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재미있다고 해야 하는지 한심하다고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55·사진) 이야기입니다. 


위 사진은 안 후보가 3일 전북 김제시 새만금33센터를 찾은 장면입니다. 안철수가 손에 들고 있는 공에는 '逆轉(역전)의 名手(명수) 群山商高(군산상고)'라고 써 있습니다. 


이 현장에 취재를 나간 매체는 대부분 "안 후보가 '역전의 명수' 군상상고 야구부로부터 배트와 모자, 야구공을 선물로 받았다" 같은 형태로 사진설명을 달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군산상고 야구부'입니다.


군산상고 야구부는 1972년 제2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9회초까지 1-4로 끌려가던 경기를 5-4로 뒤집어 역전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이때부터 붙은 별명이 바로 '역전(승)의 명수'입니다. 


현재 안 후보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64)에 뒤져 있지만 이렇게 역전 당선에 성공하기를 기원하면서 누군가 이런 이벤트를 마련했을 겁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1, 2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안 후보는 지지율 19.2%로 문 후보(40.2%) 절반도 안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정작 군산상고 야구부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몰랐다는 겁니다. 군산상고는 이날 서울 목동구장에서 황금사자기 개막전을 치렀습니다(사진). 군산상고 야구부 관계자에게 '안 후보에게 경기 후 야구 용품을 전달했느냐'고 확인해 보니 "금시초문"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공식 기록지에 따르면 이 경기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12시 45분에 끝났습니다. 안 후보 홈페이지를 보면 이날 새만금 일정은 오후 3시 20분 시작이었습니다. '네이버 지도'에 따르면 목동구장에서 새만큼33센터까지는 최단 시간 기준으로 3시간 34분이 걸립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서 곧바로 차를 타고 출발해도 안 후보 일정보다 거의 1시간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안 후보에게 야구 용품을 전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야구부 관계자'가 물품을 전달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야구용품을 건네주고 있는 인물도 군산상고 야구부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안 후보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전북 군산시를 지역구로 둔 김관영 의원(48·국민의당)입니다. 


김 의원 홈페이지에서 프로필을 찾아 보니 군산상고가 아니라 군산제일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래도 군산상고 야구부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을 터. 홈페이지 검색창에 군상상고를 넣어 보니 2012년에 프로야구 제10 구단 유치 기원 행사에 참석했던 사실을 알리는 언론 기사 딱 하나가 뜹니다.


또 야구부도 엄연히 학교 구성원입니다. 헌법 제31조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다룹니다. 특정 학교에서 이렇게 특정 후보를 지지해도 괜찮을까요? 정말 저 학교 모든 구성원이 안 후보를 지지하나요? 야구부 OB들은 어떤가요? 군상상고 교무실에 전화로 확인하려 했지만 연휴 기간이라 답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날 군산상고가 황금사자기 개막전을 치른 상대는 부산고였습니다. 네, 안 후보가 나온 바로 그 학교 맞습니다. 군산상고 야구부에서 '역전의 명수' 이미지를 가져다 쓰기 급급해 그날 그 야구부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같은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방증일 겁니다.  


사실 맨 위 사진을 보고 처음 너무 어색하다고 느낀 제일 큰 이유는 모자 색깔이었습니다. 위에 등장하는 것처럼 군산상고 야구부 유니폼은 원래 파란색 계열입니다. 민주당 상징색도 비슷한 계열지요. 


그러니 안 후보 측에서는 이 색깔 모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전의 명수 이미지는 포기할 수 없었을 테니까 결국 멋대로 남의 야구부 학교 모자 색깔을 바꾸는 횡포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프로 스포츠 우승 팀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게 관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도 백악관을 찾았습니다. 


재미있는 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52)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팬으로 명성이 자자했다는 것. 그래도 컵스가 백악관을 찾았을 때(사진) 컵스 유니폼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삭스 팬 중에서는 내가 컵스 팬를 제일 좋아할 것(Among White Sox fans, I’m the number one Cubs fan)"이라고 말했습니다.


파란 모자 한 번 쓴다고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습니다. 파란 모자라고 해도 어차피 안철수라는 세 글자는 썼을 겁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정답도 이야기했습니다. 안 후보가 오바마 전 대통령을 베끼는 게 처음있는 일도 아니었죠. 미리 군산상고 야구부 스케줄을 확인했더라면 자기 모교 부산고와 이날 경기가 있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터. 두 학교를 걸 묶으면 안 후보가 그토록 강조한 '부산의 아들, 호남의 사위' 이미지도 한번 더 써먹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파란 모자를 쓰고 "부산고 출신 중에서는 제가 제일 군산상고 야구부 팬"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아마 안 후보가 역전성을 거둘 확률도 더 올라갔을 겁니다. 원래 정치인이 선거 때만 되면 스포츠 전 종목 팬이 되는 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속이 보여도 너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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