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스포츠가 공용어입니다.


❝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세이버메트리션이라는 괴짜들이 등장하면서 가장 비난에 시달린 공격 전술은 크게 세 가지다. 희생번트, 진루타 그리고 도루가 바로 그것이다. 희생번트와 진루타에 대한 비난은 사실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다. 주자를 한 베이스 더 보내는 것이 아웃 카운트 하나를 소비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


도루는 어떨까? 그러니까 희생번트나 진루타는 무조건 아웃 카운트 하나를 소비한다. 하지만 도루가 성공했을 때는 아웃 카운트 그대로 주자가 한 베이스 더 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도루를 평가하는 데는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손익분기점, 즉 어느 정도 도루 성공률을 기록해야 팀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70~75%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3번 가운데 2번(66%)만 성공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아웃 카운트와 어느 베이스를 훔치는지에 따라 손익분기점은 다를 수 있다. 미국 세이버메트리션들이 밝힌 기준은 아래와 같다.


굳이 어렵게 갈 필요는 없다. 2006 시즌 우리 리그 평균 도루 성공률은 68.1%였다. 따라서 평균보다 좋은 성공률을 보였다면 열심히 27m를 달린 주자 노력을 생각해 그를 인정해 주다. 누가 죽고 싶어서 2루로 뛰어가겠는가? 68.1%에서 소폭 기준을 낮춰 66%를 기준으로 하자.

기준을 66%로 잡으면 공식을 만들기도 쉽다. 말 그대로 세 번 가운데 두 번만 성공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도루 성공률을 따질 때 도루 성공과 도루자만 따지는 게 충분할까? 그건 상대팀 투수가 견제할 때 열심히 "마!" "야야야!" 등을 외치며 안티-응원을 만들어낸 응원단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견제사도 포함하자.

그럼 다음처럼 간단한 공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 도루 이익 = 도루 성공 - 2 × ( 도루자 + 견제사 )
어려울 것 없다. 도루 성공과 실패 및 견제사의 비율이 66%라는 것을 고려해 아주 간단한 수식을 세웠을 뿐이다. 세 번 가운데 두 번만 살면 된다는 것이 핵심인 이상 이 공식은 어느 선수가 가장 상대 배터리를 괴롭게 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역시나 두산 이종욱이 1위다. 두산은 부족한 장타력을 '발'로 채워야 했고, 그 선봉에 섰던 선수가 바로 이종욱이었다. 그 뒤를 박용택과 정근우가 뒤따른다. 박용택은 지난해 도루 1위였고, 정근우 역시 시즌 초반 결장이 아니었다면 도루가 더 많을 수 있던 선수다.

특이할 만한 건 도루로 22개(5위)를 기록한 박재홍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박재홍은 도루자 7개, 견제사 4개를 당해 기록을 정리해 보면 0이 된다. 정확히 66%의 성공률밖에 기록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박재홍은 양호하다. 오히려 뛰어서 팀에 손해를 끼친 선수들 명단도 알아보자.


나주환, 고영민 등 두산 선수 두 명과 이진영, 정경배 SK 선수 둘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7위 역시 -9를 기록한 황성용 차지. 정수근을(+9, 6위) 제외하자면 롯데 선수들은 안 뛰는 편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얘기다.

그럼 팀 관점에선 어땠을까? 10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두산, 삼성, SK는 과연 도루로 인해 공격에 있어 큰 활력을 얻었을까? 


삼성은 이득을 봤지만 겨우 +1이다. 두산은 얻거나 잃은 게 전혀 없고, SK 역시 -1로 손해를 봤다. 뛰긴 많이 뛰었지만 대단한 소득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사실 가장 큰 이득(+2)을 본 LG 역시 대단한 수준은 못 된다. 오히려 롯데와 현대의 손실이 뼈아플 뿐이다. 그러니까 이 두 팀은 뛸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루를 공격 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도루 저지 능력 역시 수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게 사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롯데 강민호, LG 조인성은 도루 저지에 있어서 자자한 명성을 얻고 있는 포수. 진갑용 역시 이번 시즌 도루 저지율 1위다. 이 세 팀이 도루 억제에 있어 실력을 발휘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는 얘기. 반면 노장 포수 김동수는 투수 리드에 있어서는 제 몫을 톡톡히 차지했지만 도루 저지에서는 확실히 아쉬운 모양새. 기록 역시 이를 증명한다.

재미있는 건 SK와 두산은 100개가 넘는 도루를 성공한 것과 동시에 100개가 넘는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는 점. 그럼 공격과 수비에서 도루가 차지한 영향력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공격과 수비에서 얻은 이득을 비교하면 어느 팀이 도루로 인해 가장 큰 효과를 봤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종합해 보면 LG와 삼성은 꽤 큰 이득을 봤다. KIA도 그렇다. 반면 현대는 공격과 수비 모두 도루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득 원천이 공격보다는 수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해 도루란 확실히 공격하는 측보다 수비 쪽에유리한 이벤트라는 이야기다.

도루는 재미있다. 전성기 시절 이종범의 볼넷은 3루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효과로 보자면 공격시에 도루 작전을 내는 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뛰어도 되는, 아니 뛰어야 하는 선수들이 있다. 두산의 이종욱, LG의 박용택은 확실히 그런 유형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단지 발이 빠르다는 이유로 굳이 뛰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흔히 도루는 스피드, 스타트, 센스 세 박자가 갖춰져야 한다고 한다. 기록에서 마이너스 값을 기록한 선수들은 순전히 스피드만 믿었다. 이런 선수들은 뛰지 않는 게 좋다. 도루 성공보다 팀 승리가 우선이니 말이다.

도루 30개는 2루타 30개가 아니다. 뛰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 뛰면 안 죽는다. 한번 죽고 한번은 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아웃 카운트는 그만큼 소중하다. 100% 살 자신이 있을 때만 뛰어라. 그래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게 도루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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