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일본 남자 배구 대표팀 야나기다 마사히로(柳田將洋·25·사진 왼쪽)가 독일 리그에 진출합니다. 22일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리그 산토리에서 뛰던 야나기다는 다음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잉거솔 유니폼을 입습니다. 잉거솔은 지난 시즌(2016~2017 시즌)을 11개 팀 중 7위로 마감한 분데스리가 중하위권 팀입니다.


2015~2016 시즌 일본 V.리그 남자부 신인왕 출신인 야나기다는 "대표 선수 경력을 제외하면 해외에서 배구를 해보는 게 처음이다. 처음에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느끼겠지만 배구 선수로서 좀더 성장하려면 해외 진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강점은 더욱 키우고 부족한 기술은 레벨업해 배구 자체를 보는 시야를 넓혀가고 싶다. 세련된 배구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야나기다는 배구 선수로서는 절대 큰 키(186㎝)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 이런 야나기다를 유럽 리그까지 진출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서브입니다. 일본에서는 야나기다의 스파이크 서브에 '빅 서브'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도 했습니다. 그가 서브를 키운 이유부터 키가 작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제가 배구 전문지 '더스파이크' 5월호에 쓴 원고를 읽어 보시죠.


지난 시즌 일본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 서브 효과율 1위(전체 3위)를 차지한 야나기다는 키가 186㎝밖에 되지 않는다. 야나기다는 일본 NHK 방송 인터뷰에서 "세계 무대에서는 (블로커) 위에서 코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블로킹에 방해 받지 않는 '빅 서브'를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일본 리그에서만 쓰는 서브 효과율은 상대 리시버가 아예 건드리지 못한 서브 에이스 등을 따로 빼 계산하는 기록입니다.


빅 서브가 일본에서만 통하는 건 아닙니다. 야나기다는 2017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남자배구대회 경기에서도 세트당 서브 에이스 0.51개로 2그룹 1위를 차지했습니다. 공격 성공률(58.3%)에서도 1위를 차지한 건 덤.


거꾸로 한국은 여태 배구 선수들 키를 늘리는 데만 신경 썼습니다. 키 큰 선수들만 찾아다닌 것. 실제로 효과가 전혀 없던 건 아닙니다. 프로배구 원년(2005) 남자부 선수 평균 키는 리베로를 제외하면 191.5㎝였는데 지난 시즌 193.3㎝로 1.8㎝ 커졌습니다. 이 2㎝도 안 되는 차이 때문에 배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 탓에 오히려 키 작은 선수에 대한 편견만 늘었는지도 모릅니다. 현대캐피탈 이시우(23·188㎝)는 원포인트 서버로 코트에 들어설 때마다 체육관을 들썩이게 만드는 주인공이지만 그가 대표팀은커녕 소속 팀에서도 주축 공격수로 자랄 거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키만 좀 더 컸더라면…'이라면서 입맛을 다실 뿐이죠. 신진식 현 삼성화재 감독(42)도 188㎝였다는 건 다들 잊은 모양입니다.


이번 월드리그 일본 대표팀에서 해외 리그 진출에 성공한 건 야나기다 혼자가 아닙니다. 이시카와 유키(石川祐希·22)는 이미 지난 시즌 이탈리아 1부 리그 라티나에 진출했습니다. 일본 추오(中央)대에 다니고 있는 이시카와는 원래 단기 유학 형식으로 라티나에 입단했는데 계약을 연장하면서 다음 시즌에도 계속 이탈리에 리그에서 뛰게 됐습니다. 레프트로 뛰는 이시카와 역시 키 192㎝로 배구 선수로서는 큰 키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이 두 선수는 이번 월드리그에서 일본을 2그룹 파이널 라운드(4강)까지 이끌었습니다. 당초 이번 일본 대표팀은 주전 라이트 쿠니히로 시미즈(淸水邦廣·31)가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해 성적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 대표팀에 첫선을 보인 이들이 이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가 월드리그 2그룹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한 건 올해 일본이 처음입니다. 꼭 2m만 이상이 즐비해야 배구를 잘하지는 않는 겁니다.


일본 V.리그는 아직 세미 프로 형태입니다. 외국인 선수가 뛰기는 하지만 실업리그에 가까운 것. 한국도 2001년 V코리아 세미프로리그 때 현대자동차(현 현대캐피탈)에서 길슨 베르나르두(등록명 길슨·49·현 산토리 감독)을 영입하며 국내 배구 외국인 선수 1호 기록을 세운 적이 있으니 세미 프로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가 뛰는 게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고요. 일본에서도 농구보다 프로화가 늦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확실히 한국보다 빨리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론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을 자국에서 개최하는 것도 영향을 줬습니다. 한국은 이 대회 본선에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조차 절반 정도는 포기한 상태. 그러니 이번 월드리그에서 22년 만에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하고도 통산 적전에서 72승 53패(승률 .576)으로 앞섰던 일본에 0-3으로 완패한 게 아주 놀랄 일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문성민(31·현대캐피탈·198㎝)이 2010년 터키 할크방크에서 돌아온 뒤로 해외 리그에 진출한 남자 배구 선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점점 더 한국식이라고 쓰고 몰방배구라고 읽는 배구 스타일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노릇. 과연 한국에서도 키 190㎝도 되지 않는 남자 배구 선수가 해외리그에 진출하는 걸 볼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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