표가 오승환을 상대로 싹쓸이 3루타를 터트렸다면 오승환의 세이브 기회는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효율적인 투구'를 하지 못한 투수는 경기를 마무리 짓는다 해도 세이브를 기록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시아 세이브 신기록이라는 것부터 그 자체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만 통하는 아시아 신기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니까 기록 만들기는 오히려 언론에서 부추겼다는 얘기다.

결과만 가지고 과정을 판단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과를 통해 과정을 유추하고 결정권을 쥐고 있던 감독을 비난하고는 한다. 사실 그 어느 감독도 이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관점은 대상에 앞선다. 그렇게 보고자 하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선동열 감독은 정규 시즌 1위 팀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남들 눈이 무서워 '승자의 여유'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선동열 감독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승리를 만끽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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