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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유일한 것이 승리라면 이기는 그 순간 다시 경합을 벌여야겠다는 욕구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마이클 조던과 로저 클레멘스가 나이 마흔에 계속 경쟁을 벌였던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소크라테스 야구장에 가다' 中에서

서울에 야구장이 몇 개나 있을까? 잠실구장, 동대문구장, 목동 구장 그리고 리틀 야구 규격이지만 장충야구장. 물론 원한다면, 야구부가 있는 각급 학교의 야구장까지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야구장 6면이 서울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용산 미군기지 안이 바로 야구장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성인용 3개, 그리고 어린이용 3개.

용산 미군기지는 겨우 서울의 동(洞) 2개 남짓한 면적이다. 여기에 무려 6개의 야구장이 있다. 그것도 대충 땅만 골라 놓은 흙바닥이 아니다. 외야엔 푸른 잔디가 깔리고 철망 펜스가 깔끔하게 설치된 제대로 된 야구장이다. 우리가 헐리웃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야구장의 풍경 바로 그대로다. 서울 시내의 어지간한 연습 시설보다도 나은 환경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야구의 현실은 미군기지 담장 바깥에 존재한다. 이렇듯 야구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동대문구장 철거를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만약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1905년 경성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1959년 국내 최초의 야구 전용 구장인 '서울 운동장'으로 거듭했던 동대문 운동장은 머잖아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프로 야구 선수협회를 중심으로 야구인들이 항의 집회를 벌였지만 당장의 소득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선수들은 소리 높여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1차적으로 그 목소리는 자신들의 추억을 지키고자 하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 추억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목소리였다. 아울러 그것은 우리 야구의 역사를 위한 목소리이기도 했다. 우리 야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모두가 바로 동대문구장을 향해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우리 야구의 성지, 메카가 바로 동대문야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야구 초창기의 대타자 이영민부터 2006 신인왕에 오른 류현진까지 그 어느 야구 선수가 동대문 운동장을 거치지 않았을까. 비록 프로 야구의 출범과 함께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물론, 야구팬들의 발걸음조차 드물어진 게 사실이지만 여전히 우리 어린 야구 선수들이 미래를 위해 소중한 땀방울을 일구는 곳이 바로 동대문구장이다. 도대체 이 구장이 무엇 때문에 일본 고시엔(甲子園) 구장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단 말인가.

동대문구장뿐만 아니다. 분명 우리 야구계는 새로운 구장을 필요로 한다. 그것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상태다. 하지만 동대문구장은 물론이거니와 인천의 도원 구장 역시 철거에 직면해 있다. 구장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구장 수가 자꾸만 줄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해외로 유망주들이 모조리 진출해서, 그리고 이제는 유망주들이 돈을 좇아 투수를 선호해서 한국 야구는 갈수록 재미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이 선수들에게 조금만 기다리면 더 나은 미래가 온다는 사탕발림조차 할 수 없는 형국으로 우리 야구의 현실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야구는 엄연히 인기 종목으로 분류돼 있는 까닭에 학교 체육을 통해 제대로 된 보급을 시도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대기업이 구단 소유 구조의 정점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구장 신축 하나 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제 아무리 구단에서 새로운 구장을 짓고 싶어도 지자체의 승인 없이 지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렇게 지은 야구장 역시 자신의 소유로 하지 못한다. 관계 법령에 따르면, 개인 및 법인은 원칙적으로 야구장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만에 진 것을 한탄하고, 일본에 진 것에 분개했다. 그러면서 단 한 사람 김재박 감독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물론 김재박 감독의 리더십에도 확실히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동대문구장 철거에 대해 사료로서의 가치 이외에 그 어떤 명분도 내세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아이들이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굳이 또 한번 대만과 일본 고교 야구팀의 숫자를 언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타이페이에 신축되고 있는 돔구장 얘기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야구가 진짜 위기인 이유가 아시안게임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다시 한번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지 못한다면 우리 야구는 결코 발전하지 못한다. 학교 체육에서부터 차근히 시작해야 하는 게 원론이겠지만, 당장 중고교 선수들만이라도 마음껏 야구할 수 있는 환경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동대문구장 철거에 따른 대안으로 서울시에서는 구의 정수장 부지에 대체 구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이미 주민들 역시 야구장 건설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어쩐지 차일피일 미루다 목동으로 모든 경기를 미룰 것 같다는 생각은 지나친 착각일까? 착각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씁쓸한 입맛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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