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소속이던 앨버트 스팔딩(1849~1915)은 1872년 브루클린 에크포즈를 상대로 4이닝 동안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습니다. 5회말 수비를 시작하기 전에 보스턴은 17-0으로 이기고 있었고 스팔딩은 마운드에서 내려와 중견수로 포지션을 바꿨습니다. 결국 이 경기는 보스턴이 20-0으로 이겼지만 스팔딩은 승리 투수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왜였을까요? 야구 규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스팔딩이 4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도 아닙니다. 스팔딩이 승리투수가 되지 못한 건…이때는 승리투수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야구조사협회(SABR) 회원 랭크 바카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1872년으로 돌아가 '투수에게 승리나 패전을 기록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면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승리투수라는 개념을 '발명'한 건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채드윅(1824~1908)이었습니다. 채드윅은 사업가로 변신한 스팔딩이 해마다 펴내던 책 '스팔딩 가이드' 1885년판(1884년 발행)에 처음으로 승리투수라는 개념을 등장시켰습니다. 패전투수가 등장한 건 4년이 지난 1888년 7월 7일이었습니다.


1889년까지는 야구에 '자유로운 선수 교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팀마다 투수는 한두 명이 전부였고 다치지 않으면 투수 한 명이 완투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아니면 스팔딩처럼 포지션을 맞바꾸는 게 전부였습니다. 지금처럼 선수를 바꿀 수 있게 된 건 1890년부터입니다.


채드윅은 1890년판 스팔딩 가이드에 "투수 두 명이 한 경기를 나눠 던진 경우에는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에게 승리 또는 패전 기록을 부여했다"고 썼습니다. 야구는 9이닝이니까 최소 5이닝을 소화한 쪽이 승리투수가 되는 겁니다. 현재 야구 규칙 10.19(a)에 승리투수가 되려면 "선발투수는 최소한 5회를 완투한 후에 물러나야 (한다)"는 내용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단, 이 때는 지금처럼 점수가 나온 '타이밍'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긴 팀에서 제일 오래 던진 투수가 승리 또는 패전을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03년이 되면서 공식기록지에 투수 승패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도 여전히 기록원이 "가장 (비)효과적인 투구를 하였다고 기록원이 판단한 투수 1명"를 승리(패전)투수로 기록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승리를 기록한 건 레이 스카보로프(1917~1982)였습니다. 스카보로프는 워싱턴 소속이던 1950년 4월 18일 열린 개막전에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그 사이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승리(패전)투수 결정 규칙이 지금하고 같은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선발투수가 최소 5이닝 이상 투구해야 한다는 규정은 이때도 살아 남았습니다.


사실 지금도 선발투수가 5이닝을 채우지 못한 경우에도 승리투수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살아 있기는 합니다. 야구 규칙 10.19(b)에는 "경기가 5회에 종료되었을 경우 선발투수가 최소한 4회를 완투한 후 물러 나야 하며 교체 당시 자기 팀이 리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리드가 경기 종료까지 유지되어야 선발투수를 승리투수로 기록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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