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공격 시도 과정에서 상대 블로킹 벽을 마주하게 된 현대캐피탈 문성민(32·오른쪽)


적어도 너무 적습니다. '쳐내기' 득점이 참 적다는 말씀입니다. 프로배구 2017~2018 도드람 V리그 남자부 정규리그 챔피언 자리를 차지한 현대캐피탈 이야기입니다. 


현대캐피탈은 1일 현재 쳐내기로 508점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최소 2위 대한항공은 이보다 109점 많은 617점입니다.


점수만 적은 게 아닙니다. 남자부 전체 공격 득점 중 쳐내기는 53.6%. 현대캐피탈은 이 기록이 45.2%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역시 최저 기록. 이번에도 대한항공이 49.2%로 뒤에서 두 번째입니다.


(배구에서 굳이 '공격 득점'이라고 표현하면 '수비 득점도 있나?'하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장난하냐고요? 실제로 이런 분을 만난 적이 있기에 이 단락을 쓰고 있습니다. 배구에서 공격 득점은 블로킹 득점, 서브 득점 등과 구분하는 표현입니다. 수비 득점이 있어서 공격 득점이라고 따로 쓰는 건 아닙니다.)


쳐내기는 상대 블로킹을 역이용해 득점하는 기술을 가리킵니다(아래 GIF 참조). 아나운서나 해설자에 따라서는 '블록(트) 아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선수별로는 위 그림에서 쳐내기에 성공한 한국전력 펠리페(30·브라질)와 그 공을 끝까지 쫓아간 우리카드 파다르(22·헝가리)가 나란히 쳐내기로 344점을 기록해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캐피탈에서 쳐내기 득점이 가장 많은 선수는 문성민으로 179점(8위)입니다. 각 팀 주 공격수로 활약하는 외국인 선수는 물론 삼성화재 박철우(33·262점·6위), 한국전력 전광인(27·206점·7위)보다 낮은 기록입니다. 현대캐피탈 안드레아스(29·그리스)는 외국인 선수 주제(?)에 쳐내기로 152점(10위)밖에 못 올렸습니다. 문성민과 안드레아스 사이에 있는 선수는 쳐내기로 175점을 올린 OK저축은행 송명근(25).


쳐내기는 상대 블로킹을 뚫어냈다는 증표. 반대 사례는 아래 GIF처럼 상대 블로킹에 '찍히거나' 아니면 그냥 '홈런'을 치는 게 될 겁니다. 이럴 때는 상대 팀에 점수를 내주게 됩니다.



그러면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상대 블로킹벽 앞에서 주눅이 들었던 걸까요? 그렇게 보기는 힘듭니다. 현대캐피탈은 전체 공격 시도 중에서 상대 블로킹에 당한 비율(7.6%)도 가장 낮고, (어떤 이유로든) 공격 범실을 저지른 비율(7.5%)도 가장 낮으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정답은 '상대 블로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쳐내기에 성공하려면 상대 블로킹벽이 떠야 하는데 현대캐피탈 공격수는 다른 팀보다 블로커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남자부 리그 전체를 따져 보면 상대 블로커가 0명 또는 1명일 때 공격을 시도한 30.4%. 현대캐피탈은 이 비율이 39.1%로 리그 평균보다 28.6% 높았습니다.


▌구단별 상대 블로커 숫자별 공격 시도 비율

 상대 블로커 현대캐피탈 대한항공 OK저축은행 KB손해보험 우리카드 삼성화재 한국전력
 0명+1명 39.1% 36.0% 34.0% 32.2% 27.4% 24.1% 20.8%
 0명 6.9% 6.2% 5.7% 6.5% 4.9% 5.1% 3.4%
 1명 32.2% 29.8% 28.4% 25.7% 22.5% 19.0% 17.4%
 2명 54.2% 57.3% 59.5% 58.6% 60.5% 58.2% 67.4%
 3명 6.7% 6.7% 6.5% 9.2% 12.1% 17.7% 11.8%


설마 상대 블로커 숫자가 적은 게 뭐가 좋은지 물어보시는 분은 아니 계시겠죠? 공격수는 상대 블로커 숫자가 적을수록 당연히 좀더 손쉽게 공격합니다. 상대 블로커가 0명 또는 1명일 때 공격 효율은 .345(공격 성공률 56.5%)지만 2명 이상일 때는 .293(48.2%)으로 내려갑니다. 현대캐피탈이 괜히 팀 공격 효율 1위(.374)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세터가 중요합니다. 위 표에서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세 팀은 노재욱(26·현대캐피탈·사진 오른쪽), 한선수(33·대한항공), 이민규(26·OK저축은행)라는 걸출한 세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KB손해보험 황택의(22)도 무시하기 힘든 세터. 나머지 세 팀은 세터 문제를 안고 있고 이 결과도 별로 좋지 않게 나왔습니다. 


현대캐피탈이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나온 기사를 있노라면 배구 기자단 사이에서는 신영석(32)이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부서 이동으로 올해 MVP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신영석이 MVP를 탄다고 해서 아주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이유로 노홍렬 아니 노재욱을 MVP로 추천합니다. 현대캐피탈이 2단 공격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팀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남자부도 세터 MVP 나올 때 되지 않았나요? (남녀부를 통틀어 센터 MVP가 없는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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