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강원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여자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남북한 선수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이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시끄럽습니다. 네, 정말 실수라고 믿습니다. 이게 실수가 아니라면 시인이 하기에는 너무 멍청하고, 잔인한 소리거든요. 


도 장관은 20일 강원 평창군 올림픽 플라자를 찾은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대한체육회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도 장관이 자기들하고 상의도 하지 않고 폭탄 선언을 한 셈이 됐으니까요.


남북한 단일팀을 만들겠다는 게 잘못이냐고요? 아닙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IOC와 상의도 하겠다는 데 무슨 문제냐고요? 네, 그것도 잘하는 일입니다. 


또 이리저리 냉정하게 살펴 봐도 남북한 단일팀을 꾸리려고 할 때 가능성이 남아 있는 종목이 여자 아이스하키밖에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 평창 올림픽 때 정말 남북한 단일팀을 만들겠다면 여자 아이스하키가 제격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저걸 실수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요? 가능성이 남아 있기만 한 거지 100% 확실한 건 아니니까요. 게다가 순서가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습니다. 늦어도 너무 늦었고요.


도 장관이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 하는 곳은 평창 올림픽 출전 팀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IHHF입니다. IOC는 올림픽 자체를 조직하고는 거고, 올림픽 때 각 종목 진행은 해당 종목 협회(연맹)에서 맡습니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 예선에 아예 출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팀이 '남북한 화합'이라는 차원에서 올림픽에 참가해도 괜찮은가요? 물론 IOC에서 출전을 허락하라고 권유할 수 있는 있겠죠.


만약 IHHF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북한 팀 출전을 허락한다면 한국 선수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굳이 영화 '국가대표 2'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평창만 보고 달려온 팀입니다. 누구는 명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아이스하키 매력에 빠져서 자비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고, 누구는 '어머니 나라'에 하키를 알리고 싶어 낯선 한국 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표 선수 생활을 하느라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학교에 대한 추억이 아예 없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현재뿐입니다. 한국은 평창 때는 개최국 자격으로 올림픽 본선에 자동진출했지만 2022 베이징(北京) 올림픽에 나갈 확률은 사실상 제로(0)에 가깝습니다. 단일팀 구성은 이런 선수들에게 올림픽이라는 꿈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행위입니다.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하려면 전체 엔트리 23명 중에 10자리 정도는 북한에 내줘야 할 테니까요. 국가에서 '큰 일'을 하면 개인은 당연히 자기 권리를 포기해야 하나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한수진(30)은 "전력 향상을 위한 단일팀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단일팀을 만들자고 희생하는 선수가 있다면 그 부분이 안타까울 것 같다. 개인 기량이나 팀 분위기나 우가 확실히 북한보다 좋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리는 지금 한창 기량이 올라온 상태인데 그런 선수들을 제외하고 우리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온다고 하면 올림픽 1승에 대한 꿈이나 목표에도 지장이 있지 있을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도 장관은 "IOC에 남북한 단일 팀은 엔트리를 늘려달라고 부탁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아이스하키를 잘 몰라서 실수를 하신 거라고 믿습니다. 아이스하키는 공격수 3명, 수비수 2명, 골리(골키퍼) 1명 등 총 6명이 한 팀입니다. 그런데 체력 소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보통은 공격수 3명과 수비수 2명이 한 조를 이뤄 경기를 나눠 뜁니다. 1조가 지치면 2조가 들어가고, 2조가 지치면 다시 3조가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경우에 따라 조를 섞어서 뛰기도 합니다. 그러니 특정 팀이 엔트리가 늘어난다는 건 엄청난 특혜입니다.  


물론 한국 선수들에게 확인할 때도 장관이나 문체부에서 직접 하라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대한체육회와 대한아이스하키협회를 거쳐야죠. IOC 올림픽 헌장은 제6조 1항은 "올림픽 경기는 개인 또는 팀 간 경쟁일 뿐 국가 간 경쟁이 아니다(The Olympic Games are competitions between athletes in individual or team events and not between countries)"고 못박고 있으니까요.


이 조항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할 선수는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에서 선발하며, 각국 엔트리는 IOC 승인을 거쳐야 한다( They bring together the athletes selected by their respective NOCs, whose entries have been accepted by the IOC)"로 이어집니다. 한국에서는 2009년 6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완전 통합했기 때문에 대한체육회에 올림픽에 내보낼 선수를 선택할 권한이 있습니다.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선발 권한을 대한아이스협회 같은 회원 종목 단체에 위임한 상태입니다. 대한체육회 국가대표 선발 규정에는 "국가대표선수는 회원종목단체가 사전에 정한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라 위원회에서 선발함을 원칙으로 하며, 선발일정 등 세부내용은 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문체부에서 한국 선수들이 동의하는 과정까지 모두 마쳤을 때만 도 장관이 언론에 "IOC와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겁니다. 


선수들이 끝까지 양보하지 못하겠다면 정부는 뜻을 접는 게 맞습니다. 원래 올림픽에는 정부 기관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안 됩니다. 올림픽 헌장 제27조 9항은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는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IOC 이사회에서 정부가 NOC 활동에 지나치게 관여한다고 판단하면 NOC를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Apart from the measures and sanctions provided in the case of infringement of the Olympic Charter, the IOC Executive Board may take any appropriate decisions for the protection of the Olympic Movement in the country of an NOC, including suspension of or withdrawal of recognition from such NOC if the constitution, law or other regulations in force in the country concerned, or any act by any governmental or other body causes the activity of the NOC or the making or expression of its will to be hampered. The IOC Executive Board shall offer such NOC an opportunity to be heard before any such decision is taken.


물론 대한체육회가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건 맞습니다. 그러니까 지시 혹은 통보가 아니라 '협의'할 권한이 있는 겁니다. 대한체육회가 국민생활체육회와 통합해 통합 대한체육회를 만들 때 IOC에서 "정관에 문체부에서 승인 받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수정해 달라"고 권고했던 건 이제 모두 다 잊은 건가요? 


통합 대한체육회 정관 제2조④는 "체육회는 자율성을 유지하여야 하며, 올림픽헌장의 준수를 저해할 수 있는 정치적, 법적, 종교적 또는 경제적 압력을 비롯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에도 같은 똑같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The NOCs must preserve their autonomy and resist all pressures of any kind, including but not limited to political, legal, religious or economic pressures which may prevent them from complying with the Olympic Charter.


물론 저는 남북한 단일팀을 꾸리겠다는 게 '정치적 압력'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사전에 상의했어야 할 대상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도 모자라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면 그건 정치적 압력입니다.


최순실 덕에 유행한 '농단(壟斷 또는 隴斷)'이라는 낱말은 원래 높은 단상이라는 뜻입니다. 그 단상에 혼자 올라 이익과 권한을 독차지하는 게 바로 농단입니다. 도 장관은 시인 시절 '담쟁이'에 "저것은 벽/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썼습니다. 혹시 도 장관 본인이 높은 벽에 올랐는데 실수로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오는' 담쟁이를 짓밟은 건 아닐까요?


네, 아닐 거라고 믿습니다. 처음 쓴 것처럼 그냥 잘 몰라서 말실수를 하신 것뿐 실제로 저런 일을 추진하려고 하실 리가 없습니다. 만에 하나 도 장관이 단일팀 성사라는 어쩔 수 없는 벽을 기어이 오르겠다고 마음먹으셨다면? 아, 이건 정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입니다. 


시가 어울리는 영역과 산문이 더 잘 어울리는 영역이 따로 있는 법. 올림픽에서 시가 필요할 때가 차고 넘치지만 개최국 주무 자오관으로 올림픽을 준비할 때는 산문이 더 어울리는 법입니다. 남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라는 말은 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는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몰라도 현은 그것과 거리가 멉니다. 


도 장관님, 제발 이번에는 낭만적인 시인 말고 냉철한 장관이 되십시오. 장관님 대표 산문집 제목이 '사람이 누구나 꽃이다' 아닙니까. 저 포에틱 저스티스가 한 가득한 제목처럼 제발 꽃을 꺾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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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창완 2017.07.16 21:46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논리 정연하고..당위성 있는. 사이다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