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일본 프로야구 개막을 맞아 요코하마에서 제작한 포스터. 이제는 요코하마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이 모델로 출연했다. 왼쪽에 쓴 'すべてが変わる'는 '모든 게 변한다'는 뜻이다.


'투수 = 9번 타자'.


여전히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나 미국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는 선발 라인업을 짤 때 이런 공식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투수가 타격 실력이 제일 떨어지는 일이 많기 때문에 한 타석이라도 적게 들어서게 하려고 제일 마지막에 타석에 들어서게 만들었던 거죠.


특히 일본 쪽이 심했습니다. 21 세기 들어(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센트럴리그는 총 1만3278경기를 소화했습니다. 이 중 900경기는 교류전(인터리그)이라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한 상태로 열렸습니다. 나머지 1만2878경기에서 투수가 9번 타순에 들어선 게 99.8%(1만2580경기)였습니다. 28경기에서만 투수가 다른 타순(8번)에 들어섰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코하마(横浜)를 이끌고 있는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43)은 특이한 선택을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미레스 감독은 28일까지 21경기 연속으로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하고 있습니다. 4월 14일 경기 때도 선발 투수 조 위어랜즈(27)가 8번 타순에 들어섰기 때문에 라미레스 감독은 올해 현재까지 총 22경기에서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하고 있습니다. 21세기 들어 어떤 감독도 이렇게 많이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투수를 8번 타자에 기용한 작전은 성공을 거뒀을까요? 일단 팀 성적만 보면 그렇습니다. 요코하마는 이 21경기에서 11승 10패(승률 .524)를 기록했다. 그 이전까지 치른 25경기에서 거둔 11승 14패(.440)보다 나은 성적입니다. 전체 6개 팀 중 5위까지 내려갔던 순위도 4위로 올랐습니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라미레스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13년 동안 뛰면서 통산 타율 .301(2017안타), 379홈런, 1272타점을 기록한 강타자 출신입니다. 요미우리에서 뛰던 2008, 2009년에는 2년 연속으로 센트럴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요미우리에서 한솥밥을 먹던 이승엽(41)과 홈런을 치면 서로 축하하던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자주 잡혀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죠.


현역 시절 라미레스 감독은 자신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성공한 이유로 △일본 야구를 존경하고 △동료들을 많이 사귀고 △신물을 통해 상대 선수들 자료를 분석하는 것 등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투수를 8번 타순에 두는 것 역시 '분석 결과'일지 모릅니다. 내셔널리그에서는 상대적으로 투수가 8번 타순에 들어서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내셔널리그에서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조 매든 시카고 컵스 감독(63)입니다. 매든 감독은 올해 현재까지 35경기에서 선발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했습니다. 올해가 유독 특이한 건 아닙니다. 매든 감독은 2015년에는 총 133경기에서 투수를 8번 타순에 기용했습니다. 지명타자를 채택한 아메리칸리그 팀 안방 구장에서 인터리그로 10경기를 치른 걸 제외하면 전체 152경기 중 12.5%만 투수를 선발 라인업에 9번 타자로 적어 넣었던 겁니다.


투수를 8번에 넣는 제일 큰 이유는 '두 번째 리드오프 이론(the Second Leadoff Theory)' 때문입니다. 9번 타순에 투수보다 더 잘 치는 선수가 들어서면 1번 타자(리드오프)를 두 명 두는 것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겁니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이론은 실제로 성립하며 1년(162경기)에 약 2~3점 정도를 추가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보통은 10점을 더 얻을 때 1승을 추가할 수 있으니 미미하다면 미미한 점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수도 있는 법이죠.


과연 라미레스 감독은 언제까지 투수 겸 8번 타자 라인업을 가동할까요? 이 작전이 라미레스 감독을 일본에서 성공한 지도자로도 만들어줄까요? 요코하마는 일단 30일 퍼시픽리그 소속 팀 니혼햄(日本ハム) 안방 구장 삿포로돔을 찾아 교류전을 치르기 때문에 투수를 타석에 내보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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