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 7월 1일은 '바비 보니야 데이'입니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바비 보니야(54·사진)가 뉴욕 메츠로부터 연봉 119만3248달러20센트(약 13억 6627만 원)를 받거든요. 보비야는 2001년 세인트루이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했고, 메츠에서 뛴 건 1999년이 마지막이지만 2035년까지는 메츠에서 해마다 꼬박꼬박 연봉을 받습니다.


1일(이하 한국시간) 현재 메츠 25인 로스터 중에서 12명은 보니야보다 올해 받는 연봉이 적습니다. 이들은 내일도 당장 메츠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뛸 수 있지만 보니야가 메츠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건 6481일 전입니다. 대관절 무슨 이유로 메츠는 보니야가 72세가 될 때까지 계속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걸까요?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중에는 보니야를 1998년 박찬호(44)와 LA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선수로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보니야는 1980년대 후반부터 피츠버그에서 나중에 통산 762홈런을 치는 배리 본즈(53)와 함께 'BB 타선'을 구축했던 강타자였습니다. 보니야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피츠버그에서 6년 동안 타율 .284, 114홈런, 500타점, OPS(출루율+장타력) .838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올스타로 네 차례 뽑혔고, 포지션별 최고 타자가 받는 실버슬러거도 세 번 탔습니다.


1991 시즌이 끝나고 그가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자 '빅 마켓 팀' 메츠가 움직였습니다. 메츠는 당시 역대 최고 금액이었던 2900만 달러(당시 약 219억 5300만 원)에 보니야와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보니야는 1993년 34홈런을 치는 등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선보였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팀 성적이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메츠는 1995년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보니야를 볼티모어로 트레이드했습니다.


보니야는 1996년까지 볼티모어에서 뛴 뒤 1997년 FA 자격을 얻어 플로리다(현 마이매이)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플로리다 지휘봉을 잡고 있던 게 보니야와 피츠버그 시절 함께 했던 짐 릴랜드 감독(73)이었다는 것도 계약에 영향을 줬을 겁니다. 플로리다는 그해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했지만 이듬해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불꽃 세일'에 나섭니다. 보니야는 이 과정에서 게리 셰필드(49·외야수), 찰스 존슨(46·포수) 등과 함께 다저스로 건너가게 됩니다.


이를 지켜보던 메츠 구단 수뇌부는 '아, 우리도 다시 보니야를 데려올 수 있겠구나'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메츠는 1998년 11월 12일 멜 로하스(50·투수)를 주는 조건으로 보니야를 다저스에서 트레이드 해옵니다. 참고로 저 멜 로하스의 아들이 현재 프로야구 kt에서 뛰는 외국인 타자 로하스(27). 이번에는 인연이 아니었습니다. 보니야는 1999년 메츠에서 60경기에 나서 타율 .160, 4홈런, 18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게다가 그해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NLCS) 때는 경기 도중 라커룸에서 리키 헨더슨(59)과 카드를 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메츠에서는 보니야를 방출하기로 결정합니다. 보니야가 플로리다하고 맺은 계약 기간이 1년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메츠에서 그를 방출하려면 590만 달러(당시 약 75억1070만 원)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만약 메츠에서 이때 이 돈을 보니야에게 줬더라면 2011년부터 25년간 총 2983만1205 달러(약 341억 5673만 원)을 줘야 할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메츠가 이런 선택을 내리지 못한 이유가 뭘까요?



근묵자흑 근주자적(近墨者黑 近朱者赤)

제일 큰 이유는 보니야의 에이전트 데니스 길버트(70·사진)가 생명보험 설계사 출신이었다는 것. 길버트는 짧은 마이너리거 생활을 마치고 바로 보험회사에 취적했다가 에이전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때문에 길버트는 다른 에이전트보다 은퇴연금(Annuity)에 밝았습니다.


보니야는 당시 "구단에서 나를 방출하리라는 걸 몰랐다면 내가 바보다. 또 이번 기회가 내가 목돈을 챙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도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과 딸 미래까지 생각하면 남은 생애 동안에도 현역 선수처럼 사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하여 보니야와 길버트는 메츠에게 이 590만 달러를 연 이율 8%에 10년 거치 25년 상환 방식으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메츠는 큰 고민 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길버트가 이런 제안을 한 게 처음도 아니었거든요. 길버트는 1991년 보니야를 메츠하고 연결시켜 줄 때도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50만 달러(약 5억 7250만 원)를 나눠 받는 내용을 계약서에 포함시켰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보니야는 이 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을 가장 많이 받는 선수가 됐습니다. 한번에 이 연봉을 전부 부담하려면 메츠도 부담스러운 점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이걸 간파한 길버트가 '그럼 나머지는 나중에 달라'고 메츠에 애기했고 이 제안을 메츠에서 받아들인 겁니다. 메츠에서 보니야를 볼티모어로 트레이드했기 때문에 이 돈은 볼티모어에서 부담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프레드 윌폰 메츠 구단주(81)버나드 매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회장(79)에게 투자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알게 된 거지만 매도프 전 회장은 사실 사기꾼이었습니다. 그는 2009년 윌폰 구단주,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감독(71) 등을 상대로 총 180억 달러(약 20조 6100억 원)를 사기친 죄로 미국 연방 법원에서 법정 최고형인 150년 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입니다. 


매도프는 폰지(Ponzi) 사기라는 걸 쳤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폰지 사기는 "실제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투자자들이 투자한 돈을 이용해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지급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고수익을 약속하고 투자자를 끌어 모든 다음 나중에 투자하는 사람 원금으로 앞사람 수익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 수법이 바로 폰지 사기입니다.


매도프 전 회장은 윌폰 구단주에게 연 수익률 12~15%를 약속했습니다. 보니야에게 1년에 이자 8%를 더 붙여 준다고 하더라도 바로 돈을 주는 것보다 매도프 전 회장에게 투자하는 게 이득이었던 겁니다. 2035년까지 수익률 10%만 기록해도 윌폰 회장은 보니야에게 줄 돈 다 주고도 4900만 달러(약 561억 500만 원)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결과는 '꽝'이었습니다.



메츠는 손해만 봤을까

그러면 이 계약으로 메츠는 손해만 봤을까요? 메츠는 2000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왼손 투수 마이크 햄턴(45)을 휴스턴에서 트레이드 해옵니다. 햄턴은 2000년 연봉으로 575만 달러(당시 약 73억1975만 원)를 받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금액이죠?


엄밀히 말하자면 햄턴을 데려온 건 1999년 12월 24일이고, 보니야를 방출한 건 이듬해 1월 4일이라 순서가 뒤바뀐 건 사실. 그래도 '연금 협상과정'까지 감안하면 메츠에서 보니야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을 햄턴에게 썼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1999년 22승 4패,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했던 햄턴은 2000년 정규 시즌에서는 15승 10패, 평균자책점 3.14로 성적이 다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해 NLCS에서는 두 경기에 선발 등판해 1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혔습니다. 비록 양키스에 1승 4패로 밀려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이해 메츠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00년을 마무리한 뒤 FA 자격을 얻은 햄턴은 메츠를 떠나 콜로라도와 계약했습니다. 당시 메이저리그 단체협약(CBA)은 A 타입 FA를 놓친 팀에게는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1라운드와 2라운드 사이에 '샌드위치 픽'으로 신인 선수를 추가 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메츠가 이 지명권으로 선발한 선수가 바로 데이비드 라이트(35·사진)입니다. 


라이트는 양키스에 데릭 지터(43·은퇴)가 있다면 메츠에는 라이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메츠를 대표하는 선수입니다. 2004년 메츠에 데뷔한 라이트는 현재 안타(1777개), 2루타(390개), 총루타(2665루타), 볼넷(761개), 몸에 맞는 공(41개), 타점(970점), 득점(946점), 희생플라이(59개) 등에서 팀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보니야가 메츠에 아주 나쁜 짓만 하고 떠난 건 아닙니다. 피천득 선생(1910~2007)은 수필 '인연(因緣)'에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보니야하고 두 번 만난 메츠는 어땠을까요? 두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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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23 17:2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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