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맥 없어요?

"기자님도 '빅맥' 하나 하시겠습니까. 제가 쏘겠습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저하고 선수촌 정문 앞에 있는 맥도날드 매장(사진) 앞에서 만난 한 국가대표 선수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말고도 저런 이야기를 들은 (한국) 기자가 적지 않을 겁니다.


출장비도 받았을 텐데 왜 올림픽 현장까지 가서 (가난한) 선수한테 얻어먹냐고요? "기자를 비롯해 다른 사람이 사면 돈을 내야 하는데 선수는 공짜니까"가 정답에 제일 가까울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빅맥을 맥도날드에서 만든다는 점. 올림픽 때는 선수용 AD카드가 있으면 맥도날드에서 원하는 메뉴가 무엇이든, 또 몇 개를 원하든 공짜로 먹을 수 있었거든요. 호주 배드민턴 대표 사완 세라싱히(23)는 자기 리우 올림픽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뒤 자기 인스타그램에 이런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Wow what a week it has been in Rio! Have to say I am disappointed about the match today. We definitely had a good chance to stretch the match to three sets toward the end of the second set but couldn't close it out. We would have loved to end our first Olympic campaign with a win against a much higher ranked pair. Although having said that, there are lots of good things to learn from the matches in the last three days playing against more experienced pairs. Can't wait to go back home to start training and keep on improving! Just want to say thanks again to everyone back home for the on going support. Definitely motivated me to fight hard on court everyday! ❤️ Now it's time to eat some junk food after months of eating clean! 😀

Sawan Serasinghe(@sawansera)님의 공유 게시물님,


공짜 앞에서는 이념을 따질 필요도 없는 법. 맥도날드는 코카콜라와 함께 '미제(美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브랜드. 그렇다고 북한 선수단이 이 공짜 맥도날드 매장을 냉정하게 지나친 건 아닙니다. 사진 맨 오른쪽에 있는 북한 대표팀 관계자가 뒷짐까지 지고 있는 걸 보면 한두 번 줄을 선 게 아닌 거죠. 


하지만 앞으로 올림픽에서는 맥도날드를 이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는 선수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아니, 올림픽에서 아예 맥도날드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올림픽에서 맥도날드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6일(현지시간) "상호합의에 따라 맥도날드가 올림픽 파트너(TOP·The Olympic Partner) 자격을 잃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IOC와 맥도날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41년간 이어온 인연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원래 맥도날드와 IOC는 2020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까지 계약이 된 상태였지만 3년 먼저 계약을 끝내기로 합의한 겁니다. 평창 올림픽 때 맥도날드는 TOP가 아니라 국내 스폰서(domestic sponsor) 자격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IOC는 "아직은 맥도날드를 대신할 (패스트푸드 부문) TOP를 선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TOP는 뭘까요?



그냥 올림픽 마케팅 말고 TOP

올림픽에는 사람이 아주 많이 모입니다. 기업에서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한 일. 아예 '올림픽 마케팅'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입니다. 보통은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 때 코카콜라가 선수들에게 음료를 제공하기 시작한 걸 올림픽 마케팅 효시로 칩니다. 


IOC가 본격적으로 올림픽 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운 건 '쇼 비즈니스' 천국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서 열린 1984년 대회를 경험 이후였습니다. 당시 LA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시(市) 정부로부터 거의 예산 지원을 받지 않았는데도 2억 달러(당시 약 1600억 원) 이상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기업 협찬 덕이었죠.  


이에 자극 받은 IOC는 이듬해(1985년) 3년 뒤 열리는 88 서울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스폰서'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합니다. 기업으로부터 기술적, 재정적 도움을 받는 대신 이들에게 올림픽 마케팅 독점권을 부여해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올림픽 스폰서가 1988년 나가노(長野) 겨울 대회 때부터 이름을 바꾼 게 TOP입니다.


올림픽 헌장 40조는 TOP와 대한체육회 같은 각 국가별 올림픽 위원회(NOC) 후원사가 아니면 올림픽을 주제로 마케팅을 벌이지 못하도록 못 박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 올리픽 스폰서가 아닌 회사는 올림픽 로고나 오륜기가 들어간 광고 등을 만들면 안 되는 걸 물론 올림픽을 상징하는 낱말을 마케팅에 활용해서도 안 됩니다. 올림픽 참가 선수를 평소에 후원하던 회사도 이 조항을 따라야 합니다. NOC 후원사는 물론 자국 내에서만 올림픽을 활용해 마케팅을 펼칠 수 있습니다. 또 TOP와 사업 영역이 겹치는 회사는 당연히 NOC를 후원할 수 없습니다. IOC에서 철저하게 TOP의 독점권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럼 어떤 회사가 TOP가 될까요? TOP가 되려면 일단 '실탄'이 충분해야 합니다. 리우 올림픽 당시 TOP 11개 회사(오른쪽 그림 참조)는 각 1억2000만 달러(약 1360억 8000만 원)를 IOC에 내고 4년간 TOP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 1억2000만 달러는 어디까지나 TOP '가입비'입니다. 이와 별도로 마케팅 비용도 부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별도 예산을 들여 리우 올림픽 참가 선수단 전원(약 1만2500 명)에게 '갤럭시 S7 엣지 올림픽 에디션'을 무상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돈만 낸다고 어떤 회사나 TOP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TOP는 한 분야에 한 기업만 지정하기 때문에 기술력도 필요합니다. 삼성전자와 파나소닉은 업종이 겹치지 않냐고요? 같은 전자 회사지만 삼성전자는 이동통신, 파나소닉은 TV를 비롯한 음향·영상(AV) 담당으로 분야가 다릅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도 가전이 아니라 에너지 분야 TOP입니다.


TOP 사이에서 '나와바리(繩張り) 침범'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리우 올림픽은 삼성전자에서 '삼성 기어 S3'를 출시하기 바로 전에 열렸지만 올림픽 때는 기어 S3 마케팅에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IOC에서 기어 S3 같은 스마트 워치를 '시계'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때 시계에 관한 독점적인 권리는 이미 오메가가 보유하고 있었으니 삼성전자로서도 별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거꾸로 TOP는 그만큼 자기 분야에서는 확실한 성공사례를 쓸 수 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대회 때부터 TOP로 참가하기 시작한 삼성전자도 그랬습니다. 글로벌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에 따르면 2000년 52억 달러(약 5조8916억 원)였던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 518억 달러(약 58조9160억 원)로 10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글로벌 순위도 2000년 43위에서 지난해 7위로 올랐습니다.


삼성전자만 이런 효과를 누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설문조사 결과 TOP는 "해당 분야 세계 최고 기업"이기에 "믿을 수 있는 회사"라는 평가를 받는 걸로 나타납니다. 또 TOP 회사는 "세계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습니다. 올림픽은 이미 검증받은 프로퍼티(property)입니다.



맥도날드는 왜?

맥도날드는 코카콜라와 함께 TOP를 대표하던 브랜드였습니다. 그랬떤 맥도날드가 이 명당 자리(?)를 내놓은 건 역시 올림픽 마케팅이 예전만큼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실비아 라그나도 맥도날드 글로벌마케팅최고책임자(CMO)는 TOP 자격을 내놓기로 결정한 데 대해 "글로벌 성장 계획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리우 올림픽 때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금메달리스트라고 평가할 만큼 성공적인 마케팅 성과를 올리고도 전체적은 매출 감소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맥도날드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이 패스트푸드 회사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매출액이 246억2200만 달러(약 27조9090억 원)로 전년 254억1300만 달러(약 28조8056억 원)보다 7억9100만 달러(약 8966억 원) 줄어들었습니다. 이로써 맥도날드는 3년 연속으로 매출이 줄었습니다.


▌2012~2016년 맥도널드 매출액(단위: 100만 달러)


맥도날드도 이를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스테픈 이스터브룩 맥도날드 최고경영자(CEO)는 리우 올림픽이 한창일 때 "올림픽이 맥도날드의 브랜드 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실실적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실제 결과도 예상대로 나왔으니 맥도날드로서는 TOP 자격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을 겁니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는 대표적인 '저관여(low involvement) 제품'입니다. 우리가 햄버거를 사먹을 때는 자동차를 살 때처럼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는 않습니다. 또 햄버거가 좀 맛이 없다고 해서 자동차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분노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특징을 보이는 제품을 저관여 제품이라고 합니다.


GE에서 여론 조사 담당 매니저로 일했던 허버트 E 크루그먼 박사는 1972년 미국광고주협회(ANA) TV 워크숍에서 저관여 제품은 최소 3회 이상 TV 광고 노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1965년 논문에서 TV 광고를 접한 소비자는 저관여 제품에 대해 강력한 신념이나 확고한 태도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보이고 들리는 대로 그 내용을 저장하고 수용한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크루그먼이 맞다면 맥도날드가 TOP 자격 유지에 돈을 쏟아 부어도 사람들이 TV를 통해 올림픽을 지켜보지 않으면 마케팅 효과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올림픽은 인기가 떨어졌습니다. 적어도 TV에서는 그랬습니다. NBC에서 미국 올림픽 중계 담당한 1988년 이후 지난해 리우 대회 때보다 평균 시청자가 적었던 건 2000년 시드니 대회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맥도날드로서는 올림픽에 투자해도 원하는 만큼 마케팅 성과를 얻기가 힘들다고 판단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1988년 이후 여름 올림픽 평균 시청자 숫자(단위: 100만 명) 


게다가 패스트푸드가 올림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맥도날드가 IOC와 '이혼'을 선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대 스포츠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패트릭 낼리 씨(70)는 "올림픽과 맥도날드 사이에는 더 이상 브랜드 연관성(relevance)이 없다고 보는 게 옳다. 올림픽 때마다 미디어에서는 비만 문제 등으로 왜 맥도날드가 IOC 대표 메뉴인지를 두고 비판의 폭풍(storm of criticism)이 휘몰아 치지 않았나.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면서 맥도날드도 결국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평창 - 도쿄 - 베이징


미국 시장만 놓고 보면 맥도날드만 올림픽하고 인연을 끊은 게 아닙니다. 32년간 미국 대표팀과 함께 올림픽 무대를 누빈 버드와이저 맥주도 올해 초 후원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또 시티(은행), 힐튼, AT&T, TD 애머리트레이드 같은 회사도 더 이상 올림픽 때 미국 대표팀을 후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이들이 올림픽 마케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건 역시 TV 시청자 숫자가 줄어든 게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물론 온라인 시청자가 늘어난 것 역시 TV 시청자가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도 리우 때 결과가 충격적인 건 미국 (동부) 시간하고 1시간 차이로 사실상 시차가 없는 지역에서 올림픽이 열렸는데도 시청자들 반응이 미지근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올림픽은 세 차례 연속해 동아시아에서 열린다는 것. 2018년 평창에서 겨울 대회를 치른 뒤 2020년 도쿄에서 여름 대회가 열립니다. 그다음 겨울 대회 개최 장소는 중국 베이징(北京)입니다. 동아시아는 미국 동부하고는 시간이 정반대. 미국에서는 이미 이 3개 나라와 비슷한 시간대에서 열린 시드니 대회 때 올림픽 시청자 숫자가 가장 적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도대체 미국 사람들이 올림픽을 보지 않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미국 국가대표 선수단은 리우 올림픽 때가지 겨울·여름올림픽을 합쳐 금메달을 총 1118개 가져갔습니다. 이는 전체 금메달 6065개 중에서 18.4%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전체 메달 1만8500개 중 15.1%(2802개) 역시 미국 차지였습니다.


게다가 유럽 쪽 역시 동아시아하고 시차가 잘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하고 유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시장이이라는 사실은 따로 통계가 필요 없는 일. 구미(歐美) 여러 기업에서 "당분간 올림픽 마케팅을 별 볼 일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놀랄 일이 아닙니다. 2024년에는 LA 혹은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을 치를 예정이니까 '총알'을 아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겁니다.


특히 전 세계적인 마케팅까지는 필요 없는 기업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IOC '올림픽 마케팅 팩트파일'에 따르면 TOP보다 국내 스폰서 마케팅 매출이 두 배 정도 많습니다. IOC에서는 각종 종목 조정 등을 통해 '올림픽은 여전히 매력적인 마케팅 무대가 될 것'이라며 이들을 설득하려 하고 있지만 오히려 TOP였던 맥도날드를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과연 올림픽에도 르네상스라는 게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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